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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다수의 경험과는 다소 동떨어져있을 수 있음)
'나 어제 놀았어'를 참아보는 건 어떨까
저녁을 먹은 후 책을 읽기 위해 집 앞 도서관을 다녀왔다. 근처 중고등학교의 시험 기간인지 학생들이 많았다. 빈 의자 하나를 간신히 찾아 앉았는데 주변이 온통 중학생이었다. 잠시 둘러보니 학생들의 집중력이 우리 때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 '때'보다는 '우리'가 쓰레기였을 수도 있지)
독서를 마친 후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도중, 마침 나온 중학생 2명과 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우리 때와 비교하여 집중력은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을 하나 찾게 되었다. 나의 추억을 살려준 둘의 대화를 잘라서 공개하려고 한다.
도서관 엘리베이터 앞. 09:53 PM
(띵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도착. 중학생인 A와 B, 동네 주민 철이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문이 닫히자마자 시작되는 A, B의 대화)
A: 야 공부 많이 했냐
B: 아~ 아니 진짜 하나도 못했어 C가 자꾸 말 걸어가지고
A: 아~~ 나도 안에서 애니만 계속 봤네 폰 부수든지 해야지
B: 아~~~ 나는 C가 편의점 갔다 오자고 하는 바람에 진짜 밖에서 1시간 있다 왔어
A: 아~~~~ 한 번도 제대로 안 봤는데 내일 시험 망하면 어쩌지
B: 아~~~~~ 나도야 투덜투덜
A:투덜 B:투덜투덜 A:투덜투덜투덜.....
10년 전에 우리들이 나눈 대화를 어린 친구들이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놀라웠다. 혹시 저 대화는 대학가의 족보처럼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주문 같은 존재가 아닐까. 엘리베이터를 내린 이후에는 학생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추측컨대 저들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 순간까지 랠리를 주고받듯 '내가 더 안 했었어'를 '내가 더 안 했었었었었었었어'까지 늘린 후 헤어질 것이다.
내가 다녔던 중고등학교에는 시험 기간마다 친구들이 지난밤 서로의 학습 상태를 극진히 챙겨주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고3이 되기 전까지 친구들이 서로 어제 몇 시에 잤는지, 책은 몇 번 봤는지, 몇 시간 공부했는지 묻는 장면을 멀찍이서 재미있게 바라봤다.
대개 시험 1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서로에 대한 관심은 마지막 시험날까지 이어지는데,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답변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상관없이 질문자는 자신의 지난밤 게으름을 무용담처럼 줄줄 늘어놓는다. 더 재밌는 점은 상대방 또한 질문자의 답변은 듣지 않고, 심지어 처음 질문에 대해 열심히 했다고 답하는 친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애초의 소통이 아니라 자신의 나태를 알리는 통보, 선전이 목적인 대화였다.
내가 저러한 대화의 상징인 '어제 공부 많이 했어?'를 처음 들은 것은 고3 때였다. 그전까지 친구들이 내 안부를 챙기지 않은 이유는 내 성적이 배려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효율적이고 사려 깊은 질문이다. 이미 5년간의 관찰을 통해 그 대화의 목적을 파악한 나는 친구들이 물을 때마다 '그냥.. 했지'를 주로 답하고 '아니 놀았어'도 가끔 쓰고 '그럼 많이 했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써봤다. 내가 무슨 답을 하든지 친구들의 대답은 항상 '아 나(는/도) 못했는데 망했다'였다. 재미 삼아 '못했어 어제 심장수술을 받아서..'라고 말해볼까 생각해봤지만 왠지 친구가 '아 정말? 근데 나도 어제 게임하느라 공부 하나도 못했어~'라는 섬뜩한 리액션을 볼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아마 저런 대화를 나눈 사람이 나와 내 친구만은, 우리 동네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로 나태를 드러내면서 살아갈 텐데 나는 그 이유를 크게 2가지로 잡았다.
첫 번째는 '천재 동경론'이라고 지었는데 예전에 내가 썼던 '재능' 글과 비슷한 말인 것 같다. 대부분의 시험은 받을 수 있는 최대 점수가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만일 내 점수가 친구와 같다면,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친구가 나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 머리가 친구보다 더 뛰어난 게 된다. 같은 3할 타자라 해도 어깨가 빠질 정도로 연습을 하고 실전에서도 힘겹게 안타를 치는 선수보다는, 연습은 대충대충, 경기 때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낮잠이나 자다가 실전에서는 가뿐히 안타를 기록하는 선수가 더 까리해 보이지 않나. 어렸을 때 인기를 끌었던 각종 일본 스포츠 만화가 애들에게 잘못된걸 가르친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내세우는 쪽이 상대방의 점수에 더욱 연연한다는 점이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항상 슬램덩크의 송태섭이나 드래곤볼의 야무치가 떠올라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송태섭이랑 야무치도 엄청난 노력파인데..)
두 번째는 대학교에 와서도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 갖게 된 이론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두가 같은 시험을 봤으므로, 즉 모두가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대학교에 와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의아했다. 나와 같은 수업을 듣지 않는 친구들이 내게 와서 '공부 하나도 안 했어 어떡해~'를 외칠 때는 샅바 매고 수영장에 들어온 강호동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저리 가 나 수영해야 돼 비켜..
그런 친구가 한두 명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왜 나한테까지 와서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봤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이었다. 약간의 징크스처럼 안 하자니 찝찝하고 시험을 망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에 말하는 것 같다. 박태환이 시험 직전까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호날두가 경기 전마다 이발을 하는 것처럼 시험 전에 '공부 안 했어~'를 외쳐야 불안이 사라지는 친구들이 많은가 보다.
중학생들 사이에서 반가운(?) 대화를 들어서 들뜬 마음에 글을 써봤다. 약간 부정적으로 쓴 거 같은데 저런 대화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전혀 악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 친구는 오른손잡이구나'와 같은 사실 정보만 추가로 입력될 뿐, 자기 게으름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그 친구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과 같으니까. 노력을 증명받기 겁내고, 탈출구를 만들어 놓고 싶은 평범한 학생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나의 천장을 보기 싫고, 남이 내 한계를 알아차리는 것은 훨씬 싫다. 그렇지만 먼저 공부 안 했다고 이야기하기는 또 싫었다. 그건 좀.. 내게는 굉장히 낯부끄러운 행위이다.
내가 세운 타협점은 시험 기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거였다. 절대로 먼저 내 나태함을 드러내지 말자. 그래서 공부 많이 했냐는 대부분의 질문에 떨떠름하게 답하고 얼른 대화 주제를 돌려버리곤 했다. 스스로의 노력에 떳떳하기도, 게으름을 자랑하는 것도 부끄러운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처럼 노력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안해쑤쓰와 안해쑤아가 대부분이었는데, 대학교에 들어와서 유일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친구를 만났다.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서 살며 어제 뭐했어?라는 질문에 '뭐하긴 시험공부했지 x바'라고 답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물론 그 친구보다 학점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 더 적은 노력으로 그 이상의 성과를 얻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처럼 자신의 노력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 그 친구를 누구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다. 천재 동경론에서 일본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었는데, 그런 만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저런 친구와 같은 노력형이다. 재능만 믿고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역할은 정해져 있다. 주인공에게 짧은 시련을 안겨준 뒤, 주인공의 노력에 의해 패한 후 사라지는 주인공의 성장 경험치용 캐릭터. 노력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발전해갈수록 노력을 숨기는 자들이 설 곳은 사라지게 된다.
놀지 말자는 게 아니고, 무조건적인 노력을 강요하는 글도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자신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시합이라면 그 결과를 맞닥뜨리는 자리에 당당히 섰으면 한다. 스스로의 체면을 위해 퇴로를 열어두는 일은 '주인공'스럽지 못하다.
그러니 '어제 놀았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