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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천 Jun 13. 2016

재능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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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생각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꽤나 여러 군데의 학원을 다녔었다. 미술, 피아노, 바둑, 태권도, 검도 등등..어머니는 다른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에게 감춰진, 실은 감춰져 있다고 믿고 싶은 '우리 아들'의 재능을 찾기 위해 자신의 봉급을 쥐어짜셨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밋밋한, 혹은 그보다 못한 능력을 보여주어 번번이 어머니의 돈을 허공에 흩날리곤 했다. 그림을 그리면 보는 사람들의 추리력만 자극시켰고, ( '어머 벌써 추상화를 그리니?' 아뇨 그냥 사과인데요;;;) 태권도는 대련을 하기 싫어서 경기 내내 도망치기 바빴다. 아~ 그때 날린 어머니의 만 원짜리로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면 차라리 뉴스에라도 나왔을 텐데...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조금 어머니의 마음을 설레게 할 뽄새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재미는 없었지만 원장 선생님이 일주일간 연습하라고 한 곡을 3일 안에 치곤 했다. 요즘 말하는 절대음감 까지는 아니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는 노래를 듣고 악보 없이 연주할 때도 있었다. 학원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내 실력을 치켜세웠고,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양 어머니는 그 후 끊임없이 원장 선생님과 연락을 하며 나의 재능(?)이 신기루가 아님을 확인하시곤 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평행선을 달리던 내 피아노 실력과 달리, 어머니께 전해지는 나의 실력은 통화가 연결될 때마다 널뛰기를 했다. ( 철이가 제법 피아노를 치네요 -> 또래 애들 중에는 제일 잘해요 -> 제가 가르친 애들 중 이런 영재는 처음이에요 -> 뭐해요 어머니 당장 오스트리아 유학 안 보내시고?! 정도 아니었을까.)


선생님의 립서비스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당연한 바람을 나는 진실로 믿으며 피아노를 배워나갔고, 1년 정도 학원을 제패(했다고 스스로 믿고) 한 후 주최자가 불분명한 콩쿠르를 나갔었다. '드디어 내 연주를 세상에 공개하는구나' 생각하며 들떠있던 내 앞에 그들이 나타났다. 단순히 입과 귀의 상상을 통해 빚어진 천재가 아닌, 실제로 움직이는 천재들. 내 나이 또래였던 그 친구들이 연주한 곡들은 나와는 다른 수준의 곡들이었다. 속주는 물론이거니와 곡에 대한 해석 능력까지 겸비한 그들에 비하면, 내가 대회를 위해 준비한 속주는 그저 박자에 맞춰 건반을 때리는 두더지 잡기에 불과했다. 내 두더지 잡기는 하필 입상자의 다음 차례에 보여줘야 했고, 메인 스테이지 사이에 짤막하게 들어간 바람잡이의 모습으로 연주를 마쳤다.   

 나와 내 부모님은 고작 바이엘을 듣고 따라서 연주하는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주문을 걸었지만, 진정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재능이 아닌 잔재주에 불과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조그만 동네 학원에서나 특별한 능력으로 위장이 가능했지, 다른 환경에서는 자격요건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것. 그 날 이후로 피아노에 흥미를 잃은 나는 학원도 가지 않고 그렇게 피아노와 이별을 했다. 그 뒤로 17년이 흘렀다.

그럼 나는 애기였나보다...


지금 와서 문득 생각해보면, 그날 나에게 엄청난 좌절을 안겨줬던 그들도 어디에선가 똑같은 좌절을 느끼지 않았을까. 더 과장해서 생각해본다면, 리허설 때 내가 그들의 연주를 듣고 기가 죽었듯이 그 자리에서 최소한 한 명쯤은 내 리허설을 듣고 기가 죽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과 나의 재능 차이도 실은 내가 다니던 학원의 다른 아이들과 나의 차이처럼, 존재하기는 하되 극도로 미미한 정도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나와 그 아이들의 차이는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좌절의 순간에 돌아서는 것과 들이받는 것, 그 차이였다고 생각하며 지난 나를 다그쳐본다.

 

음악의 역사에서 재능과 시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으니, 바로 모차르트에게 가려진 '영원한 2인자' 살리에리이다. 다들 살리에리가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리에리 또한 대단한 천재이다. 그 역시 오늘날까지 모차르트와 비견되면서 영생의 권위를 얻었으니까.

요즘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보다 그런 둘을 지켜보면서 묵묵히 연주하고 곡을 썼던 동시대의 이름 모를 연주가들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같이 출발했음에도 저만치 앞서가는 천재들을 보내주고 묵묵히 자신의 레이스를 펼치는 많은 범인들 역시 또 다른 재능을 가진 천재이다.


재능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모두가 원하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재능을 찾아 개발하는 사람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모두가 동경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축하하고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주는 빅뱅 덕분에 우리에게 무한한 하늘을 제공했다. 굳이 북극성이 아니어도 우리가 별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무수히 많다. 고마워요 지드래곤.



하루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2부 15장


전개: '나'와 크리스는 계속 드위즈의 집에 머물고, 존과 실비아는 자신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이별이다. '나'는 드위즈의 집 근처에 있는, '나'가 '파이드로스'일때 강의를 했던 대학교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여학생을 만나면서 과거의 기억을 점차 되찾는다. 그러고는 자신을 광기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인 질(Quality)에 대한 탐구를 떠올린다.


학생들이 흉내내야 하는 모든 작가들은 규칙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써놓고 나서, 다시 되돌아가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던 것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되는가를 가늠해보고,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면 그것을 고친다는 것이 파이드로스의 생각이었다. ... 미리 준비된 생각에 맞춰 쓴 것임이 명백해 보이는 그런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는데, 그렇게 판단했던 것은 그들이 써낸 글들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미리 준비된 생각에 맞춰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대단히 형편없는 방법이라는 것이 파이드로스의 생각이었다. <p.317>


만일 우리가 높은 온도에서 물질을 용해한 다음 용액의 온도를 낮추면, 때때로 용해된 물질이 결정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물질의 분자들이 결정화할 방도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정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를 결정체 형성을 위한 씨눈이라고 한다. 이때의 씨눈 역할을 하는 것은 먼지 한 알갱이일 수도 있고, 심지어 무언가로 갑작스럽게 용액의 표면을 한번 스치거나 용액이 담긴 유리그릇을 무언가로 한번 탁 치는 일이 씨눈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p.326>


질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지만, 여전히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보다 낫다. 즉, 질을 더 함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질을 함유하고 있는 대상과 분리해서 질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면 질은 거품처럼 꺼져버리고 만다.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질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는 그것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낫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당신은 맴돌기만을 계속할 뿐이다. ...도대체 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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