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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낸 만큼의 발전을 꿈꾸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언제나 나의 첫 번째 꿈이다. 달라지는 환경과 유행에 맞춰 수많은 꿈들이 자라나고, 뽑히고, 꽃 피워 날아갈 때에도 '발전된 나'를 꿈꾸는 마음은 닻을 내린 채 늘 머물러 있다. 내가 갈망하고 매력을 느끼는 모든 것들이 자라나기를 원한다. 요리나 프로그래밍,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의 능숙한 태도처럼 요즘 열렬히 매달리는 것들부터 서서 양말 신기나 가방 빨리 챙기기, 음식 꼭꼭 씹어먹기처럼 굳이 안 해도 될 사소한 것들까지 작년의 나,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고 싶다. 갈수록 커져가고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 내 덩치를 키우려고 애쓴다. 어제 끓인 미역국보다 맛있는 미역국을 만들고 싶고, 어제는 떠오르지 않은 단어와 문장을 찾길 원한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성숙을 언제나 희망하기 때문에, 해가 바뀔 때마다 1년을 온전히 살지 못한 나의 시간을 후회하곤 한다.
쓰고 나니 쉴 새 없이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선수라도 된 기분이지만, 실제의 나는 대부분 게으르고 가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다. '갈망하고 매력을 느끼는'에 해당하는 일들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매달리는 것은 심신의 피로를 가져오고 자존감의 심각한 손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내가 키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해 그 안에서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때 우선시하는 기준은 그 일이 내게 주는 행복감이다. 떠올렸을 때 두근거려야 하고 과정이 만족스러워야 하며, 끝마쳤을 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일들을 붙잡는다. '해야만 한다'는 강박보다 '하고 싶다'는 근질거림이 내 마음을 이끈다면 더욱 좋다. 높고도 주관적인 기준들을 통과한 나의 버킷리스트들은 마지막으로 사회에 무해한 일인지 검증받은 후 내 안에 자리 잡는다. 그런 일에 시간과 노오력을 전력투구해야만, 설령 전력투구가 아닌 아리랑볼만 던진 채 끝나더라도 기분 좋게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를 평가하고, 반성하고 만족감을 주는 유일한 잣대는 원하는 일을 향한 실천이고, 비교대상은 항상 어제의 나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견주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만 이는 다양한 조건을 따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나를 만나기 전 그 사람의 과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재능의 정도나 지원받는 재력의 차이 등을 내 상황과 비교하여 나의 못남을 합리화할 구멍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나와의 비교는 언제나 명확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비관하고, 부러워하고, 우쭐할 조건과 필요가 사라지고 그 시간을 자신이 바라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하기 전엔 서툴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일 중에는 글쓰기가 있었고, 브런치를 알게 된 시점부터 첫 글을 쓰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1년 동안은 그저 들락날락거리며 사람들의 글을 구경만 했고 내 글은 나만의 일기장에 끼적이는 게 다였다. 글쓰기를 주저한 이유는 브런치라는 이름이 창피했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썼었는데, 사실 깊숙이 자리 잡은 본심은 서툰 글솜씨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기차를 설명하려고 시작한 글이 날씨 이야기로 끝나버리는 두서없는 글만 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지만 능숙과 완벽의 길은 미숙과 허술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지, 못하는 게 욕먹을 일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과거의 나보다 좋은 글을 쓰면 그걸로 족하다. 어제 기차에서 날씨로 끝나는 글을 썼다면, 오늘은 기차에서 비행기로 끝나는 글만 써도 성공인 셈이다.
TV를 보다 보면 처음 데뷔했을 때보다 시간이 갈수록 예쁘고 멋있어지는 배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성형 때문이 아니라 카메라를 계속 마주하면서 얻게 되는 '카메라 마사지' 덕분이다. 화면을 계속 보면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화장법, 얼굴 표정, 조명의 밝기들을 터득한 후에야 자신의 진가가 드러나는 셈이다. 원래부터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연예인들조차 TV에서 본모습을 뽐내려면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련하겠는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대개 자신의 현실보다 상품가치가 높고, 꾸준한 인내를 요구하며, 흔치 않은 재능을 필요로 한다. 자신만은 그 모든 좌절과 노력을 건너뛰고 단숨에 목표를 성취하려는 태도는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른 연기 지망생이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꿈꾸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동시에 차별적인 욕심이다. 그러니 뭔가를 시작할 때 너무 위축되지 말자
하면 빨라진다
본격적이라는 말은 쑥스럽지만, 요리가 일상으로 들어온 지 3년 정도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볶음밥을 만드는 데에도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양파 써는 방법을 검색하는데만 10분, 써는데 20분, 뭐부터 볶아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며 타고 밍밍한 볶음밥을 만들기까지 30분. 이럴꺼면 요리할 시간에 알바를 하고 볶음밥을 시켜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 볶음밥을 씹으며 되뇌었다. '나에겐 요리의 재능이 없는 거야', '어떻게 15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 웃기고 있네.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같은 자조 섞인 낙담을 했다. 낙담하는 와중에도 음식은 계속 만들었다. 요리가 즐겁지도 않았고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었지만, 미래의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 줄 아는 사람이기를 늘 소망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택한 방식은 놀랍도록 간단했다. 이틀에 한 번은 볶음밥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런 기대나 조급함도 없이 그저 썰어야 할 때 썰었고, 볶아야 할 때 볶았다. 15년간 오대수가 군만두만 먹었듯이 나는 2개월을 볶음밥과 보낸 셈이다. 그렇게 볶음밥을 만들다 보니, 어느 날 야채 손질부터 볶음밥이 그릇에 담길 때까지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득도라도 한 듯한 승리감은 자연스레 다른 요리로도 이어졌고,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요리를 그럴듯한 맛으로 그럴듯한 시간 안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뭐든지 처음이 제일 서툴고, 느린 법이다.
그러니까, 하면 는다
'하면 는다'. 사회를 뒤덮은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뻔지르르한 문장 중에서 유일하게 수학처럼 분명한 진리이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내가 얻은 모든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고, 모두가 얻은 경험이 나에게만 해당 안 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글을 꾸준히 쓴다고 하여 한강이나 김훈의 문장력을 얻지 못할 수 있고 축구를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우리 형' 호날두 같은 선수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보고서를 예전보다 빠르고 참신하게 만들 수는 있게 될 것이고, 프로선수는 못 되더라도 모든 조기축구회에서 탐내는 '동네 형'은 될 수 있다.
쓰고 나니 '원하는 게 있다면 일단 해보자'는 뻔한 메시지에 비해 글이 너무 길었나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쓴 소설가도 있다고 하니, 너그럽게 봐줬으면 좋겠다 하하.
Just Do It! 이든 Do it carefully든 상관없으니 모두가 Do만은 챙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강요는 아니고 작은 바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