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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천 Jul 17. 2016

콘텐츠-닌텐도는 가꾸고 넥슨은 버리다.

D + 35

하루 IT

콘텐츠를 대하는 두 회사의 차이


지난 7월 8일 출시된 <포켓몬 go>는 닌텐도로부터 '포켓몬스터' 라이센스를 획득한 니안틱(Niantic)이 만든 증강현실 게임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열흘도 되지 않아 미국에서만 2,100만 명이 다운로드하였고 유저의 하루 평균 사용시간(33분)도 페이스북(22분), 인스타그램(15분) 같은 SNS들을 넘어 1위를 차지했다. 국내는 정식 출시 지역이 아님에도 이미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플레이 가능 지역으로 알려진 속초는 얼떨결에 올여름 가장 핫한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출시 이후 모두가 포켓몬 go에 대해 지겹도록 들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정도이다. 정말이지 스타크래프트 이후 최고의 게임 신드롬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는 넥슨이 <서든어택 2>를 출시했는데, 이 게임도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포켓몬 go와 달리 서든어택 2는 '성 상품화를 전면에 내세운 300억짜리 망작', '전작에서 나아지지 않은 게임성', '돈 밝히는 넥슨의 여전한 pay-to-win'처럼 혹평과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게 함정이다... 결국 14일 넥슨 관계자는 “서든어택 2 게임 속 (논란의 여성 캐릭터였던)‘미야’, ‘김지윤’ 캐릭터 2종을 상점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난 얼마 전 오버워치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서든어택 2의 선전을 기대한다고 밝혔었다. 출시 이후 접한 서든어택 2는 그런 나의 기대를 깡그리 부셔버리는, 가슴으로 만든 게임이 아니라 가슴만 만든 게임이었지만 굳이 비판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었고 그 비판의 주장들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모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이번 일을 깊이 반성하고 이후에 더 멋진 게임을 선보여주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그렇지만 14일 논란이 되었던 여자 캐릭터들을 없앤다는 기사를 접한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돌 하나를 더 얹어야 할 것 같다.


포켓몬 go의 성공 이유와 서든어택 2의 논란을 모두 적는다면 길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서 닌텐도와 넥슨의 '콘텐츠 관리'만을 비교하려 한다.

  


닌텐도


물론 이번 포켓몬 go를 출시한 회사는 닌텐도가 아니라 구글에서 분리된 회사인 니안틱이다. 그럼에도 내가 닌텐도를 포켓몬 go의 주역으로 꼽는 이유는 닌텐도가 포켓몬스터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드는 기업이고, 이번 게임의 성공은 AR보다 '포켓몬'의 인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AR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만일 포켓몬이 아닌 뽀로로였다면 이만한 성공을 거두었을까. (뽀로로야 미안...) 사람들은 포켓몬 go를 하면서 미래의 기술이 아닌 과거의 그리움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푹 빠졌던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에 대한 그리움을. 일본에서 만들어진 포켓몬스터가 어떻게 세계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현지화에 성공한 포켓몬스터

작품의 현지화는 포켓몬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포켓몬이 가장 센스 있게 현지화에 성공했다고 본다. 특히나 고라파덕(일본식 이름은 コダック 고닷쿠)이라는 이름을 지은 감각이 돋보이는데, 고라파덕은 늘 머리를 부여잡고 두통에 시달리는 캐릭터의 특성을 따서 '골 아파'와 오리라는 뜻의 덕(duck)을 합친 이름이다. 영어 이름인 Psyduck 또한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렸다.

골 아파~

이외에도 이상해씨, 꼬부기처럼 포켓몬들의 이름을 귀엽게 지어준 탓에 어린 시절 나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이 포켓몬에 열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와 계속된 시리즈 제작

닌텐도는 그동안 모바일 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Wii, 닌텐도 DS처럼 콘솔 게임 위주의 개발을 고집하다가 모바일로의 진입 시기를 놓친 탓이다. 비록 기술은 뒤쳐졌지만 닌텐도는 포켓몬은 쉬지 않고 만들었다. 게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즌을 제작하고, 영화를 만들었으며 피규어 산업도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산업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원소스 멀티유즈(OSMU)라고 한다. 책에서 시작하여 영화, 게임으로 만들어진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를 시작으로 그래픽 노블, 게임이 나온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포켓몬스터도 OSMU의 좋은 사례이다. 우리 세대가 만화를 통해 151가지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접하고, 게임을 통해 그 이상의 캐릭터를 접했다면 이후 세대는 새롭게 제작된 만화를 통해 다양한 포켓몬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시리즈를 본 셈이지만 포켓몬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사는 사이가 되었고 '지우'와 '피카츄'는 그 많은 시리즈를 이어주는 튼튼한 실이 되어주었다. 


닌텐도는 포켓몬 이외에도 슈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시리즈처럼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게임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포켓몬 go를 통해 새로운 기술의 보급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익숙하고 사랑받는 콘텐츠와의 협업임을 알게 되었으니 마리오와 젤다에게도 기회는 열려있다. 기술이 뒤쳐진 닌텐도의 미래가 어둡지 않은 이유는 그러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넥슨


사실 이번 논란 이전까지 넥슨은 비교적 훌륭하게 콘텐츠 관리를 해온 게임 회사에 속한다. 넥슨의 전작들인 바람의 나라와 메이플 스토리,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게임 내에서의 스토리도 탄탄할뿐더러 만화책, 애니메이션처럼 다른 장르와의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했었다. 그랬던 넥슨이기에 이번의 캐릭터 삭제 조치가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섣부른 확대해석일 수 있지만 넥슨이 자신들의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철학이 빠지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분개했던 이유는 FPS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성 캐릭터들이 전장과는 상관없는 복장을 하고 전쟁터에서는 하지 않을 법한 포즈를 취했기 때문이다. 넥슨이 했어야 할 올바른 조치는 여성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알맞은 옷과 포즈를 재설정해주는 것이었다. 정말 전쟁터에서의 군인들처럼.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살리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을 인용하자면, 게임 속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없애는 일은 게임 전체의 세계관을 없애는 것과 같은 수준의 결정이다. 성 상품화가 논란이 되어 해당 캐릭터를 삭제한다는 접근법은, 정말 그 캐릭터들이 오로지 성 상품화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이다. (진짜 문제가 생기면 없애고 본다가 요즘 1%의 트렌드인가...)


왜 콘텐츠가 중요할까


모든 게임에는 짜임새가 엉성하든, 치밀하든 관계없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가 있다고 1등 게임이 될 수는 없지만, 1등 게임에는 모두 스토리가 있다. (스타크래프트, LOL, GTA 등등... 워크래프트의 스토리는 판타지 소설 이상이다) 넥슨은 메인 캐릭터로 밀었던 주인공을 1화 만에 아무런 설명 없이 죽여버린 셈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있던 충성 고객들의 애정마저 떨어뜨리고 게임은 언제든 쉽게 갈아탈 수 있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경쟁작인 오버워치는 캐릭터들 간 관계도와 역사적 배경까지 꼼꼼히 만들어뒀다. 모든 유저들이 이런 스토리를 인지하고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열성 게이머들은 회사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게임의 스토리를 찾아본다. 그렇게 게임에 대한 애정을 쌓게 된 게이머들이 게임의 전도사가 되어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기술적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살 때 아이폰의 디자인과 성능만을 보지 않고 그 속에 감춰진 스토리도 함께 구매한다. 이는 게임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어떤 콘텐츠를 갖고 있는지, 콘텐츠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게임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을 넥슨이 다시금 깨닫기를 바란다.




번외편


실패로 끝났던 구글 글래스, 포켓몬 go로 부활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구글 글래스는 증강현실이 아닌 디스플레이 기기이기 때문에 이는 개인적인 의견에다가 일차원적인 상상일 수 있으나, 포켓몬 go의 성공으로 구글 글래스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방식은 스마트폰 프레임을 통해서만 포켓몬을 볼 수 있어서 현실과 가상의 완벽한 일치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그로 인해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구글 글래스가 증강현실 기기로의 변신에 성공하여 포켓몬 go 앱과 연동되어 포켓몬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체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24시간 구글 글래스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일단 여기 한 명 예약이니 제발 만들어주세요


아마 다들 이러고 다니지 않을까


포켓몬에 이어 유희왕도?


포켓몬 go로 증강현실 게임이 히트를 치면서, 이후에는 어떤 게임이 제2의 대박을 터트릴지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유희왕>이었다. 유희왕은 20년 전 이미 증강현실을 배경으로 카드게임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 만화이다. 

증강 현실로 플레이 하면 진짜 재밌을듯

북미에서도 yu-gi-oh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돈 냄새를 잘 맡는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사용자 입장으로서는 하루빨리 냄새를 맡아 개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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