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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천 Jul 20. 2016

잘못 알려진 명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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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생각

글재주는 아무개가 굴리고, 명성은 유명인이 챙긴다?


우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유명한 사람의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이는 마치 라면 소스와도 같아서 주장이 빈약한 글이나 논리 없는 말에도 그럴듯한 설득력을 불어넣어 준다. 라면 소스는 사람들에게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이상 실패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멋진 사람들의 더 멋진 말을 찾으려 애쓴다.


이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되도록 참신한 말들을 향한 수요가 끊이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매력적인 문장을 매력적인 사람과 합쳐서 사용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그 결과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의미가 와전된 명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렇게 바로잡은 사실들 중에서 재밌게 생각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버나드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신랄한 풍자가 담긴 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물쭈물~"이 오역인 것을 알지만, 그의 진짜 묘비명이 무엇인지는 오역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실제 그의 묘비명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으로, 해석하자면 "오랫동안 버틴다면 이와 같은 일(죽음)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지"정도가 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될 줄 알았지"에는 목표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들에 대한 훈계적 의미가 들어있는 반면, 원문은 죽음을 차분히 맞이하는 도인의 기운을 내뿜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역이라고 알고 있는 문장 또한 원문과는 다른 의미의 교훈과 익살스러움이 담긴 오역이고, 어쩌면 원문보다 더 버나드쇼다운 오역이다. 둘 중 하나의 문장을 내 묘비에 넣는다면 나는 오역을 택하고 싶다.


마크 트웨인-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에, 거짓은 지구의 반을 갈 수 있다.

다음은 미국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이 했다고 알려진 명언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해석은 제대로 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문장이라는 신발이 주인을 잘못 만난 경우이다. 마크 트웨인은 윗 문장의 최초 사용자가 아닌 마지막 사용자이자 최종 수정 작업을 수행한 사람이다. '진실-신발, 거짓-지구'와 비슷한 의미의 문장이 처음 발견된 시기는 마크 트웨인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1787년으로, '토마스 프랭클린'이란 작가의 책에서 나왔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조나단 스위프트같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 수정, 보완을 거듭하던 문장은 1921년 마크 트웨인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돌려쓰던 '인용문'이라는 신발을 마지막에 받아서 멋지게 리폼한 디자이너랄까.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문장 자체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인용문이다. 좀 더 자세한 진위여부를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하여 내가 봤던 출처를 첨부한다. (출처: http://quoteinvestigator.com/2014/07/13/truth/


단테-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에게 늘 채찍처럼 내려지는 인용문이자, 사실상 오늘의 글을 쓰게 만든 인용문이다. 내가 아는 인용문 중 가장 명확한 주제의식과 강렬한 표현을 가진 문장이었는데 이마저도 사실과 다를 줄은 몰랐다. 위의 내용은 흔히 13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인 단테의 명저 <신곡>에 들어있는 내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어 번역은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 of moral crisis preserve their neutrality"로 해석은 알려진 내용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는 단테의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 내용라고 한다. 단테의 <inferno(지옥)> 중에서 위와 같은 인용문을 이끌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장은 

This miserable way
is taken by the sorry souls of those
who lived without disgrace and without praise.
They now commingle with the coward angels,
the company of those who were not rebels
nor faithful to their God, but stood apart.

이다. 어디에도 "가장 뜨거운"이라는 표현은 나와있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뜨거운'은 어디에서 유래된 걸까.


시작은 1915년 루스벨트의 책 <미국과 세계전쟁>에 쓰인 그의 문장이었다. 그는 책에서 단테를 인용하며 지옥의 "특별한 장소" 가 선도 악도 아닌 사람들에게 마련되어 있다고 했고, 그 뒤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책에 이를 "가장 낮은 장소"로 사용했고, 다시 누군가가 '가장 낮은 장소'를 '가장 뜨거운 장소'로 바꿨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불분명한 출처를 전 세계에 퍼뜨린 장본인은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였다. 1956년 연설에서 그는 “단테가 언젠가 말하길,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단테는 무려 800년 전부터 중립충의 출현을 예견한 선지자의 반열에 올랐다. 정리하자면 단테가 지옥 어딘가에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고 적은 것은 맞지만, 그곳이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장소라고 한 적은 없다. 


휴~ 살았다.


에디슨-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99%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에디슨의 이 명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는데, 사실 '아무리 노력한들 1%의 영감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고 이를 신문기자가 '99%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로 오해하고 기사에 실었다고 한다. 에디슨은 나중에 자신의 참 뜻을 기자에게 다시 전달했으나 이미 일파만파 퍼진 '에디슨이 노력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대!!!'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기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제대로 이해만 했다면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노력해야지 노력!!'이라는 잔소리를 조금은 덜 들었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알려진 저 명언은 사실 미국의 기자이자 언론인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이 그의 책 The Stakes of Diplomacy (1915)에서 쓴 문장이라고 한다. 이때 재밌는 차이를 발견했는데, 위의 적힌 한글 문장으로 구글 검색을 하면 글의 주인으로 모두 아인슈타인이 나오는 반면, 원문인 'when all think alike no one thinks very much public opinion'으로 검색하면 대부분 월터 리프만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리프만의 인지도가 아인슈타인에 비해 낮기 때문에 생긴 일 같다. 월터 리프만은 퓰리처 상 까지 받은 훌륭한 언론인이었다는데, 그의 인지도가 한국에서 저 문장을 전파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그런 월터 리프만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서일까. 대한민국에 누군가가 앤디 워홀의 이름을 빌려 월터의 한을 달래주는데...


앤디 워홀-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실제로 앤디 워홀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 인용문과 앞선 인용문들과의 차이는 이 인용문이 순도 100% made in korea라는 점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어디에서도 (아마) 앤디 워홀의 저 말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글에서 'be famous, and they blah blah~'를 검색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네이버, 티스토리, 브런치의 url을 만날 수 있다. 


최초 유포를 누가 했는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만든 최고급 찌라시이다. 백남준도 아니고 피카소도 아니며, 오줌이나 토도 아닌 똥을 고르는 심미안은 노오력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공중파에서도 인용되는 자신의 문장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쯤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다단계 회사에서 최상급 다이아 회원님은 아닐는지 궁금하다. 대국민 추리 쇼로 최초 유포자를 찾아내어 그 사람에게 35억을 준다면 분명 'creative korea'를 뛰어넘는 카피라이트를 뽑아내지 않을까. 국가가 나서서 그를 찾아내야 한다. 이런 인재를 쓰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아참, 유명한 분들은 그냥 집에서 볼일 보시기를 바란다....


번외 편: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팝의 왕 마이클 잭슨!

이건 명언과는 관련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 스타들을 표현할 때 흔히 발생하는 실수 내지는 과장에 관련된 내용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처럼 각 분야에서 특별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게 전부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故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그를 표현하는 대명사는 'King of Pop' 즉 '팝의 왕'이다. 황제라는 칭호는 마이클 잭슨과는 무관하고 누구도 emperor of pop으로 불리지 않는다. emperor란 칭호는 스티비 원더가 얼마 전 사망한 故 프린스를 기리기 위해 '만일 마이클 잭슨이 king of pop이라면, 프린스는 emperor of pop이다 (If Michael Was the King of Pop, Prince Should Be the Emperor)'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이 또한 추모의 의미로 쓰였을 뿐 프린스를 수식하는 표현은 아니다.


이처럼 호칭을 달리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사대주의나 열등감이 있다기보다는(임요환도 황제라고 부른다!) 그저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에서의 왕은 황제의 밑에 있는 이인자의 느낌이 강한 반면, 황제라는 직위가 낯선 서양에서는 'king'이 일인자로 알려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king이라 부르는 의미를 우리에 맞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등급을 올린 것 같다. 


(다만 황제를 너무 남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마이클 조던을 우리는 농구 황제라고 부르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그보다 legendary player, air jordan, black cat, his airness라는 별칭으로 많이 불린다.)     

 



세상 모든 말들과 사건에 예의 주시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인용하는 모든 말들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일은 피곤하고, 솔직히 불필요한 일이다. 다만 명언을 수용하는 입장이 아닌 사용하는 입장에 처할 때, 자신이 인용하려는 문구에 대한 한 번씩의 확인은 필요하다. 


내가 사실을 검증하여 썼던 이 글도 만일 인용하려면 또 한 번의 '검증'이 필요하다. 검증을 마친다면 자신의 글에 자신감을 생기고, 자신감이 동반된 글은 그렇지 못한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전달력과 호소력이 실린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말 자체만 인용해도 좋다. 비록 권위는 줄어들지언정 말의 의미만큼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P.S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은 확실히 알려진 그대로였다. 그 명언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모두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클 타이슨


전문: "People were asking me [before a fight], 'What’s going to happen?, ' " Tyson said. "They were talking about his style. 'He's going to give you a lot of lateral movement. He's going to move, he's going to dance. He's going to do this, do that.' I said,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Then, like a rat, they stop in fear and freeze.' " 출처(http://articles.sun-sentinel.com/2012-11-09/sports/sfl-mike-tyson-explains-one-of-his-most-famous-quotes-20121109_1_mike-tyson-undisputed-truth-famous-qu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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