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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천 Jul 28. 2016

스낵컬처 좋아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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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IT

스낵 컬처, 그냥 맛있게 즐기자.


잠에서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킨다.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손가락은 능숙하게 랭킹뉴스에 들어가 전날 밤 있었던 사건/사고, 연예계 이슈를 10위까지 빠르게 훑는다.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 위험 2배'라는 카드 뉴스를 본 이후 5분 이내에 볼일을 보지만, 그 시간 동안 웹툰 2~3개는 거뜬히 해치운다. 학교를 가는 동안 관심 있는 뉴스만을 모아주는 큐레이션 서비스에서 골라준 기사를 읽고, 다음 카페에 올라오는 실시간 유머글을 일일이 클릭한다. 옆 사람은 20분 남짓한 웹드라마를 본 후에, 1~2분짜리 TV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을 튼다. 우리를 이어주는 '나와 옆사람의 연결고리, 우리 안의 소리'를 스낵 컬처라고 부른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의 야인시대와 '해보긴 해봤냐'는 영웅시대를 지나 한국은 스낵 컬처의 시대를 맞이했다. 뉴미디어의 일종인, 스마트폰 기반의 짧은 콘텐츠들이 스낵 컬처 시대의 주인공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는 소수의 신문 구독자와 1월 1일 단 하루만을 함께 하는 반면, 페이스북에 올라온 하상욱 시인의 시는 수십만 명에게 전파되어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는 세상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1층까지 내려가는 사이, 라면에 물을 붓고 면발이 꼬들해지는 동안 소비할 수 있는 한입 사이즈의 콘텐츠를 점점 더 찾게 되었다. '뭉치면 산다'는 말이 전장에서의 격언이었다면, '짧아야 팔린다'는 오늘날 콘텐츠 시장의 격언이다. 더욱 잘게 쪼개고 자극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야만 사용자들의 클릭과 구독률을 높일 수 있다.


다들 많이 알겠지만 그래도 스낵 컬처란?


스낵 컬처란 대체로 깊은 내용 전달보다는 가벼운 유머 위주의, 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간식 같은' 콘텐츠들을 일컫는다. 카드 뉴스, 웹툰, 웹소설, 팟캐스트, 인스타그램처럼 오늘날 모바일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이에 속한다. 초기에는 기존 미디어(신문, TV)의 내용을 요약하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카카오의 1boon과 '우주의 얕은 재미'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피키캐스트처럼 스낵 컬처만을 생산하는 앱들과 매체들이 많아졌다.

스낵 컬처 열풍은 해가 갈수록 커져왔고, 앞으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4,200억 원 규모로 성장한 웹툰의 시장가치 2018년 8,800억 원으로 두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웹툰 이외에도 스타트업이나 신생 미디어 업체들의 전유물이었던 웹 드라마, 모바일 광고, 카드 뉴스 시장에 기존의 미디어 공룡들( KBS, tvn, 조선일보 등)이 뛰어들어 박터지는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대기업들의 진출에도 겁먹지 않고 계속해서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성공담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스낵 컬처의 파이는 지금보다 더욱 부풀어오를 전망이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스낵 컬처가 자리 잡았고, 관련 시장이 끊임없이 커가고 있지만 스낵 컬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모두가 즐기고 있지만 자신의 취미가 스낵 컬처라고 밝히기를 꺼려한다. 아직까지는 하위문화, 마이너 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스낵 컬처에 대한 중독이 너무 위험하다는 걱정의 목소리만 들린다. 스낵 컬처로 인해 뇌가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결국에는 디지털 치매를 얻게 되는 '팝콘 브레인'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기술적 발전과 유행이 급속도로 진행된 사회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난 사회에 비해 부작용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스낵 컬처를 향한 사람들의 걱정을 공감하고, 경계하면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낵 컬처와 관련된 우려 중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스낵 컬처로 인해 사람이 더 이상 생각과 사색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스낵 컬처 때문에?


신문 사설을 읽다 보면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나게 되는 문구가 있다. '~~~~. 요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 '고전을 멀리 하고 짧은 글이나 사진만 찾는다' 등등. 논설위원들의 이러한 걱정은 IT와 도서 관련 사설에서만 나오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만병의 근원이 스마트폰과 스낵 컬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한다는 위의 견해에 반대하지 않는다. '요즘'만 빼고.


저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개개인이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는 시절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봤다. 안타깝게도 2000년대는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스마트폰 대신 '스타크래프트'와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미쳐있었고, 열 살 많은 삼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이전의 시대는 달랐을까? <건축학개론>에 나온 납득이는 왜 플라톤이 아닌 여자 꼬시는 법만을 친구에게 전수했을까.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친구들은 5명이나 모여서 왜 토론하지 않고 소방차 춤을 추며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흉내 냈을까. 무엇보다 그 많은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왜 그러한 모습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젊은 날을 떠올렸을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학생들이 이성문제나 유행만을 쫓으면서 살았다니 말도 안 된다! 공교육이 정착된 시절에도 그랬으니 근대사회나 조선 이전은 굳이 돌아보지 않겠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애초에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놀면서 보내왔다는 것이다. 스낵 컬처와 스마트폰이 없던 세상도 (미안하지만) 철학자의 시대는 아니었다. 물론 자신만의 생각을 하면서 살면 좋지만, 애초에 이루어진적 없는 이상 세계의 문제를 이후에 나온 스낵 컬처에서 찾는 건 조금 민망하다.

라톤이형이 원한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아마 우리 때는 아닐거다..


중독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림이 말했듯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히고, 오늘의 문제는 다음 세대의 트렌드가 등장하면 사그라든다. 스마트폰 이전에 우리 사회의 중독과 관련된 이슈는 모두 컴퓨터 게임에서 나왔다. 스타크래프트에 온 사회가 열광하던 2000년대에 기성세대들은 게임 중독을 걱정했고, 공중파 방송에서는 '우리의' 임요환을 불러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면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드냐는 질문을 심각하게 물어봤다.

임요환 아침마당 사건: https://youtu.be/prD1iCtWQcE 


지금 보면 어이가 없지만, 당시에 많은 어른들은 정말 게임을 사회악으로 바라보았고 걱정의 결과로 '게임 셧다운제'라는 법안도 생겨났다. 이는 주인공들의 흡연 장면이 아이들의 흡연율을 높인다며 TV에서 담배를 없애버린 순진하면서도 억압적인 규제와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의 생각은 투입한 대로 생성되기 때문에 (그들이 봤을 때) 올바른 내용만 보게 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부의 국정화 교과서 추진 논리와 똑같은데, 교과서 문제는 파가 갈려 치열하게 싸우는 국회의원들이 게임이나 방송 규제에서는 참 합의가 잘 되는 모습들이 아이러니하다.         

정말 사람들을 생각하게끔 만들려면 자신들의 의지와 생각이 담긴 콘텐츠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하면 된다. 스낵 컬처를 흑사병 보듯이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에서 검증받으면 될 일이다.


스낵 컬처 덕분에 내 삶은 발전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스낵 컬처를 좋아하고,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주장일 수 있지만, 나는 스낵 컬처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 정보들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데 책만큼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해왔던 게임이나 만화 보기, 스낵 컬처를 중독 활동이라고 부른다면, 그동안의 중독 활동들은 중독된 매체에 대한 지식과 경험만을 증가시켰다. 스타크래프트를 미친 듯이 할 때에는 게임 실력만이 늘었을 뿐이다. 그러나 카드 뉴스는 같은 시간 동안 세상의 많은 일들을 알려주었고, 내가 냈던 과제에는 웹드라마에서 나온 대사 혹은 유머 콘텐츠에서 착안한 문장이 녹아있다.


얼마 전 출시된 베스트셀러 중에 '지대넓얕'이라는 책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준말인 이 책은 팟캐스트로도 인기를 얻었는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 수요가 증가했음을 알려준다. 모르는 분야를 처음 접할 때에는 스낵 컬처를 이용하여 지식을 얻는 게 효율적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미국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나를 포함한 6명이 모두 샌더스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들 나처럼 페이스북이나 카드 뉴스를 통해 그 자가 사회주의자이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다는 정보만 알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던 한 친구의 설명을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카드 뉴스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미국의 대선 후보도 아닌 경선 후보였던 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까. 이처럼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한 기초체력을 스낵 컬처를 통해 기를 수 있다. 유능한 수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사람에게 구구단부터 배운다면 그 자체로 시간낭비 아니겠나.


과자만 먹는 삶을 찬양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먹지 못했던 과자를 쉽게 먹을 수 있게 된 시대를 애써 깎아내리고 비관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의 반대편에는 칭찬과 격려를 먹고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문화도 사람처럼 저마다 성장환경이 다르다. 때로는 채찍질도 하고 칭찬도 하고, 어르고 달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지만 스낵 컬처를 칭찬해주는 목소리는 너무 작고, 깊숙한 곳에 있는지 그동안 들을 수 없었기에 나라도 이 깊숙하고 작은 공간에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과거보다 잘 즐기고 있고, 스낵 컬처도 잘 자라고 있다고  


(스낵 컬처를 보완하는 브런치의 역할도 쓰고 싶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까 봐 다음에.. )



(誤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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