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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Jul 28. 2019

멈추어진 시간 속에 갇히다

-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2016년 -

가려진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만의 세상이 있다. 홀로 국한되는 그런 시간들이 내게는 참 많았다. 그러다보니 남들에게 나서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 것들이 뭇사람들에게 가려지기 시작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평범함을 겉에 두르고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지만 가슴속에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가려진 부분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가려진 부분들이 우리를 만들고 생각하게 하고 보이는 것의 버팀목이 되는 것은 아닌가.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생각난다. 어마어마한 빙산이 바닷물 속에 버티고 있다. 내게 가려진 시간은 보이지 않는 빙산이 아니던가. 그것이 나의 보이는 부분을 만들고 드러나는 시간들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가려진다는 것은 아픔을 품고 있다. 멈춘 시간 안에 갇힌 한 아이의 애절함이 내면의 감정을 비틀고 그 틈 사이로 외로움이 새어나온다. 

엄마를 잃고 새 아빠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은 외톨이다.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지내다 성민(어린성민 이효제)을 만나서 친구가 된다. 둘 만의 공간에서 둘만의 암호와 기호로 의사소통을 하고 둘만 아는 추억을 쌓아가던 중 친구들과 발파현장을 구경하기 위해서 산으로 갔다가 동굴을 발견한다. 성민은 그 동굴 깊은 물속에서 빛나는 알을 꺼내들고 나온다. 그곳에서 모두가 실종되고 유일하게 수린만 돌아온다.      

홀로 돌아온 소녀 수린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로 시작하는 《가려진 시간》은 논리적으로 이해되거나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다뤘다.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묘하고 멋진 볼거리를 선사하고 아픔들을 토해낸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키면서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공간과 시간이 멈추어있는 공간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큰 파도 앞에 성인 남자와 소녀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담긴 한 장의 그림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과연 두 인물은 어떤 관계일까. 처음엔 친구였지만 남자만 어떤 일로 인해 나이를 먹었고 그렇게 둘은 저 그림처럼 어른과 소녀의 모습으로 바다를 보고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민은 시간이 멈춘 공간에 두 번이나 갇혀서 30여년을 보냈다. 처음은 친구 둘과 같이 갇혀서 아이가 청년이 될 때까지 갇히게 된다. 친구 하나는 천식으로 죽고 또 한 친구는 그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고 혼자만 살아서 청년이 되어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에는 어릴 때의 친구 수린이 아직도 어린이로 남아있고 고아였던 성민(강동원)은 살인자로 몰리는 상황이 된다.

두 번째 시간의 갇힘은 친구 수린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알을 깨고 들어간다. 그때는 오로지 혼자다. 혼자서 긴 시간을 버티어내고 장년이 되어서 돌아오는 보이지 않는 그 비정함이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나의 몰입도가 너무 큰 것인가. 가슴한가운데가 막힌 채로 하루를 꼬박 버티고 며칠이 흐른 후에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는 어쩌면 구성면에서 여러 가지 단점이 있기도 했다. 어른들이 무조건 아이의 말을 부정하며 몰아붙이는 식으로 전개된 것이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현실에 처한 여러 가지 메시지들이 배어들면서 잔잔한 여운과 함께 폭풍과도 같은 감정을 선사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이들은 내적으로 각자의 공간과 시간 속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또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거나 늙어버렸다면…. 영화는 그것을 마치 수채화같이 슬프고 아름답게 덤덤히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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