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결혼식을 올리고,
2025년 3월 어느 일요일 밤 주말을 잘 마무리하고 잠들려던 순간, 남편이 면직 의사를 표명했다.
이번에는 진짜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 날 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선 남편을 잘 달래주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응원하겠다고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공무원이 뭐 대단한 직업이라고
억지로 버틸 필요 없다며
무슨 일을 하든 돈만 벌면 되는거라고 근거 없는 위로와 응원을 퍼부어줬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심장이 내려앉으며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걸까?
나도 월 200만원 겨우 버는 8급 공무원인데 남편 일이 잘 안 풀린다면?
남편이 마음이 변해서 집에서 계속 쉬기만 하면?
'남편'이라는 존재를 마치 아들처럼 두 딸과 함께 키워낸 우리 엄마의 삶이,
순간적으로 내가 살아본 것처럼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솔직히 조금은 무섭고 두렵다.
물론 내가 말렸다면 남편은 면직을 다시 생각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계속 하며
야근과 주말근무를 반복하는 삶을 정답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을 뿐더러,
내가 무섭고 겁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삶을 종용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덜 벌더라도, 몸은 좀 더 힘들 수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덜 고통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했다.
남편은 이런저런 일들을 고민하다
시부모님이 하시는 딸기 농사를 함께 해보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향이 나와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나에게는 썩 좋지 않은 방향이라 심란해졌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하고,
내 본가에서는 멀어지고 시가 가족들과 가까워지는 선택이며,
친한 친구, 동료들과도 멀어진다.
그 지역은 지금 사는 곳보다 인프라도 좋지 않고,
나름대로 직장에서 잘 쌓아온 승진 점수를 깎아먹게 된다.
승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 스스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나만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악몽을 꾸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진짜 내려놓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내려놓자, 내려놓자"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앞으로 10초 간 심호흡을 하며 내려놓을건데,
그럼 이제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 하는 기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진짜 내려놓기 위해서는
인생에는 늘 고통이 따른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항상 내가 '바라는 일'과 '바라지 않는 일'을 구분하고
오직 '바라는 일'만을 원해왔는데,
사실 그런 삶은 없는거다.
내가 바라는 것이 '남편과 행복하고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면,
거기에 딸려오는 바라지 않는 것들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인생의 흐름에 그냥 나를 온전히 다 맡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던 불안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선택한 삶이니 어떻게든 또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대책 없는 희망이 생겼다.
누군가는 이 소식을 듣고 미쳤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런 사람들인 걸 어쩌겠습니까.
미친 선택을 했으니 미치게 잘 살아보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