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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 Feb 23. 2023

나는 과연 결혼을 후회할까?

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무릇 인간이란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하는 동물이기에 비단 결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에 후회라는 감정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결혼'에 후회라는 말이 붙어 다니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 불리는 뜨거운 감정이 사람들의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려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결혼을 선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도 알 수 없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또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가정을 꾸리는 분위기 속에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당한 사람과의 결혼을 선택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20대가 되니 명절에 만난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20대 중 후반이 되자 남자친구 유무에 대한 질문에 결혼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도 인생에서 결혼의 의미나 평생의 반려인을 찾는 현명한 방법 따위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은 걸까? 하다못해 꿈꾸는 가정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아쉽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언젠가 미래의 조카들에게 내가 들었던 것과는 결이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길 바라며 내 결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외국인과 결혼했다. 어릴 적 외국인을 사위로 데리고 오겠다며 우스갯소리로 뱉고 다닌 말이 현실이 되었다. 그 말을 했던 나조차도 신기한데 진짜 이루어질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편은 이탈리아 사람이다.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의 여러 방송에 나오며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모를 보여 준 덕분에 많은 여성들이 이탈리아 남자는 모두 그처럼 다정하리라 여겼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깨달은 것은 한국 남자가 모두 드라마 주인공처럼 다정한 것은 아니듯 이탈리아 남자라고 해서 모두 알베르토 몬디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 남편은 알베르토 몬디가 아닌 마띠아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탈리아 남자와 산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단한 러브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줄 만한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 따위는 없다. 그러므로, 부끄럽지만 현실 도피성 결혼을 했노라고, 덕분에 쓰디쓴 인생의 맛을 경험하는 중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후 더욱 심각해진 우울증을 조금씩 이겨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알아낸 것이 있다면 내가 정을 붙일 곳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기대와 희망이 아는 이 하나 없는, 언어도, 문화도, 음식도 모두 다른 이 나라에 오게 만든 이유였다. 이런 사실도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고 그 정도로 자신에 대해 정말 무지했다. 그래서 만약 5년 전으로 돌아가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하면 치열한 고민 없이 멍하니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


 누군가 나를 보며 매우 가볍고 철없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나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괜찮다. 과거에는 눈앞에 놓인 어려움을 모른 척하며 항상 도망칠 생각만 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극복하거나 버텨낼지를 고민한다. 도피성 결혼으로 인해 현실을 마주 보게 된 덕분에 진짜 인생은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인지 배우며 성장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비록 현실은 무지막지하게 쓰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달콤한 깨달음이 있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의 5년 뒤가 기대된다. 그땐 지금보다 얼마나 더 달라져 있을지 상상은 안되지만 분명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므로 나에게 '결혼은 해서 후회인가'를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후회는 시도했다는 증거이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니 이왕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해 보자. 그러나!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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