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번호 맞지? 내가 외우는 번호가 있거든. 누나 번호가 항상 외워져.]
그는 항상 내 번호를 기억했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동안 그의 핸드폰이 바뀌거나 고장이 나서 번호가 날아가도 내 번호를 기억하고 먼저 연락을 해줬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편했다. 이따금 안부를 묻고 일상 이야기를 하고 각자 연애를 할 땐 가벼운 인사만 건네며 거리를 지켰다. 통화를 한번 시작하면 매번 1시간이 넘도록 웃고 떠들 만큼 편한 누나 동생 사이였다.
[누나랑 연락하다가 못 했을 땐 학교 유급당해서. 2번이나 당해서 못 했어. 솔직하지 못했지, 뭐.]
[그랬구나. 힘들 때라 연락 못 했구나.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우리는 대학생 시절 대외 활동으로 처음 만났다. 나는 간호대생, 그는 한의대생이었다. 예과 2년, 본과 4년 총 6년을 다녀야 하는데 그 중 유급을 두 번이나 당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먼저 연락해 줘서 10년을 넘게 인연을 이어갔다.
[엊그제 친구를 만났는데 누나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오늘 누나한테 오랜만에 카톡 와서 깜짝 놀랐어. 강남역에서 같이 술 마셨던 친구도 누나 이야기 가끔 해. 기억나?]
[기억하지. 우리 강남역에서 같이 술 마시고 노래방도 갔잖아.]
[맞아. 친구가 이야기 할 때마다 누나 잘 지내나 궁금했어.]
9년 전쯤인가, 그는 친구들과 강남역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대외활동에서 만난 친구와 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누나들! 나 친구들이랑 있는데 이쪽으로 올래? 같이 놀자.]
그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 2명과 함께였다. 알고보니 그의 친구가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한다며 소개해주는 자리라고 했다. 그는 착하고 순수한 심성을 가진 남자여서인지 친구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의 친구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이성의 감정이 싹트진 않았다. 그 날 하루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그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같이 찾아주고 제법 유쾌한 하루였다. 그의 친구는 지금도 잊지 않고 가끔 내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나도 너 오랜만에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래 연락 끊긴 게 처음이라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누나랑 연락할 땐 신기한 적이 많다. 친구가 누나 이야기 하면 누나한테 연락오고, 누나 생각나면 연락오고.]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연락이 닿지 않을 땐 가끔 생각나는 존재였다. '내 친한 남자 사람 친구야.'라고 지칭할 수 있는 존재였다.
[너랑 연애하는 여자친구는 되게 좋을 것 같다. 좋은 남자친구 같아.]
서로의 연애사도 대충 아는 사이에 서로를 이성으로 보기보단 정말 괜찮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좋은 사람 그러나 남자는 아닌 존재. 하지만 사람 인연은 모르는 걸까. 질긴 인연은 우리를 남녀관계로 엮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게 얼만데, 더 알아볼 사이는 아닌 것 같아. 난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
우린 운명인가봐. 질긴 운명.
서로에게 너무 큰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지독하게 끊어내지 못 하고 결국 상처를 남긴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