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2

by 주디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된다.



5.

나는 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쪽이고 그는 결혼을 생각해야만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부분이 맞지 않아 서로가 마음속에 박힌 채 놓지 못하고 고민했다. 우리는 결국 갈등으로 멀어진 뒤 다른 이성을 만나며 방황을 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몸을 소홀히 하며 건강을 뒷전으로 여기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 건강 관리를 하라며 영양제를 사주고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겠다며 식단을 짜줘도 지키다 말고, 아침 일찍 수영을 갈 테니 모닝콜을 해달라는 말에 새벽부터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고 잠을 잤다.


“나중에 결혼하면 내가 너 병간호해야 하는 거 아니야?“

“누나가 나 챙겨주고 살 빼게 도와주면 되지.”

“챙겨줘도 안 하잖아…”


한때 의지가 불타 내가 알려준 대로 식단 관리에 관심을 갖는 모습이 기특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회식도 많고 몸을 챙길 시간이 부족하니 조금씩이라도 노력했으면 좋겠는데. 크게 아픈 적이 있음에도 의지박약으로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멘탈이 건강하지 못해 감정이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부족한 모습에 여러 번 실망을 했던지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보려 했다. 새롭게 알게 된 남자 중에 진취적이고 운동을 하고 주관이 확고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알아갔다.


“헬스장 어디 다녀? 내가 갈 테니까 다음에 같이 운동하자.”


함께 운동하자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설렘이었고 그에게 없던 모습을 크게 부풀려 좋은 사람이라 세뇌를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사주며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데도 편하지가 않았다. 새로운 남자 앞에선 가면을 쓴 채 맞춰주려 하고 있었다. 좋은 관계로 발전하려 했지만 오로지 잘난 맛에 사는 듯한 모습에 소박함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그가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만 울고 다른 이성을 만나서 웃기만 해야지 결심했는데 역시나 실패였다.


그땐 몰랐는데 그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성장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불만으로 틀어진 감정에 내 의견을 듣고 싶지 않아 마음대로 행동한 것이었다. 이후 오해를 풀고 재회를 했을 때 술을 끊고 나의 조언을 새겨듣고 도움을 고마워하며 꽤 적극적으로 실천하려 했다. 이전의 나는 그가 우유부단하고 의지박약인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편견을 갖고 대했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자신의 나이가 30대 중반에 다다르니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내가 연상인 것에 고민을 했다. 나의 신체 나이는 젊더라도 실제 나이는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말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장점으로 덮기 위해 노력하겠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연하에 선망하던 직업을 가진 여자를 만났다. 새로운 온기와 설렘을 느끼며 연애를 했는데 맞지 않는 성격에 이틀에 한 번은 싸웠다고 한다. 챙김 받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해하던 그는 자신이 챙겨주고 싶은 모습에 신선함을 느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새롭게 만난 여자의 직업에 환상이 있었다. 전부터 자신이 꿈꾸던 직업 중에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단히 여겼는데 알아갈수록 크게 실망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안 맞는 걸 내가 겨우 맞춰서 만났는데 걘 고마움도 모르고.”


외골수적인 성격에 힘들었지만 맞춰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는 누나동생 사이가 익숙해 아무렇지 않게 지난 연애사를 늘어놓았다. 초등학생 아들이 엄마를 찾아와 주저리주저리 일과를 늘어놓듯이 그는 나를 찾아와 일상을 끊임없이 공유했다. 심기가 불편한 말들도 있었는데 불편한 티를 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연애에서 갑이 되지 못해 이러는 거라며 연애 충고를 했다.


“누나는 좋아하는 남자한테 그러면 안돼. 갑이 돼야지. 한참 더 배워야겠어. 그러다 당한다.”


사과 후에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나중에 내 딸이 엄마 닮아서 똑같이 당하면 어떡하지. 자괴감이 들었지만 웃는 척했다. 나는 그를 밀어내며 전 여자 친구에게 미련이 있는 것 같으니 내 옆에서 이러지 말고 연락해서 다시 만나라고 말했다.


“그 여자한테 너를 꼭 품어주라고 말해줄걸. 오래 잘 만나보라니까 왜 헤어져서 나한테 오게 만드나.”


이따금씩 귀찮으니 나 말고 다른 사람 찾아가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는 다른 이성을 만나 비교되는 마음으로 과거에 묶여 전 여자친구에게 다시 돌아가거나 환승을 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결국 내가 그 여자를 만나고 누나가 정말 좋은 여자인 걸 알았네. 내가 그거 정말 싫어했는데.”


그는 매 순간 미안해하며 스스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환상이 만들어 낸 편견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누나랑 결혼할 것 같은데 이럴 거면 그냥…”

“우리 헤어져도 후회 없이 하자는 약속 지키자.“


우리의 약속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것이 아직은 없다. 과거를 후회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일찍 만날 걸. 아니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좋은 누나 동생으로 계속 지냈더라면 서로를 힘들게 하진 않았을 텐데. 이별하면 소중한 서로를 잃을지도 모르니까. 맞출 필요 없이 잘 맞고 계산 없이 편하고 종일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나의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삶의 일부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돌고 돌아 마침내 서로의 옆자리를 지켰다.



6.

그의 침묵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버텼다. 버티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실은 버티기보단 서운한 것들을 공유하고 풀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답답한 순간들이 무척 많았다. 관심도 없던 샤머니즘에 빠져 절반이나 틀린 연애운을 듣고 있질 않나 다 내 잘못이니 충고와 조언을 들어야지 생각하다 관계가 더 틀어졌다. 나의 서툰 고집이었다.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다. 그러다 한 번씩 터져 뾰족한 말들로 그를 괴롭혔다. 그는 상처받았다. 나는 트라우마 덩어리였고 그 시절 내가 만든 트라우마로 긴 시간을 괴로워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며 나에게 집중하려 노력했다.


“누나. 나를 갉아먹는 사람은 가까이하면 안 돼.”


그는 나를 갉아먹는 자신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도망쳤다. 그는 나에게 의탁하고 싶어 하면서도 방법을 몰라 헤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를 아꼈다. 그는 자신이 힘든 걸 인정하기 싫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삼켰다.


“난 사과 한마디를 원한 건데 …”


난 사과 한 마디면 풀렸을 텐데. 사과없이 알 수 없는 말만 내뱉는 그를 보며 나는 사과를 멈추고 입을 닫았다. 그의 침묵이 갈등으로 번졌을 때 자존심 싸움을 하듯 덩달아 사과를 아꼈다.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이 어려운 사람이 아님에도 그에게 사과하면 내가 버틴 게 보상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가장 아픈 말들을 꺼내 던지고 비겁하게 숨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상황과 바닥을 보면 내가 그를 경멸하고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레 겁을 먹고 밀어냈다.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먼저 버리는 선택을 했다.


“난 너 자체로 충분해.”

“너무 힘들어서 누나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웃고 떠들 수도 없어.“


그는 완벽하지 않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밀어내면서도 떠나지 않길 바라고 자신의 바닥을 부끄러워서 하면서도 모든 면을 사랑해 주길 바랐다. 나는 내 사랑이 그의 아픔을 구원할 수 있다고 오만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단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삐뚠 모습을 보이는 상대를 보며 힘든 일이 많아 방황한다고 오해했다. 우리는 사랑을 완성시키고 싶었고 상실이 두려웠던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7.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했더라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성장했고 각자의 마음속에 엔딩과 결실을 품었다. 비로소 나의 계절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 밤은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꿈을 꾸길, 내일은 오늘보다 더 평안하길 바라며.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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