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서울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시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저희 차 타고 같이 가시는 게 어때요? 저희가 모시러 갈게요."
나는 시아버지께서 당연히 "응, 그래 같이 가자."라고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시아버지께서는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너희 아직도 새 차 안 뽑았지? 그 차는 오래되고 좁아서 싫다. 우리는 버스 타고 가련다."
우리 부부는 10년 전 시아버님께서 남편에게 사주신 차를 몰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고물차로 보일지 몰라도 연애 때부터 추억을 함께 한 붕붕이라서 아직까지 헤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버스보다야 저희랑 같이 가는 게 낫죠. 저희랑 가요!"
우리는 시아버지를 다시 한번 설득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아니다. 우리는 알아서 갈 테니 너희는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오너라."
우리는 전화를 끊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상하네. 왜 싫다고 하시는 거지?"
"그러게. 진짜 자동차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했지만 끝내 시아버지께서 우리 차를 타기 싫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우리 자동차가 진짜 고물차로 보이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리 차가 그렇게 낡았나?"
"아냐, 난 우리 차가 제일 편하고 좋아. 마음에 담아두지 마. 이왕 이렇게 된 거 둘이서 데이트나하자."
"그래, 좋아!"
우리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짓고 서울로 향했다. 저녁 예식이라서 오랜만에 오붓하게 둘이 점심도 사 먹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다녀왔다. 서울까지 먼 길이었지만 댄스 음악을 빵빵 틀고 드라이브를 하니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어느새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어머님! 아버님!"
친척분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시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 그래 너희들 왔냐?"
"언제 도착하셨어요?"
"우리는 세 시간 전에 왔지."
"헤엑. 진짜요?"
예식 삼십 분 전에 도착한 우리 부부와 달리 시부모님께서는 세 시간 전에 도착하여 대기하고 계셨다. 시댁 쪽은 유난히 친척이 많아서 한 명 한 명 인사하고 근황을 나누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속으로 우리 차를 탔으면 늦게 출발한다고 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예식 시작하나 보다. 가자!"
우리는 우르르 예식장에 들어갔다. 야외예식인데 하필 비가 올 듯 말 듯 우중충해서 찬바람이 훅하고 소매로 들어왔다.
"카디건 가져올걸..."
나는 울상이 되어 맨 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시아버지께서는 구석 자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 쪽은 바람이 안부는 것 같으니까 저기 뒤쪽에 앉아라. 우리는 앞쪽에 앉을게."
시아버지의 말씀대로 뒤쪽은 바람이 잔잔했다. 나는 맨 뒷자리로 쪼르르 달려가 냉큼 앉았다. 남편도 나를 따라 옆에 앉았다. 나는 남편에게 소곤댔다.
"나만 추운 거 아니지? 아버님은 안 추우신가?"
남편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추워도 안 추운 척하시는 거 같은데? 그래도 가까운 친척이니까 앞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봐."
"아, 그렇구나. 우리도 앞으로 가면 좋은데 너무 추워서 못 가겠어."
멀리서 지켜보니 시아버지는 찬바람에 닭살이 돋은 듯했고, 시어머니도 추우신지 자꾸만 스카프를 돌돌 동여매셨다. 다행히 예식은 짧게 끝났고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께 말했다.
"돌아가실 땐 저희랑 가요."
시부모님은 또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겠다고 하시다가 결국 못 이기는 척 말씀하셨다.
"그래, 같이 가자."
차에 올라탄 우리는 댄스 음악을 클래식으로 바꾸고, 뒷좌석을 넓히기 위해 앞 좌석을 앞으로 당겼다.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빠, 우리랑 가니까 훨씬 편하죠?"
"흠흠, 편하긴 뭐... 좋긴 하네."
나는 시아버님의 말씀에 헤헤 웃었다. 고물차라고 서운해하던 남편도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우리는 화기 애애한 분위기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친척 중 누군가 취업했다는 얘기,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얘기,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라는 얘기, 나는 솔로가 재밌다는 얘기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이 들면 인생이 참 허망해져."
남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이, 아빠는 자식 셋을 의대에 보냈으니까 그 정도면 잘 살았죠. 혹시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되는 게 있어요? 내 나이로 돌아가면 뭐 할 거예요?"
"음..."
나는 시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후보가 떠올랐다. 예를 들면 서울에 집을 사놨어야 했다던가, 재개발될 땅을 사놨어야 했다던가, 로또를 샀어야 한다던가, 더 좋은 직업을 갖었어야 한다던가, 운동을 열심히 했었어야 한다던가, 여행을 많이 다녔어야 한다던가 하는 수십 가지의 후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너희 엄마한테 잘해주지 못한 게 제일 후회 돼. 그땐 사는 게 바빠서 잘해주지 못했어. 하지만 아들아, 나이 들면 다 필요 없다. 부부가 제일 소중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며느리한테 잘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여든이 넘으신 시아버지께서는 젊은 날 자식들을 키우느라 여유가 없어서 시어머니와 제대로 외식 한 번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아버지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퍼즐이 맞춰지듯 왜 시아버지께서 우리 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우기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금세 톨게이트를 지나 시내로 진입했다. 남편은 시댁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러자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굳이 집 앞까지 갈 필요 없다. 큰 사거리에서 내려주면 알아서 갈게."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바로 코 앞인걸요. 당연히 집 앞까지 가야죠."
우리는 또 이 문제로 한창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시부모님을 집 앞으로 무사히 내려드렸다. 시아버지께서는 손을 흔들며 말씀하셨다.
"고맙다. 덕분에 편히 왔어. 많이 피곤할 테니 얼른 집에 가고."
시어머니께서도 손을 흔들며 말씀하셨다.
"조심히 가고. 둘이서 행복하거라!"
우리는 멀어지는 시부모님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자동차를 따라오며 길을 밝혀주는 달빛이 시부모님의 온기처럼 느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