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선생님 Mar 21. 2024

혼자 남미로 여행 간 아내의 결말


  우유니 소금사막까지 가려면 비행기 몇 번 타야 할까.  

  인천-LA경우-리마-쿠스코-라파즈-우유니 코스로 가면 총 5번을 타야 한다.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최단 경로이다. 나는 혼자 훌쩍 떠날 수 있을 때 이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을 집에 두고 오더라도.


  쿠스코 공항에서 대기하는데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편: 어디야?

나: 이제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로 가려고.

남편: 위험하진 않아?'

나: 치안이 안 좋다고 해서 동행자 구했어. 괜찮아! 요즘 밥은 잘해 먹어?

남편: 집 근처 반찬집에서 김치찌개 사 왔어.

  남편은 김치찌개 3인분을 사서 큰 솥에 옮긴 후 냉장고 있던 두부, 고기, 각종 야채를 다 때려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 일주일은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일주일 내내 김치찌개만 먹으면 질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미안할 것 같았으면 남겨두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카톡을 끝내고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곧 탑승수속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동행자인 서경님, 우석님과 함께 탑승 줄에 섰다.

  "이거 좀 먹을래요?"

  서경님이 박하사탕을 건넸다. 입안이 화해지는 사탕 같은 건 거들떠도 안보는 나인데 긴장해서 그런지 자꾸만 달달한 게 당겼다. 

  "오, 감사합니다!"

  서경님은 우석님에게도 사탕을 나눠주었다. 우리는 사탕을 입에 물고 같은 비행기를 기다렸다. 


  나는 동행자인 서경님과 우석님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이름정도만 알 뿐이었다. 나이는 대충 40대라고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우리는 이런저런 개인 정보를 캐묻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갈 곳, 먹을 것, 구경할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와 아무런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같은 길을 걷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흔히 친구란 모든 것을 내주는 순수한 관계라고 하지만 세상에 얼룩진 나에게 친구 관계 또한 비즈니스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차라리 혼자인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짜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두 분과 함께했던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라파즈에 도착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만요, 하...."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이 찼다. 고산병이 도진 것이다. 얼른 우버를 불러서 시내로 내려가면 좋았으련만 볼리비아는 로밍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급한 대로 서경님이 갖고 있던 현금을 털어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서서히 고도를 내리니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와, 진짜 죽을 뻔했네."

  원래 여행이 끝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미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도 고산병만큼은 절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것 같다.  

"괜찮아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는 현금을 환전하러 시내로 나섰다. 시내는 뿌연 매연으로 가득했지만 내 눈에는 하나하나가 다 예쁘고, 또 예쁘게 보였다. 밤에는 도시를 수놓은 야경까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고산병은 싫지만 왜 이렇게 설레고 좋은 걸까.

  라파즈에서의 하루는 순식간에 저물어갔다. 

   

알록달록했던 라파즈 거리를 눈을 감아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


라파즈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보석을 내려다볼 수 있다. 





  다음날, 우유니로 행하는 최종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제발 날씨가 맑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누가 들으면 제정신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우유니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원래 1박 2일이나 길어야 2박 3일 정도 머무는 도시에서 나는 여정의 절반을 우유니에 쏟은 셈이다. 

  우유니는 비가 오면 서해안 앞바다처럼 칙칙해진다. 하지만 비가 너무 안 와도 문제다. 물이 고이지 않아 하늘과 땅이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완벽한 우유니를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맞다. 하지만 우유니는 그렇게 오래 머물 만큼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 아니다. 한마디로 유령의 도시나 다름없다. 그래도 나는 꼭 보고 싶었다, 뭉게뭉게 핀 천국 같은 하늘을.

"이야, 날씨요정이 강림하셨네. 하늘 좀 봐요. 날씨가 좋아요!"

  우석님이 맑게 갠 하늘을 가리켰다. 감탄이 나올 만큼 쾌청했다. 우리는 우유니에 도착하자마자 투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천국을 만나게 되었다.


끝까지 달려가면 언젠가 천국이 나올 것 같다
젊을 때 다녀오길 잘했다. 잘 달려서 뿌듯하다.
구름이 핑크색이라니, 핑크색이라니!



  우리는 우유니 한가운데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헤헤 웃으며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다. 내가 조잘조잘 남편 얘기를 하자 서경님이 물었다. 

"근데 남편이 혼자 여행을 허락해 준 거예요?"

"네, 제가 너무 오고 싶어 했거든요"

  가만히 듣고 있던 우석님도 한마디 덧붙였다.

"남편이 대단하네. 원래 잘 안 보내주잖아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저는 왔어요! 오길 잘했어요.

"좋은 분 만났네요. 결혼하니까 좋아요?"

"음......"

  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부부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결혼과 동시에 따라오는 책임감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좋은데 아쉬울 때도 있어요."  

  인간관계는 항상 양면의 동전 같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일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혼자 여행을 허락해 줬던 것처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서경님과 우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어려운 이야기는 접어두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같은 땅을 눈에 가득 담았다. 


  즐거웠던 데이 투어가 끝나고 밤이 되었다. 우리는 겉옷을 단단히 챙겨 나이트 투어 차량에 올랐다. 물이 고인 곳에 도착하자 바닥에도 별이 비춰보였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방이 별빛으로 빛났다. 우주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내 생에 이런 은하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다. 남편은 은하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 

남편: 어? 오오, 은하수네! 나도 은하수 보고 싶다.

나: 보고 싶어? 

남편: 응. 나 별 좋아해.

나: 음, 오빠가 오고 싶다면 내가 나중에 다시 와줄게. 

남편: 구경 다한 것 같은데 나 때문에 그 먼 길을 또 가겠다고? 고산병 때문에 죽을 뻔했다며.

나: 그래도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남편은 은근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물론 빈말로 들었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남편이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같이 가주고 싶다. 

나: 김치찌개 질렸지? 곧 내가 돌아가서 밥상 차려줄게.

남편: 알았어. 얼른 와! 

    나는 다시 한번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앞으로도 우리의 나날이 반짝이길 바라며 아름다웠던 남미에서의 추억을 가슴에 새겼다. 



  우유니에서의 며칠은 눈깜짝할 새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덧 서경님, 우석님과 헤어지는 날이 되었다. 나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고 두 분은 칠레로 넘어가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즐거웠어요."

"저희도요."

  며칠 만난 사이인데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같이 또 여행해요!"

"네, 잘 가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느꼈던 정다움이 참 소중했다. 나는 혼자 여행을 통해 잊고 지냈던 순수한 감정을 떠올렸다.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곧 인천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여행은 끝났지만 앞으로 더 넓은 세상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퇴직한 아빠를 행복하게 만든 급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