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인간이 자식을 낳거나, 작품을 만들거나, 글을 쓰는 이유도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뭔가를 이뤄내거나 남기고 싶어 하는 건 창작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다.
살다 보면 뭔지 모르게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가슴에 묻어 둔 창작의 씨앗에 숨을 불어넣으면 꺼져가는 불씨가 화르르 타오르 듯이 활기를 찾게 된다.
나도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심해에 빠져 허우적 댔을 때가 있었다. 코로나 때 감정의 바닥을 쳤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눈물이 났었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은 '글쓰기'였다.
나는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다.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고,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다. 그냥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갑갑해서 쓰기 시작했다.
첫 글쓰기는 가볍게 에세이로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원고 청탁도 많이 받았다. 전공을 살려서 문제집을 써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동화를 쓴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칭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여러 장르의 글을 써본 입장으로써 나름의 비교를 해볼 수 있게 됐다.
노동의 가치가 가격으로 매겨지는 자본주의 시대에 가성비로만 따지면 '매절 계약으로 넘기는 에세이'가 제일 나을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나 칼럼은 페이지 당 원고료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며, 그 액수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준히 청탁을 받아 본 사람은 공감할 내용이다.
하지만 '동화'에는 가성비로만 따질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에세이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어 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는 있는 반면에 동화는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동화책을 10권씩 내리는 작가는 많아도 에세이를 10권씩 내는 작가는 보기 힘들지 않은가? 동화에 발을 담그면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작가가 아니라 꾸준히 살아 숨 쉬는 작가가 될 수 있다. 수십 권 책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동화는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선물해 준다.
동화는 꽉 막힌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다. 가끔은 내 이야기의 인물이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번에 출간한 '속지 마! 왕재미'의 주인공 왕재미가 그러했다. 나의 존재가 우주 속의 먼지처럼 여겨져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조용히 찾아와 말을 걸었다.
'괜찮아, 너는 작지만 강해.'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 거야. 너는 언제나 너였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건 나를 응원해 주는 동화 속 친구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화는 문학이다. 에세이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문학적 배움의 기회를 준다. 스스로 터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편집자님들께서 열심히 조언해 주시고 서포트를 넣어주신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어떻게 써야 좋은지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해 주신다.
내 글이 에세이였다면 한 줄 한 줄씩 차근차근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나는 비로소 동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좋은 건 나 혼자만 누리기 아깝다.
당신에게도 에세이가 아닌, 동화를 추천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 다가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