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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ul 09. 2024

시누이가 친언니라면 어떨까?

지난 주말 서울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다리미를 들고 양복을 다렸다. 나는 오랜만에 샤랄라한 원피스를 꺼냈다.

"준비 다했어?"

"말 시키지 마. 나 지금 무지 바빠. "

나는 초고속으로 화장 퍼프를 두드렸다. 남자들은 옷 입고 머리 한 번만 쓱 빗으면 끝인데 여자는 왜 이렇게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은 걸까.

후다닥 화장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오늘따라 가슴이 빈약해 보인다. 뽕브라가 필요하다. 

"자, 나 어때?"

변신을 마친 나는 남편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구니 돌았다. 남편은 '방긋' 아니고, '빵긋' 웃으며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예뻐! 갑자기 이뻐졌어!"

잠옷을 입고 상투를 튼 채 우걱우걱 밥 먹는 모습에 익숙해진 탓일까. 남편은 나의 작은 변신에도 좋아라 했다. 

"이제 갈까?"

나는 여행용 캐리어를 챙겼다. 결혼식 가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필요하겠느냐마는 예식이 끝난 다음 남편이 곧장 학회로 가야 해서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자고 오기로 했다.

"오빠도 짐 다 챙겼지?"

남편은 양복이 든 가방을 흔들었다. 

"난 이거면 돼! 운전할 땐 편하게 입고 결혼식장에 가서 갈아입을 거야."

"오, 좋은 생각이네. 잠깐만! 나 거울 한 번만 더 보고 올게."

나는 심혈을 기울여 꽃단장을 마무리했다. 남편은 떠나기 전 창문을 닫고 가스 밸브까지 꽉 잠갔다. 

"가자! 레츠 고!"

우리는 서둘러 자동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시부모님을 모셔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핸들을 돌려 시댁으로 향했다.   



"아버님, 어머님! 목마르시죠?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에 제가 얼른 음료수 사 올게요. 뭐 드시겠어요?"

나는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면 돼."

시어머니께서 말했다. 시아버지는 한사코 마다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안 마셔도 괜찮다. 양복에 묻으면 큰일이야."

"에이, 그래도 말씀해 보세요. 달달한 거 사 올까요?"

"나는 괜찮다니까~ 먹다가 옷에 묻으면 어째?"

남편이 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적당히 사 오라는 뜻이다.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숍에 들러 음료를 사 왔다. 

"아버님, 요거트 드세요!"

"아이참, 괜찮대도!"

결과적으로 손을 내저으시던 시아버지는 차에서 내릴 때까지 손에서 요거트를 놓지 못하고 끝까지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도착했습니다!"

길고 긴 운전 끝에 결혼식장에 왔다. 우리는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어머! 다영이 왔어?"

 시누가 먼저 와 있었다. 우리 시누는 나를 딸처럼 여긴다. 실제로 남편이 막둥이라서 나와 시누는 나이차이가 꽤 많다. 이미 내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었건만 시누 눈에는 내가 챙겨줘야 할 아이처럼 보인단다. 

"네, 형님. 저 왔어요!"

"오늘 다영이 드레시하네! 엄마 아빠 모시고 오느라 고생했어."

"아휴,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빠가 운전하느라 고생했죠."

나는 남편을 돌아보았다. 남편은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오빠는 왜 이렇게 안 나와...'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출발할 때 입고 온 옷 그대로였다. 

"오빠 왜 옷 안 갈아입어? 설마..."

설마가 맞았다. 양복을 집에 두고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스럽게 다려서 문 앞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하..."

남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입고 있는 건 쨍한 민트색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였다. 

"아, 뭐... 괜찮아. 나름 괜찮아 보여."

나는 위로했지만 남편은 하나도 괜찮지 않아 보였다. 시아버지께서 불같이 화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만에 하나 양복에 요거트가 묻을까 봐 조심하시던 분이다. 집안 가풍상 결혼식장에 휴양지에서 입을만한 셔츠가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흐아아아... 어쩌지? 그냥 솔직히 말해야겠다."

머리를 감싸고 좌절하던 남편은 시아버지께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털어놓았다. 

"아빠... 잘못했어요.ㅠㅠ"

직장에선"에헴!"거리며 뒷짐을 지는 남편이 오랜만에 초등학생 5학년이 된 것처럼 귀여웠다. 하지만 추억으로 웃어 넘기기엔 사실 내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남편은 챙기지도 않고 자기만 꾸미고 오다니!'라고 생각하실까 봐 걱정됐다.   

그런데 그때, 시누이가 혜성처럼 나타나 남편을 방어해 주었다. 

"에이, 그런 실수도 할 수 있지. 아빠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여기 봐봐요! 요즘엔 다들 편하게 셔츠 입어요. 다영이가 대신해서 예쁘게 입고 왔으면 됐지. 다영아, 이따가 신부옆에서 사진 찍어줘. 알았지?" 

시누이 덕분에 한소리 늘어놓으시던 시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한걸음 물러서셨다.

"어허, 나 원 참. 어서 들어가기나 하자! 늦을라."


우리 가족은 결혼식장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이따가 결혼식 끝나고 호텔로 가는 거야? 이왕 서울까지 왔는데 저녁에 공연이라도 보지 그래?" 

시누이가 물었다.

"공연? 글쎄. 그냥 호텔에 가서 자려고 했는데."

남편의 대답에 시누이가 남편을 쿡쿡 찔렀다.

"젊은 애들이 그러면 안 되지. 호텔 라운지에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응? 다영이한테 잘해줘."

"그, 그럴까?"

남편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쥐처럼 찍찍거리는 시늉을 했다.

"저희는 시골쥐라서 그런 거 잘 몰라요."

시누는 핸드폰을 켜서 이런저런 데이트 코스를 일러주었다. 나를 챙겨주는 시누가 너무 고마웠다. 


신랑, 신부 입장!

예식이 시작됐다. 예식은 삼십 분 만에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오, 배고파."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아서 너무 너~무 배가 고팠다. 나는 뷔페로 뛰어가듯 달렸다. 

"우와, 맛있겠다!"

나는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을 한가득 담았다. 소라도 담고, 연어도 담고, 탕수육도 담고, 야끼 우동도 담고, 족발도 담고, 과일도 담고, 디저트도 담고, 담고 담고 또 담았다. 

"냠냠냠! 냠냠냠!"

한 접시를 뚝딱 비우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누가 다정하게 말했다.

"다영이가 많이 배고팠나 보다. 음식은 입에 맞았어?"

"네, 형님. 맛있네요!"

알고 보니 내가 접시에 코를 박고 음식을 먹고 있는 사이 시누가 시부모님을 챙기고 있었다. 시부모님이 좋아하는 갈비탕과 과일을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나는 괜스레 머쓱했다. 

"아... 이런 건 제가 했어야 했는데..."

"에이 아니야. 다영이는 집에서 주로 뭐 먹어? 뭘 좋아해?"

시누의 물음에 남편이 끼어들었다.

"다영이는 꽂히는 거 있으면 그것만 먹어."

시누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래? 뭐 먹는데?"

"얼마 전에는 고구마에 꽂혀서 그것만 먹더니 요즘엔 청국장 먹던데?"

"어머! 청국장 좋아하는구나. 내가 청국장 잘하는 집 아는데. 우리 나중에 거기서 밥 먹을래?"

나는 헤헤 웃었다.

"좋아요, 형님!" 

시누는 우리 남편을 돌아보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자주 외식하고, 밀키트를 애용하라고 했다. 남자가 설거지도 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마음속으로 우리 시누처럼 마음 넓은 시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결혼식장을 나왔다.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하룻밤 묵게 되는 바람에 시부모님은 기차를 타고 내려가시기로 했다. 서울역까지 모셔다 드리려는 데 갑자기 시누가 나섰다.

"엄마 아빠는 내가 기차역까지 모실게."

"어? 아니에요. 저희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야. 아침 일찍부터 운전하느라 힘들었잖아. 너희는 가서 편히 쉬어."

시누는 우리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시부모님을 모셔갔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는 좋겠다."

"왜?"

"시누 같은 누나가 있어서. 나도 시누 같은 친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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