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상품과 판매전략
스타벅스가 한국 커피 시장에 가져온 변화는 엄청납니다. 인스턴트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타서 마시는 것이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은 커피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지지요. 스타벅스를 필두로 카페베네, 투썸 플레이스, 엔제리너스, 이디야 등 수많은 커피전문점들이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고, 각각의 체인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원두의 블렌딩과 로스팅을 강조합니다. 던킨도너츠나 파리바게트 같이 원래 커피와 어울리는 음식을 팔던 매장은 말할 것도 없고, 맥도널드 같이 커피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던 음식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메뉴에 커피를 추가하였지요. ‘다방 커피’가 전부였던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 커피의 다양함이란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한국의 커피시장은 매우 성숙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폴 바셋이나 스타벅스 리저브 같은 고급 커피점을 일부러 찾는 고객도 많아졌지요. 로스팅 정도에 따른 맛을 음미하고 원두의 원산지를 살펴보는 것을 까탈스러운 고객으로 취급하던 시절은 이미 먼 옛날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리스타 뺨치는 지식을 가진 고객들이 한 잔에 만 원을 호가하는 커피를 음미하는 커피공화국에서 당당히 천 원짜리 싸구려(?) 커피를 뻔뻔하게 팔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를 수 있는 세븐일레븐, CU, GS25 등의 편의점이지요. 사실 가격만 가지고 싸구려라고 말은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 편의점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상당히 고급입니다. 저렴한 가격이니 판매량도 많을 것이고, 게다가 매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편의점이니 원두의 신선도도 나쁠 리 없겠지요. 심지어는 스위스의 유명한 고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비해 둔 편의점 체인도 있습니다. 물론 전문 바리스타들이 수천만 원짜리 장비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커피 전문점들처럼 한잔에 4천 원, 5천 원씩 받는 것까지야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단돈 천 원만 받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요. 편의점 체인들은 대체 왜 이렇게 싼 가격에 커피를 팔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정신없는 출혈 경쟁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상품을 이용해 고객을 끌어들여라
사실 편의점 원두커피의 원조는 편의점의 천국 일본입니다. 2017년을 전후하여 업계의 선두주자 세븐일레븐이 점포에서 ‘7CAFE’라는 이름으로 원두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지요. 가격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100엔(약 천 원)입니다. 세븐일레븐을 따라서 로손이나 패밀리마트 같은 다른 경쟁 업체들도 점포에서 원두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한국으로도 전해진 것이지요.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여름이 있는 일본에서 아이스커피는 직장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료수입니다. 하지만 천 엔(약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빠듯한 생활에 익숙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최소 300엔씩 하는 커피를 매일 마신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게다가 점심시간의 커피샵은 한참을 기다려야 커피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붐비는 인기 장소이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인들에게 하염없이 기다리며 커피를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은 상품이 바로 ‘7CAFE’의 100엔짜리 커피였던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마실 수 있는 커피가 크게 인기를 끈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하지만 편의점 업계 세계 1위를 자처하는 세븐일레븐이 단순히 저렴한 가격의 히트상품만을 노리고 100엔 커피를 발매했을 리는 없습니다. 사실 세븐일레븐은 전략적으로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편의점은 내방객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입니다. 편의점을 찾는 고객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 편의점이란 특정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찾는 곳입니다. 그냥 ‘구경’하러 편의점에 들어가는 손님들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즉, 편의점이 내방객을 늘리기 위해서는 주변 유동인구가 일상적으로 자주, 그리고 많이 찾는 상품을 정해진 점포면적 안에 최대한 구비하여 많은 고객들이 점포에 방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렇게 손님을 점포로 불러들이는 대표적인 미끼 상품이 바로 담배였습니다. 점포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매우 작지만 흡연율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적으로 주변 유동인구의 10%~20%의 고객들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최근 십수 년간 흡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특히 젊은 고객층이 흡연을 하지 않게 되자, 새로운 미끼상품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난 것입니다. 세븐일레븐이 꺼내 든 100엔 커피라는 카드는, 비록 수익률은 낮을지 모르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수많은 고객들을 편의점에 불러들이는 최고의 미끼상품이었던 것이지요.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지갑을 열도록 유혹하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방객을 늘리는 것이 편의점의 첫 번째 목표라면 두 번째 목표는 방문한 고객들이 구매하는 상품의 총금액, 즉 객단가를 높이는 것입니다. 물론 비싼 상품을 파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편의점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듯, 편의점에는 애초에 고가의 물품이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방문 목적이 된 상품 이외에 추가로 다른 것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판매전략인 것이지요. 편의점 상품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가 충동적인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계산대 주변의 껌이나 멘토스, 아이스 브레이커 등의 사탕류는 이런 충동구매 상품의 대표주자이지요. 커피는 이런 점에서도 완벽한 상품입니다. 삼각김밥을 사러 들어왔다가, 샌드위치를 사러 들어왔다가, 혹은 그냥 신문을 둘러보러 들어왔다가도 ‘천 원밖에 안 하니 한 잔 마실까’ 하는 생각으로 커피를 집어 들게 됩니다. 5천 원만 쓰고 나갈 손님이 6천 원어치를 구매하고 나가는 것이지요.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여 20%의 매출 증가를 이룬 것입니다.
이렇게 상품에게 전략적 역할을 부여하고 매출을 올리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특히 유통업계인 편의점,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는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전략이지요. 과일이나 채소를 반드시 입구 쪽이나 밖에서 보이는 곳에 배치하는 이유는 이제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신선하고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를 소비자의 눈에 띄게 하여 구매욕구를 한껏 자극시키는 것이지요. 그냥 지나치려던 고객들조차, ‘벌써 딸기가 나왔네? 딸기나 좀 사갈까’ 하며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발길을 옮기게 됩니다. 딸기를 사는 것만으로 쇼핑이 끝날 리는 만무하겠지요. 판매전략을 고려하여 상품을 기획하는 것은 제조업체에게도 중요합니다. 같은 컵을 만들더라도 세 개가 모이면 세트가 되도록 디자인하여 두 개만 살 것을 세 개씩 사도록 유인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 한정 혹은 기간 한정 상품을 만들어 평소라면 사지 않을 상품을 구매하게 만들 수도 있지요. 보졸레 누보처럼 매년 특정한 기간에만 주기적으로 상품을 발매하여 주목도를 높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스타벅스처럼 브랜드 충성도를 감안한 상품 구성을 생각할 수도 있지요. 스타벅스를 처음 접하는 고객이 주로 마시는 알기 쉬운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등의 기본적인 커피, 충성 고객들이 자주 마시는 프라푸치노, 시그니처 블렌드 등의 고급 커피, 브랜드 로열티가 높은 팬들이 구매하는 커피 원두와 액세서리 등 고객의 충성도에 따른 상품군을 구성하고 니즈를 반영하여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제안을 구체화시켜주는 주력상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그 순간에 처한 상태나 상황, 심리 등을 고려하여 판매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상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판단인 것입니다.
회사의 주력이 될 상품, 혹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스타 상품 개발의 중요성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어떠한 판매 전략을 세울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상품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의외로 가볍게 여겨지곤 하지요. 대박 상품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가지 상품들이 힘을 합쳐 성공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주력 상품을 판매하기까지 고객들을 안내하는 상품, 혹은 주력상품의 기능을 보조하거나 단순히 멋을 더해주는 액세서리 등, 사실 고민을 시작하면 얼마든지 많은 기회가 숨어 있지요. 고객은 어떤 이유로 이 상품에 관심을 보였을까요? 방금 그 상품을 산 고객에게 어떤 것을 제안하면 추가 구매로 이어질까요? 혹시라도 고객이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않은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고객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객을 만족시키는 우리의 상품들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