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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Mar 17. 2024

우리가 '영화'를 찾게 되는 순간

'Alone'과 'Watcher'를 보고 (넷플릭스 영화)


혼자 있을 때, 심심할 때, 영화를 본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넷플릭스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짧은 영상으로 낚시꾼처럼 낚아챈다. 그 먹이를 어제는 덥석 물었다. 영화 제목은 'Alone'과 'Watcher'였다. 위기에 처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어릴 때 본 영화 ‘어두워질 때까지'는 아직까지 선명하다. 앞이 안 보이는 주인공이 낯선 침입자에 맞서 싸운다. 그 여자에게는 빛이 아닌 어둠이 구원이었다.


위험은 위기에 있는 여자들을 용케 찾아낸다. 그녀들의 이마에 ‘난 연약한 여자다.’라고 새겨진 것처럼. 영화는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 진물 나는 외로움을 파리처럼 냄새 맡은 이웃이 악당이다. 평범하고 흔해 빠진 인물들이라서 얕잡아 보기 쉬운 존재들. 그래서 더 잔인하고 냉혹하다. 관객들은 다 아는데 자신의 위기를 모르는 주인공, 그들처럼 순진해 빠졌던 시절이 누군들 없었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나도 더 이상 관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명을 관객에게 비추면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 관심 있는 대상이라야 나도 관심이 생긴다. 요즘은 스토리가 내 이야기의 다른 버전 같다. 그래서인지 벌어지는 일들이 남들만의 이야기는 더 이상 아니다. 책, 영화, 드라마 모두 나와 닮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Alone'에서는 무심한듯한 자연이 주인공 여자의 탈출을 돕는다. 자연은 주인공에게 손과 발을 내밀어 돕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죽어 흙 속으로 파묻히는 순간까지 품어주며 배려할 것이다. 마지막 보루인 그 자연을 방패로 여자는 숨고 피하며 버틴다. 안개, 비, 강물, 그리고 바위틈에서.





'Watcher'의 여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루마니아에서 오직 자신의 느낌에 의지한다. 겨우 위로를 받는 순간은 옆방 여자와 술 한잔 하는 정도다. 믿는 남편마저도 그녀의 느낌을 차갑게 무시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폭발시키는 장치를 기대해도 좋다. 'Alone'과 'Watcher' 보고 난 후 사이다 몇 잔 들이켠 듯 속이 후련했다. 그녀들은 치열하게 버텨 유치한 악당들을 처치한다. 여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용감하다. 멀리서 달려와 위기에서 구출한 왕자님이 없다. 말도 안 되는 마법적인 믿음에 취할 필요가 없는 영화다. 끝까지 버텨 자신을 구출해 낸 장본인은 바로 그녀들이다. 영화는 복싱에서 KO 패를 당하는 것 같은 충격적인 설정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현실 세계와 유리된 것 같은 그런 점 때문에 에피소드가 더 매혹적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이기심의 발동 때문에 이런 영화를 즐겁게 본다고 하면 지나칠까?


영화의 끝부분쯤에 현실 남편이 퇴근했다. 평소보다 서너 시간 느린 10시였다. 남편의 차는 독특한 바퀴 소리를 내는 지프다. 우리 집 고양이 ‘나비’와 ‘토미’ 도 그 소리를 듣고 문 앞에 서서 맞이할 채비를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오랜만에 남편을 뜨겁게 반겼다. 어제 이런 영화를 골라 보게 된 이유를 추적해 보았다. 아침에 받은 남편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빨리 막내한테 전화해 봐. 막내가 다니는 대학교 학생이 죽었대." "언제?" "어젯밤에." "오늘 아침에 통화했는데!" "그래? 휴.”


세 딸의 엄마라지만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구글 맵처럼 내려다볼 수 없다. 대신 남의 이야기를 보며 안심한다.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게 도구든, 연장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무작정 난폭한 영화라고 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담력이 생겼는지 위험을 드러내는 영화를 보며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발동한다.


나이답지 않게 순진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잘 버텨왔지만 알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크고 작은 상처들이 트라우마가 된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교육을 멸공 교육처럼 받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순간들. 상황이 생길 때마다 설명받지 못했기에 어린 마음은 병이 들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혼란스러웠던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로 변질되었다. 'Alone'과 'Watcher'의 주인공에 몰입되어서인지 단단하고 강해진 느낌이다. 간절하게 사랑을 원하는 관객은 사랑할 때 필요한 연장을, 나처럼 불안이 많은 관객은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게 돕는 도구를 드라마를 통해 찾으면 될 것이다.



나의 순진함이 세상을 얕보지 않을 정도로만 가끔,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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