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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May 02. 2024

저녁노을 앞에서

'소설의 하루 1'


지영은 허물을 벗고 있다. 봄과 여름의 사이 환절기, 이 시각에도 지영은 낡은 양철지붕처럼 녹이 슨 생각을 한 겹씩 벗는다. 때로는 나태하고 당황스러운 진실이 그녀 앞에 다가선다. 그럴수록 지영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를 옭아매고 여기저기 멍들게 할 생각이기에. 나무 가지는 이끼가 끼면 말라죽는다. 사람이 오래된 생각을 새로운 사고로 갈아엎지 않으면 매일 그 모양 그 꼴로 살게 될 것이다. 지영은 그렇게 벗음으로써 자신을 짓고 있다.


지영은 살림하는 여자다. ‘삼시 세끼’ 짓는 일에 소홀한 적 없는데 살림에 윤이 나지 않는다. 지영이 셀 수 없이 했던 당연하고 티 안나는 이 '짓거리'가 가족을 살린다. 그래서 살림이란 말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특별한 일도 없다. 누군가 밥 짓는 일을 '인간의 영혼을 채우는 일이다'라고 했다는데 지영은 이 말이 퍽 마음에 든다. 지영은 '나는 가족들의 영혼을 채웠다.'라며 당연하게 하던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지영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하루가 달라짐을 알게 된 이상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세상이 자신 안에서 만들어지니 남에게 간절할 이유도 없다. 지영은 이렇게 삶을 표현할 단어와 문장을 찾는 일을 글을 ‘짓는다’고 표현한다. 지영에게 ‘짓는다’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표현할 수 없으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가 있다. 그 안에서만 나고 죽는다.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지는 그야말로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누가 주도권을 쥐었는가에 따라 신비하고도 특별한 여정을 걷는다. 인생은 또한 이상한 선물이다. 어린아이는 인생이라는 선물을 혼자 풀어 볼 수 없다. 그 안에서 괴물이 소리를 지르며 나올 수가 있기에 어떻게 선물을 풀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 어른이 곁에 있을 때 선물을 풀면 괴물이 무섭지 않다. 하지만 곁에 어른이 없거나, 있어도 소용없을 때 어린아이는 자신의 몫인 선물의 뚜껑을 닫는다. 두려움 때문에 열어보지 못한 선물은 삶의 이 된다. 과거라 되돌아갈 수 없는데 여전히 발목을 잡으므로.


지영도 어린 시절에는 자신 앞의 선물 뚜껑을 선뜻 아이처럼 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지영은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노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이제 지영은 선물을 선뜻 당연하듯 아이처럼 잘 받아 든다. 그 당연하게 받은 삶의 축복인 노을 앞에서 지영은 다른 느낌을 갖는다. “충만하다. 기쁘다. 감사하다.” 한마디로 평안하다. 존재 자체로 어디에 있건 바라보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경탄할 뿐이다.


지영은 몇 해 전까지 몸과 마음에 미안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초원을 달려야 하는 말이 덫에 걸려 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늙어간다면 어떨까? 지영은 ‘침묵’이란 창고 안에 가뒀던 목소리가 뿌연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이젠 남의 이목이 그리 상관없어 그녀는 글을 짓는 일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삼았다. 이제 어린 시절 풀지 못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던 두고 온 과거의 선물 꾸러미가 더 이상 그녀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지영의 새로운 루틴은 ‘저녁노을과 벗하기’다. 허물을 벗은 지영의 맨몸이 노을빛에 물든다. 지영은 비단 가운처럼 발목에 휘감기는 새 옷을 입고 침대에 눕는다. 긴 밤을 견딜 새로운 힘을 달라며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센다.  


지영의 아침은 분주할 테지만 역할에만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로 다가간다. 그녀를 바라보는 유리구슬 눈을 가진 고양이 토미. 지영의 마음을 읽는 토미의 시선이 그녀 곁에 머문다. 토미를 안고 이마를 쓰다듬으면 토미가 꼬리로 툭툭 치며 대꾸한다. 그 조그만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른다.


가족을 위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뜨끈한 국을 만드는 시간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글 짓는 일은 지영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여행길이다. 지영의 손등 위로 튀어 오른 혈관이 그녀가 삶에서 축적한 시간의 나이테다. 지영이 자신에게도 나이테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글을 짓고부터다. 지영은 일하듯 글을 뽑는다. 곡식을 빻아 떡도 만들고 빵도 만드는 것처럼, 설거지하던 것처럼, 냉장고 문을 열던 것처럼, 지영이 자주 하는 일은 ‘글 짓는 일’이니 한 권, 두 권, 책이 쌓여간다. 지영은 공사장의 인부처럼 삽을 틀고 톱도 든다. 지영은 스스로 집을 짓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짓는다. ‘오늘은 벽돌을 찍어 벽을 만들고 내일은 지붕을 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일을 꿈꾼다.  


지영은 마치 누에고치가 된 것처럼 허물을 벗는다. 5그램의 누에는 자기 몸무게의 4배인 20그램의 뽕잎을 먹어 치운다.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는 봄비가 내리는 듯해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도 포함되었다. 누에는 모양이 징글징글하지만, 무수히 많은 다른 누에와 더불어 뽕잎을 먹으며 '사각, 사각, 사각' 서정적인 소리를 낸다. 미물인 누에도 사람들을 위해 이토록 헌신하는데 지영도 글 짓는 일을 소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영이 글 짓는 시간은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처럼 다른 시간과 구별된다. 왜 글을 쓰는 것을 ‘글 짓는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지영은 삶의 의미를 ‘글 짓는 일’에서 찾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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