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는 연어가 거센 강을 거슬러 헤엄치며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거센 물살은 기억을 글로 헤집는 과정에서 보이는 장애물, 즉 감정의 앙금일 것이다. 거친 물살을 용케 헤치며 새로운 나만의 길과 채널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나를 찾는 과정이다. 그래서 중년을 넘어선 노년에 오히려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는 여정은 내면에서 움직이는 나침판의 진동을 알아차림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침판의 바늘이 가르치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찾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찾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연어처럼 집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 안식처로 깃들 수는 없다. 내 몸과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인 나의 고향, 나의 집으로 돌아가려니 피와 살이 마른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달이 난 ‘성경 속의 탕자처럼'. 나의 아버지가 나를 안아줄 따뜻한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자꾸 그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본능이며 본성이다. 이것이 내가 글 쓰는 이유가 될 것을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도 너무 멀리 나와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조급하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알랴.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을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저 구하는 수밖에, 해나가는 수밖에.
내 이야기를 누가 읽어 줄까? 나에게 독자가 생길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고민은 곧 사라졌다. 감정의 앙금이 서럽게 격랑을 치면서 내 손가락 끝으로 마구 몰려들며 나왔기 때문이다. 병목현상처럼 목구멍 끝에 매달려 있는 설움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 만큼 패닉이 오기도 했다.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고 어르며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갔다. 이만큼만 할까, 더 쓸까, 어디까지 어떻게 나와 내 주위를 드러내야 할까? 애초에 내 글쓰기는 형식이나 구성에는 문외한인 어린아이 같은 글이었으므로 그냥 토해내는 것 말고 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퇴고는 태산을 한 삽 씩 옮겨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나마 절박함이 없었다면 완성을 할 수 없었다. 그 긴박한 과정에 독자를 생각할 겨를은 당연히 없었다. 누군가를 더 의식했다면 그나마 글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살아야 했으므로, 그러므로 나의 첫 책은 거의 본능적 기록에 가깝다. 그렇게 글로 설움을 쏟아낸 만큼 나는 살아났다. 결국 책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치유'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지금의 이 느낌을 알아내기 위해 또 글을 써야 한다. 내 혀 안에서 머물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 변비성 감정을 어떻게 뽑아내야 할까? 어린아이의 외침 같은 원시적인 감정적 표현에 익숙했던 나였다. 닮고 싶은 작가들을 글을 보며 글 주제와 목차를 잡고 써 내려갈 때 손가락 끝에 그나마 달라붙은 달달한 자유에 맛이 들어 계속 글을 있어갈 수 있었다. 그 자유에는 진정한 행복이 곁들여져 있었다. 나는 쓴 만큼 가벼워졌다. 나에게 이끼처럼 들러붙어 있던, 오래된, 쓸데없는, 허영에 가득 찬, 남의 지식을 털어 냈으므로. 연어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담을 뛰어넘어 안전지대로 돌아갈 날을 꿈꾸고 기대하면서.
첫 전자책, '마음 빨래'와 ‘유학을 읽어 주는 책’은 베셀 스터디의 출간 목표일이 지정되지 않았다면 원고로만 남을 뻔했다. 만삭이 된 배를 끌어안고 아이를 낳는 것처럼 힘들게 죽을힘을 다해 썼어도 출간된 책은 기대와 사뭇 다른 모양이었다. 성급함과 미성숙한 모습이 글에 그대로 드러났다. 마지막까지 들여다보며 최선을 다했어도 결국 비문과 오타가 눈에 훤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애초에 편집까지 혼자 하는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다시 수정하고 있다.
글쓰기는 몸으로 쓰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10시간이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글을 썼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나를 존중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몸이 탈이 나고야 말았다. 버닝 현상인지 컴퓨터를 켜는 것이 어렵다. 이 글도 매달리다시피 썼다. 나는 왜 이렇게 글이 힘들까? 연어처럼 한꺼번에 많은 아이를 낳았나 보다. 정말 연어처럼 알을 낳고 죽기라도 할 것 같은 감정이 휘몰아친 적도 있다. 작가는 영혼과 몸을 바꾸는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작가가 가장 단명하는 직업이다. 그래도 첫 전자책을 내고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는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위로하면서.
독자를 위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잔뜩 힘이 들어간 글을 쓰며 자신과 타인의 검열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마음껏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그래서 글이 힘든가 보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아직도 교만한가 보다. 그래서 열 명 중 한 명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목표를 가지는 게 차라리 나에게 현실적이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나다. 읽지 않고 잘 쓸 수 있을까? 배우지 않고 알 수 있을까? 표현할 수 없는 생각과 느낌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위대한 작가의 글을 훔쳐보며 비슷하게 써보는 코스프레를 해본다. 문장을 흉내 내는 필사, 비슷한 소재를 따라 써보기 등, 마치 모창 가수가 기가 막히게 흉내 내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은 모창가수도 자신의 노래를 내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연어가 거친 물살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처럼. 나는 엉덩이로 글을 쓰는 것이 몰입이라는 큰 장점이 있어 좋지만 김훈 작가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글을 세상에서 직접 담아 오는 작가가 되고 싶다. 열심히 글밭을 달리며 농부가 이삭을 줍듯 빛과 같은 반짝이는 표현을 주워 담아 오는 글 일꾼이 되고 싶다. 때로는 하늘과 구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서. 그런데 글을 마음에 담는 것까지는 좋다. 글을 컴퓨터에 옮겨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이 정말 힘들다. 노트에 쓰는 자체로만 글이 된다면 벌써 책을 몇 권 더 냈을 것이다. 못 옮긴 글은 내 노트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런대로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지상과 천상에서 주워 담은 글 소재를 나 먼저 이해하기 쉽게 기승전결 구조를 집어넣어 써야 한다는데 나는 그게 또 어렵다. 자기 계발이나 실용서라면 주장, 근거, 사례, 인용과 같은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고 들었다. 베셀 스터디의 첫 주에 기획서와 벤치마킹을 했다. 그런데 첫 책을 내고 보니 내 기획안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다른 책이 나온 것이다. 책을 내는 것은 마치 자식을 원하는 대로 키워내고자 욕심을 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다. 자기 맘대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갖춘 작가임이 분명하다.
베셀 스터디의 파트너 작가 경험은 나를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출간 날짜에 맞춰 마지막 남은 땀방울까지 다 쏟아내고 있는 베셀 스터디 작가, 한 분, 한 분을 통해 나를 본다. 내가 했던 고민, 갈망, 희망의 자락을 포착할 때마다 '빛과 같은 깨달음'이 있다. 이런 것을 공감이라고 부를 것이다. 용기를 낸 베셀 스터디 작가님들께 마음속으로 손바닥이 발갛게 되도록 박수를 치고 있다. 글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낼 수 있지만 아무나 낼 수 없는 용기.
어쩌다 보니 베셀 1기, 2기를 거쳐 3기에는 베셀 스터디를 이끄는 파트너 작가가 되었다. 베셀 스터디 1기 작가분들과 나눈 느낌은 ‘지성의 결합’이었다. 나는 이때 나온 책들에 매료되어 베셀 스터디 2기에 또 도전했다. 베셀 스터디 2기 작가와의 만남을 '열정의 용광로'라고 한다면 베셀 스터디 3기 작가와의 만남은 '천사들의 협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른 분들의 글에 피드백을 정말 열심히 해 주는 참관 작가들이 있어 베셀 스터디는 더 빛이 난다. 이점이 베셀 스터디의 최대 강점일 것이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의 시간, '서로 돕는' 글 마당이기에 베셀 스터디 3기 작가님들의 원고는 한층 더 완성도가 있을 것이다. 나는 마감 며칠 전까지도 원고를 다 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 원고에 대한 피드백이 두려워 다른 작가들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끼어들지 못했다. 결국 퇴고한답시고 발을 동동 굴렀다. 피드백을 나눈 작가들의 원고가 더 탄탄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퇴고는 영원히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고치고 또 고치며 끝을 맺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적당하게 말려 줄 수 있는 작가와의 '피드백'살롱과 같은 도움에 의지하고 싶다.
총 5주간의 베셀 스터디 미팅은 베셀 스터디의 핵심이었다. 서로 근황을 묻고 라포를 형성한다. 그렇게 친해지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의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5주의 만남에 한주를 더한 것은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서 기간을 늘린 것이다. 그러므로 딱 6주가 되는 시점에 작가와 홈페이지에서 E Pub이나 PDF로 출간 신청을 완료해야 한다. 작가와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며 출간 신청을 하면 작가와는’ISBN, 각 서점 (교보, Yes24,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등)의 출판사’에 유통을 시켜준다. Yes24에서는 출간 신청 후 며칠이 안되어 내 책이 출판이 되었다. 링크를 지인에게 보내며 들던 마음은 설렘, 그 이상이었다. 비록 그 설렘이 오래가지 못했지만.
베셀 2기의 줌 녹화 영상을 베셀 3기를 준비하기 위해 전부 되돌려보았다. 우린 '열정의 글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메아리처럼 여운이 남는다. 베셀 작가님들은 말을 할 때마다 녹음을 했으면 좋겠다. 바로 글로 써도 좋을 만큼 좋은 말의 모음을 아래에 적어 보았다.
바이엘 작가-'마음을 담은 한글자가 삶을 온전하게 한다'
나의 시간, 열정, 하루가 온전하게 채워진다, 베셀 스터디로 글 쓰는 기초 위 계단 몇 칸을 뛰어넘어 삶의 기본 소양까지 갖추게 되었다. 나를 위한 글을 쓰다 보니 글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와 계획이 많이 생겼다. 힘겨운 사투였지만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일정도 있었지만 글쓰기를 먼저 잡고 가야 했다. 베셀 스터디 2기를 통해 더 좋은 기회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베셀 스터디를 통해 ISBN을 클릭하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어 이 만남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경험하지 않은 분야를 가야 하는 시간, 가장 나의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에 참여하게 되었던 지라 더 '작가와'에 감사한다. 내가 이룬 개인적인 성장을 보며 '작가와'에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 또 있다. 초고를 절대 바로 올리지 말자. 다음날 읽고 또 읽고 난 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베셀 스터디 5주를 겪으면서 새벽에 글을 쓰는 맛에 빠졌다. 다 써 놓고 나서 내 글을 읽으니 힐링이 된다.
소류 작가-'완전하다는 거짓말'
지난 5주가 알차서 1년 같은 시간이었다. 1년의 시간을 5주로 압축해서 썼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워서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싶어 과정을 기록했다. 앞으로 책을 계속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뭘 쓸까? 이것을 써야지, 저것을 써야지 이런 생각으로 즐겁다.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내일, 모레, 내년 이런 식으로 미루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시간이었다. 아쉬운 점은 작가들이 지구촌 곳곳에 있어 글로벌하게 참여하다 보니 시차가 안 맞았다. 베셀 스터디 단톡방에 뭘 좀 쓰려고 하면 지구 건너편 저쪽은 모두 자는 시간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을 막 쓰며 나누고 싶을 때 아쉬웠다. 글을 쓰고 읽고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확인하면서 힐링이 되었다.
나무 작가-'사랑이 왔어요' 그림책
그림책을 만들면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졌다. 나는 그림책을 통해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었다. ‘사랑이 왔어요’라는 그림책을 쓰기 위해 좋은 그림책을 보는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어 참 좋았다. 이렇게 좋은 자리 만들어 주어 감사했다.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모일 수 있었다. 첫술을 뜨는 것부터 마지막 작품 로딩까지 혼자 완성할 수 있었다.
레이첼 작가-'유학을 읽어주는 책'
책이 인생의 선물임을 좋은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글을 읽으며 어린애처럼 불안하고 서럽던 내 마음은 여물어 갔다. 성경 읽기와 예배를 통해 바로 설 수 있었고 그 길에 글쓰기를 더하니 나름 온전해진 것이다. 게다가 내 작품을 눈에 볼 수 있게까지 되었다. 죽을 듯 글로 살아낸 5주의 베셀 스터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내 안에 미해결 된 감정이 쌓여 있는 것을 알았다. 알고 난 후 내면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옹알거리는, 말로 미쳐 표현 못 한 그 감정을 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보고 들은 대로 손으로 적어냈다. 결국 나는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런데 편안해지니 글이 안 써지는 것이었다. 행복한 작가가 글을 쓰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렇다면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모두 불안으로부터 출발한 작가들인가? 모래를 품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낼 때처럼 글쓰기가 인고의 과정이라면 말이다. 어쨌건 나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글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글로 내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다른 장이 열린 것 같다. 어떤 챕터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아이슬란드는 인구 10명 중 1명이 책을 출판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이제 작가라는 말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자신만의 스토리로 쓰기 시작하면 이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초보 작가가 쓴 책과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책이 나란히 유통된다. 독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속 베스트셀러 작가는 당연히 ‘베셀 스터디 작가’들이다. 나와 함께한 작가들의 책은 다 사서 보고 리뷰를 달았다. 살 수 없었던 몇 분의 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제 그토록 구독을 하기 어렵던 밀리의 서재도 핸드폰에 탑재했다. 해외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안 셈이다.
처음 베셀 스터디에 관한 글을 쓸 때 '우리도 베셀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나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를 10명 이상 알아버린 열성 독자가 되었다. 결국 독자가 작가가 된다. 그게 바로 글 짓는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꼭.
작가와-'전자책 도서관에서 읽어주는 전자책' 출간
베셀 스터디는 공통된 니드를 가지고 모였다. 마이크로 작가들끼리 모여 노력하고 신경 쓰는 만큼 좋은 작품을 가진 작가가 된다.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누기 때문에 품질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좋은 품질과 잘 팔리는 품질은 다르다. 전자책 카페에 미리 가입해서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고 내 책을 홍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새로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 공유로 함께 하는 성장을 추구한다.
나는 글쓰기로 내 몸과 영혼의 안식처, 안전지대로 연어처럼 돌아가 알을 낳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블로그와 브런치 등에 올린 글과 몇 권의 몰스킨 노트에 공들여 적은 글쓰기로 어느 정도 나의 상처를 덜어낸 것 같다. 글이 안 써지는 것이 그 사인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써야 할까?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여야 할 것이다. 나는 축복이라고 불리는 삶에 대한 그리움 덕분에 책을 쓴다. 바라보고 있고, 마주 보고 있어도 그리운 존재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슬픔의 여러 겹을 벗기며 기쁨의 원천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순례자이다. 우리의 집을 향해 끊임없이 나침반의 바늘을 쫓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그 떠남이 바로 글쓰기 여정이 아닐까? 나에게 온 축복과 경탄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마는 인생 여정,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경탄한다.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자신이 알아채고 표현하는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