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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Jun 17. 2022

첫째와 데이트

난독인 둘째를 신경 쓰느라 첫째를 소홀히 했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 온 가족이 쉬게 되는 주말이 있었다.

아빠는 둘째랑 남자끼리 데이트를 하고 나는 첫째 아이랑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데이트 코스는 서점이다.

서점에 가서 서로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한 시간 정도 앉아 책을 읽었다.

딸아이는 고양이 학교 책을 골랐고 1권을 다 읽었다.

모처럼 빠져드는 시리즈는 만나게 됐다고 했다. 당장 도서관에 가서 시리즈를 대여해 달라고 했다.

나는 도서관만 이용하다 보니 신간을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가장 핫하다는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골랐다.

딸아이의 속도에 맞춰 읽느라 3/2 밖에 읽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가독성이 있어 금세 읽어 내려갔다.

뒷 이야기는 다음에 혼자 시간을 내서 읽어야겠다.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읽고 옆 문구점에 갔다.

오랜만에 엄마가 플렉스 하는 날이니 필요한 걸 고르라고 했고, 우리 아이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며 골랐다.

샤프랑 펜, 필통을 골랐다.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문구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언제 커서 엄마의 취향을 이렇게 닮아버렸나 새삼 신기했다.

나도 어릴 적 아기자기한 문구를 가지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내 엄마는 낭비라고 사주지 않으셨다.

그런 딸의 필요를 너무 이해하는 나는 오늘만큼은 고른 것에서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사줬다.


문구 쇼핑까지 마치니 배가 출출했다.

우리 딸아이의 최애 음식 중 하나가 피자인데 근처에 있는 피자 뷔페에 갔다.

나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 종류별 피자들이 있었고 간단한 떡볶이, 치킨, 샐러드 바가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 같이 식사를 하며 사진도 찍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우리 딸이 이렇게 애교가 많았나 싶게 엄마에게 기대고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행복해하는 너를 보며 나도 행복했지만

사실은 미안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아이처럼 굴고 싶었을 텐데

그동안 그러지 못했구나.

나도 모르게 네 안에 어린아이는 넣어두고 어른처럼 행동하게 하고 있었구나.

그 어린아이가 언젠간 꼭 나타나서 너를 힘들게 할 텐데.

엄마는 네가 사춘기가 되기 전에 우리 사이 빨간불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제부터라도 엄마한테 마음껏 치대고 아양 부리렴.

네 안에 어린아이가 엄마 앞에서는 자유로워도 된단다.

네가 다 사랑으로 받아주는 엄마가 될게.

그냥 한번 꼭 안아주면 될 일인데 그렇지 못하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잔소리부터 늘어놔 너를 힘들게 했구나.

내가 받아보지 못해 주지 못했다는 핑계도 이제는 그만할게.

너는 태어나서 지금껏 내가 엄마라는 사실 만으로 내가 평생 받지 못한 어마어마한 사랑을 나에게 주었으니.


딸이랑 식사를 마치고 길거리를 산책하며 구경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인생 네 컷 사진도 찍고,

오락실 가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엄마 인생 최초로 코인 노래방도 갔다.

너에게 가장 기억나는 오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네가 커서도 기억하며 웃음 지을 수 있는 하루를.

육체적으로는 힘들 만큼 신나게 놀고 집으로 가려는데 길가 작은 액세서리 가게가 보였다.

우리는 구경한다고 거기 들어갔다가 커플링을 맞추기로 했다.

가격을 보니 반지당 5천 원 전후다.

아마 중등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반지를 구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많은 반지 중에 겨우 같은 디자인에 반지를 두 개 고르고 손에 끼웠다.

'엄마 우리 이거 절대 안 빼는 거야'

딸아이는 손에 낀 반지를 몇 번씩 만지작 거린다.

딸아, 그 반지를 보며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기억하렴.

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그리고 엄마한테는 기대도 돼.

그럼 엄마는 그걸로 행복해!

오늘은 네가 아니라 내가 행복한 날이야.

사랑하는 내 딸과 보낸 최고의 하루고,

내가 나의 엄마와 보내고 싶었던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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