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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Dec 01. 2020

나시고렝, 발리의 밥

평안과 안녕의 볶음밥_트리 히타 카라나

사람은 참 모순적이다. 집에 있을 때는 떠나고 싶고, 떠나면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오늘은 이상하게 집에 너무 가고 싶어서 라면에 나시고렝을 먹었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에 고슬고슬한 나시고렝을 곁들이다 보니 괜찮아지는 느낌이다. 가끔은 음식으로 감정적 허기가 달래지기도 한다. 

나시고렝은 인도네시아의 볶음밥이다. 

'Nasi'는 밥을, 'Goreng'은 튀기다, 볶는다 는뜻으로 나시고랭은 볶음밥이라는 뜻이다. 볶음밥 옆에 있는 알새우칩 같은 과자는 크루푹이다. 


발리 어딜 가나 찾을 수 있는 음식이고, 인도네시아 포장마차인 와룽(warung)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어 주머니가 가벼울 때도 먹기 좋다. 닭고기 꼬치인 사테(satay)와 크루푹(kerupuk)을 같이 곁들여 먹기도 한다. 

나시고렝은 주로 달큼한 간장인 케찹마니스(Kecap Manis) 소스를 사용해서 만든다. 해산물, 야채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만든다. 매콤하게 먹을 때는 칠리나 삼발소스를 곁들이기도 한다. 


 




[발리의 쌀, 그리고 팀웤?]

쌀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먹여 살리는 음식으로 35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주식이자,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는 풍요와 번식을 상징한다. 벼농사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재배와 수확과정에서 고도의 단체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쌀은 발리의 문화, 사회구조,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리 하면 유명한 풍경 중 하나가 계단식 논이다. 발리, 그중에서도 특히 우붓은 오션뷰가 아닌 논 뷰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낯설지 않게 벼농사를 봐서 그런지 수박 subak 시스템을 알기 전에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특히 서구권 여행자들이 이 이런 논 뷰를 이국적으로 느껴서 굉장히 좋아했다. (논 뷰+ 요가 = 멋져! 공식) 

발리는 화산섬이라 산지가 많기 때문에 험준한 산비탈을 깎아 농사를 짓는 계단식 농업이 발달했다. 벼농사에는 물의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데, 발리만의 독창적인 관개시스템에 따라 발리의 농부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다작하는 농부가 되었다. 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많은 농부들이 함께 일하는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농부들은 지역 내에 각기 다른 합의된 시간대에 교대식으로 벼를 심는다. 논의 급수 관리를 조정하는 이러한 협력적인 사회 시스템은 '수박 subak'이라고 불리는데 이 단어는 무려 1072년에 처음 등장했다. 단순히 물을 대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원 관리, 제사 등을 치르는 일종의 협동조합 기능을 아울러 말한다. 수박 시스템의 기저에는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라는 철학이 있다. 행복과 안녕의 세 가지 근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임의상 줄여서 트히카 철학은 아래와 같은 핵심 개념을 포함한다. 


빨레마한 Palemahan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

빠라양안 Parahwangan 인간과 신의 조화로운 관계

빠옹안 Pawongan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그래서 발리에서 쌀을 재배하는 방법은 심오한 종교적 측면을 지닌다. 쌀을 신이 준 선물로 인식하고, 수박 시스템은 위에 적었듯이 사원 네트워크와도 관련이 있다. 어떤 사원은 땅에 물을 대는데 필요한 통로를 확보하고, 또 지역의 수많은 샘물과 연결된 수로를 통해 논의 중심에 위치한 사원으로 물이 흘러들어온다. 수박에 속한 구성원들은 벼농사의 단계에 따라 물 처리 방법, 모종 심기, 쌀 수송 등 맡은 분야에 따라 다양한 그룹으로 나뉜다. 이렇게 구성된 역할은 구성원들에게 물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고, 문제가 발생하면 공동체에서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수박 시스템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이런 배경이 뭐가 중요하냐 할 수도 있지만, 오늘 먹은 볶은밥이 어떻게 식탁까지 왔는지 과정을 알아보다 보니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쌀을 수확하기까지 발리 사람들은 인간과 신, 그리고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간단하지만 유지하기 어려운 이 관계를 밥 먹는 내내 곱씹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자연과,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다가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더 마음을 표현하기로, 그리고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연을 감상하기로 생각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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