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안의 크기 -이희영 작가

어른의 책가방 <책과 잡동사니, 아무거나 얘기합니다>

by RachelJane



안의 크기


이희영 작가 씀

출판사 허블

2025.11.24 출간



여러분,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불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셨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아니면 불행하신가요? 아마도 '행복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할 것 까지는 없어'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안 행복해' 라는 대답을 할수도 있을겁니다.


이희영 작가의 소설 '안'의 크기는, 어떤 단어 앞에 붙어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그 '안'입니다. 안 그럴게. 안 아파. 같은 '안'을 말하는거죠. 하루 24시간 내내 혹은 평생 행복만 한 것은 사실 불가능하죠. 우리는 대체로 '안 행복한' 순간들을 살아가는거죠. '안 행복한' 매일을 살면서 '안'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 그래서 그나마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줄거리 소개]

짧게 줄거리를 소개해 볼게요.

주인공은 31살의 여자 단설우. 설우의 엄마는 쌍둥이를 임신하지만, 두 아이 중 한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설우만 태어나게 됩니다. Vanishing Twin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어느날 쌍둥이 중 한 아이가 흔적도 없이 뱃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설우는 어린 시절 우연히 훔쳐본 엄마의 일기장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죠. 그 뒤 설우의 곁에는 파랗고 작은 빛이 주위를 맴돕니다. 설우에게 말을 건네고 설우의 삶을 함께 살아가죠. 오직 설우에게만 보이고요. 설우는 이 파란 빛을 사라진 자신의 쌍둥이일것이라 여기고 ‘조’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소설은 설우가 새해 정초부터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 것으로 시작해요. 곧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해 어수선하고 오래된 볼품없는 동네로 이사를 갑니다. 동네의 작은 영어 학원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사일을 하게 되죠. 그리고 상가 1층에는 서점이 들어서게 되는데요. 이 서점의 젊은 남자 주인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 인연을 통해 설우는 오래동안 앓았던 일종의 무기력을 이겨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내용이에요.


[내가 좋았던 포인트]

제가 이 책을 읽고 좋았던 포인트 세가지를 말씀 드리려 해요.

첫번째. 단설우.

저는 설우의 성격이 좋더라고요. 소설에서 설우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순한 아이로 나와요. 어른이 되어서도 부당한 권고사직에도 말 한마디 얹지 않고 그냥 회사를 나가게 되죠. 사실 설우는 순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것에 저항하고 나의 목소리를 내 봐야 달라질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인물이에요. 설우는 무기력한 사람이죠. 뭔가를 잘해봐야겠다는 의욕도 없고, 어떤 것이 본인에게 가장 이득이 될지에 대한 실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아빠는 설우의 그런 면을 못마땅해하지만 설우는 이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조‘의 존재 때문입니다. 늘상 엄마의 뱃속에서 왜 본인이 아닌 조가 사라진 것인지, 그렇게 얻게 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설우의 삶을 가득 채웠죠.


저는 설우가 느끼는 인생에 대한 무상함,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무기력이 참 와닿았어요. 제가 20살이 되었을 때 조금 늦은 사춘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상 인생무상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왜 살아야하는지를 모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쩐지 설우의 마음이 남같지 않아서 정이 간 거 같습니다.


이런 설우에게서 제가 배운 한가지가 있어요. 바로 설우는 ’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죠. 설우는 자신의 조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지난 연인이었던 S의 마음도, 그리고 서점 주인의 마음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고있어요. 모든 관계성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죠. 세상을 살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죠.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 내가 니 심정 다 알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해요. 빙의를 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근데 이 바탕에는 노력을 하면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란 믿음이 있는거죠. 그러나 저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실상 우리는 타인을 아닌 나 자체에 대해서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전제하게 되면 우리는 한뼘 만큼의 배려를 하게됩니다. 내가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저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구나. 하고 조금 떨어져서 기다려주게 되는거죠. 저는 설우의 이런 태도가 무척이나 멋지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두번째. 선자님 (선자 할머니)

설우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데요.

말 그대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곳에 70대 할머니 선자가 등록을 합니다.

선자는 해외에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도 영어 학원을 등록하죠. 그 이유가 궁금하시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선자의 말에 저는 한동안 그 단락에 멈춰있었습니다.

선자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았어요.

쓸모있는 모든 일을 해치우며 살았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어야했어요.

도무지 쓸떼없는 일은 할 수 없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선자가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나는 그걸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쓸모 없는 일이요. 배워 봤자 제대로 써 먹지도 못할 일. 잘할 수도 없고 잘하지 못해도 완벽하게 무용한 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죽기 전에 그걸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네요.”


저는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데요. 말로만 사랑합니다. 제대로 즐기지 못하거든요.

예전에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 변요한 배우가 연기한 ‘희성’이라는 인물이 그런 말을 해요. ‘난 무용한 것을 사랑하오. 꽃과 시 같은 것 말이오.“ 저는 그 문장을 들었을 때도 알았거든요.

제가 지향하는 삶이 그런 삶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용함을 견디지 못하고 언제나 유용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고있죠. 그런 저에게 선자는, 어쩌면 내가 계속 이렇게 산다면 선자같이 70살이 넘어서야 무용한 것을 위한 마음을 할애하겠구나 싶었어요. 아찔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요. ’안의 크기‘에서 선자님은 많이 등장하진 않지만 등장할 때 마다 제 마음을 건드렸어요. 선자님이 제가 이 책이 좋았던 두번째 포인트였어요.


마지막 세번째 포인트.

저는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작가님이 구성에 공을 들이셨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이 끝난 후 작가의 말이 이어지는데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별이 더 밝게 빛난다’

결국 작가님은 인생의 가장 어둡고 힘든 순간에도 결국 희망이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소설의 구성 중에 저는 대비되는 개념을 계속 사용한게 좋았어요. 숨은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엄마의 뱃속’이라는 공간에서 두 아이의 생이 시작되고, 한 아이의 생은 마감되죠. 생과 죽음이 대비됩니다.

선자 할머니는 쓸모 있는 것만을 찾아야 했으나, 결국 본인에게 가장 쓸모 없고 무용한 것을 배우려고요. 유용과 무용의 대비죠.

계속해서 사교육 시장에서 슈퍼스타 강사였던 한 원장은 그 길이 아니란 깨달음을 얻고선,

작고 오래 되서 학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흑호동 시장에서 작은 영어학원을 열며 행복을 얻습니다.

그리고 설우가 선택한 흑호동의 작은 빌라 1층 집은, 누군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간이죠. 죽음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곳입니다. 서점 주인도 심장병에 걸린 채 평생 죽음을 등에 업고 살아온 인물이고요. 평생을 함께 한 파란 빛 ‘조’ 또한 죽은 인물입니다.

결국 ‘죽음’이라는 삶의 끝단에 머물러있는 인물과 공간에 둘러싸인 채 설우는 살아가게 되고, 결국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살아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요. 더 이상 무기력을 방치하지 않기로 하죠. 결국 1년동안 해외를 모험하며 진짜 생을 살아가기로 결심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저는 이렇게 가장 어두운 면들을 힘든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결국 빛을 만난다는 발상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4/5 정도가 되던 찰나엔 너무 드라마틱한 전개가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겠더라고요.


책 리뷰는 여기까지에요.

좋은 책 많이 발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