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도시, 드메이 (4)

죄로 엮은 관을 쓴 도시

by Rachel


해가 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도시의 대표실로 쳐들어갔다.

도시의 대표는 퉁퉁하게 살이 오른 노년의 장로였다.

그의 머리에는 진주로 엮은 관이 얹혀 있었다.

알이 굵은 블러드 진주와 푸른 진주들이 번들거리며 박혀 있었다.

죄를 엮어 쓴 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안의 얼굴에 노골적인 불쾌감이 스쳤다.

그녀는 비꼬듯 물었다.


“오늘 해부— 어디서 하나?”

“뉘신지?”

“하.”

이안이 짧게 웃었다.

“오늘따라 인간들이 나한테 너무하는군.”



다음 순간, 이안은 손을 뻗어 그의 기억을 거칠게 훑어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헤집어진 노인이 뒤로 넘어지기 무섭게, 집무실 뒤편의 창고로 그대로 처박았다.



쿵.

노인을 공격했다는 사실에 시젠이 잠시 멈칫했지만, 이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키치였다.

“헉!”

“어디야.”

“해부실은 양식장 뒤편에 마련되었습니다. 거기선 원래 양식조개들을..”

“말하지 말고 안내해!”

거친 언사를 본 키치는 말없이 그녀를 안내했다.




해부실로 도착한 이안과 시젠은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손이 꽁꽁 묶인 채로, 인어 하나가 해체되고 있었다.

공중에 매달린 채, 살아 있는 인어 지느러미를 하나하나 떼어냈다.

바르작거리며 몸을 떠는 인어에게서 떨어지는 피를 받는 양동이도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나 있는 일처럼.

마치 소를 도살하는 현장에 서 있는 것을 느낀 시젠이 구토를 했다.

“우욱- 우... 우웩.”



시젠의 허리춤에서 급하게 칼을 꺼낸 이안은, 인어의 손 위쪽을 향해 칼을 날렸다.

캉 소리와 함께 인어는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이안은 그녀를 받아 안았다.

한순간 공중에서 떨어진 인어는 떨다가, 이안의 냄새를 맡곤 조금씩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였다.

“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어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물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위잉—

기계음이 해부실을 가르며 울렸고, 곧이어 두 번째 인어가 끌려 나왔다.

첫 번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

묶인 몸, 상처 난 지느러미,

같은 방식의 준비.

이곳에서의 고통은— 개별의 비극이 아니었다.



투둑—

이안이 받아든 인어의 눈가에서 진주알 하나가 흘러내렸다.

이안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들어 기계의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쇠사슬로 엮인 거대한 장치, 그 위에 자리한 조종석.

그곳에는 도시 대표와 닮은 인상의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진행되던 ‘행사’를 방해받은 것이 못마땅한 듯,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뉘슈?”

짧고 거친 한마디.

그 순간, 이안이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억누른 분노가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해부실을 넘어, 도시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인간의 왕이다.”

잠시의 정적.

“한 왕국을 파멸로 밀어넣은 너희를— 단죄하러 왔다.”


그는 이안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귀를 후비듯 손가락을 귀에 넣더니, 비웃듯 말했다.



“해 보시던가. 난 무서울 것 없네.”

그 태연함이— 도리어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이안의 시선이 해부대 위의 인어에게 잠시 머물렀다.

찢긴 지느러미, 묶인 손목, 아직 식지 않은 피.

그리고 다시, 조종석 위의 남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태까지— 인어를 이렇게 처리했나?”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칼날처럼 박혔다.

“한 생명을.”

짧은 숨을 고른 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렇게 무참히?”



“그게 어찌 생명인가?”

중년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저 조개를 생산하는 도구지.”

“뭐라고?”

“조개를 생산하는 도구잖나, 객이여.”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대의 신분조회를 이미 마쳤네. 귀하디귀한 소통자라지? 그렇다면 이런 광경쯤— 이미 많이 봐 왔을 텐데.”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양식 아르마 말인가.”

낮고 날 선 목소리였다.

“아니면 기생 아르마?”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단호한 단정.

“기생 아르마는 발견 즉시 처분. 관련 상단 역시 궤멸이다.”

그녀의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그런데도 아직— 알음알음 손을 대고 있단 말인가?”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네놈처럼.”



사내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우리도 말일세. 양식 아르마처럼— 이들을 ‘기르고’ 있는 것뿐이라네.”

“그래. 법을 아주— 뭣같이 여기는 모양이지?”

사내는 비웃듯 턱을 치켜들었다.

“이 도시의 법은 나야.”

느릿하게, 확신에 찬 어조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지.”

그 거드름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법대로 하자는 말이로군.”

미소가 아주 옅게 스쳤다.

“좋아. 법대로 하지.”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또렷이 내려찍었다.

단— 바다의 법대로 하는 거다.




“바다의 법은 처음 듣는데.”

“처음 듣는 게 정상이다.”

이안은 감정 없이 말했다.

“나는 인간의 왕이다. 그러나, 인간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판결처럼 이어졌다.

“나는— 바다의 법을 집행하는 자다.”



이안은 가벼운 손짓 하나로 사내를 끌어내렸다. 그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얼굴만 남긴 채, 땅에 박혀 버린 꼴이었다.

이안은 그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발걸음을 옮겨, 해부실 안에 남아 있던 인어들을 하나씩 구조해 모았다.



그제야— 이곳의 구조가 보였다.

인어들은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포개져 있었다.

몸 위에 몸이, 지느러미 위에 또 다른 지느러미가 얹힌 채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틈만 남겨 두고 층층이 눌러 쌓여 있었다.

마치 바다로 나가기 전의— 옛 노예선의 선창처럼.

움직일 수 없게,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게, 도망도 저항도 생각하지 못하게.

그렇게 보관되고 있었다.



“죄인에게 묻겠다.”

이안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해부실 전체가 그 한마디에 잠잠해졌다.

“마지막 자비를 행하기에 앞서— 네가 저지른 것이 죄라 생각하는가?”

그는 비웃듯 소리쳤다.

“죄는 무슨 죄! 저것들은 그냥— 조개 양식이랑 같은, 조개를 생산하는 도구일 뿐이야!”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짧게.

“그렇다면— 자비는 필요 없겠군.”

그녀의 눈빛이 식었다.

“바다의 법대로 집행하지.”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몸이 갑작스레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시젠이 그를 땅에서 뽑아내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 으아! 내, 내가…!”

그의 하반신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뒤섞인, 인어들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저주가 아니었다.
은유도, 상징도 아니었다.

바다의 징벌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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