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로 엮인 관을 쓴 도시
이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도시엔 내가 가볼게. 혹시- 진주조개 양식장을 알아?”
“알아. 하지만. 거긴 이미 폐쇄된지 오래야.”
“.. 네가 폐쇄시킨 건 아니지?”
레이니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 우리가 사는 곳에, 진주조개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야. 가끔 우리의 눈물을 받아먹고 진주가 크기도 하니까. 하지만.. 갑자기 진주조개들이 말라죽어 간 건.. 내가 그런 게 아냐.”
“레이니. 난 널 믿어.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 해 줘야 해. 나는 그런 거짓을 듣고 싶진 않아.”
“이안. 난 거짓을 말한 게-”
“레이니, 나는 인간 편을 들고자 하는 게 아냐. 오히려 너의 편을 들고 싶기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나는 드메이로 가서 진주조개 양식장을 조사할 거야. 그리고 그 진주조개 양식장을 조사한 뒤 전처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인어들을 풀어주라고 요구할 거야. 그런데 그 양식장을 네가 폐쇄시킨 거라면 내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줘. 양식장, 네가 폐쇄시킨 거야?”
“아냐. 내, 내가 폐쇄시킨 건 아니었어. 나는.. 미키의 아들에게 한가지 약속을 해서.”
“그 약속이 뭐야?”
“인어들이 진주조개를 잘 돌봐 달라는 약속이었어.”
“미키의 아들은 처음엔 성실한 우리를 기꺼이 반겼어.”
레이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이어 말했다.
“그러다— 우리의 눈물을 보고 소문을 냈지. 푸른 진주와 붉은 진주가 나오는 걸 직접 보게 되었거든.”
그다음 말은 더 낮아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어. 진주조개들도 저렇게 푸른 진주나 붉은 진주를 내게 할 수 없겠냐고.”
레이니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건— 조개들의 마음이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
짧은 숨.
“그랬더니 그는 다짜고짜 드메이의 대표에게 그 사실을 밀고했지.”
말이 끝나자, 침묵이 흘렀다.
“…결국 이 사단은 내가 만들어 낸 거나 다름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무너져 있었다.
“내가 외면해 온 진실이— 내 백성을 해친 거야.”
이안은 도시로 들어가 폐쇄된 진주조개 양식장을 조사했다.
양식장은 오래 방치된 듯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어딘가 이상했다.
조개 하나하나에 모두 같은 방향의 칼집이 나 있었다.
자연스러운 파손이 아니었다.
병도, 환경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양식조개들을 죽인 흔적이었다.
이안은 땅에 손을 대고, 그곳에 남아 있던 기억을 불러냈다.
칼이 닿았던 순간, 조개들이 죽어가던 시간,
그 위를 지나간 발걸음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 하나의 얼굴이었다.
미키의 아들.
그 순간, 모든 조각이 맞물렸다.
이안은 조개들의 입안을 하나하나 살폈다.
푸른 진주, 붉은 진주, 보랏빛 진주, 주홍빛 진주까지—
색은 분명 다양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맑지 않았고, 알은 굵지 않았다.
그제야 이안은 깨달았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모든 것을 망쳐 버릴 생각이었던가.
이안은 화가 난 상태로 도시 안의 인물들을 살폈다.
그리고, 손에 굳은살이 박힌 미키의 아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 앞에 섰다.
흥청망청 취해 있는 꼴이 아주 꼴사나웠다.
“뉘슈?”
“네 조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다.”
“!”
놀라, 도망치려는 미키의 아들의 목덜미를 잡아챈 이안은 그를 집 안으로 집어던졌다.
그의 집 안은 꼴이 아주 엉망이었다.
화려한 겉모양과는 달리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 있었으며, 술병들이 나뒹구는 전형적인 술에 절은 자의 집이었다.
“호- 혹시 할아버님의 은인이십니까.”
딸꾹거리며 말하는 그를 보며 이안이 한쪽 눈싸ᅠ갑을 들어올렸다.
“양식장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왕국을 망쳐 놓고— 그걸 변명이라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부르나?”
시젠에게서 칼을 뺏어든 이안이 살기를 뿜으며, 그의 목젖에 칼끝을 겨누었다.
“그리고— 순진한 인어를 속여 먹고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나?”
이안의 시선이 미키의 아들을 꿰뚫었다.
“오백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
이안은, 미키의 아들에게 숨을 불어넣듯 자신의 기억을 불어넣었다.
오백 년 전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일들.
도시는 그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인어를 착취하고, 수탈하고, 유린하는 일들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안에게 들켜,
다시 한 번 멸망할 뻔했던 인간들은—
순진한 인어의 여왕에게 구원받아 살아남았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용서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나 있었다.
‘진주조개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미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선량한 인간, 진주조개를 키워 도시를 번영시킨 인물.
그래서 드메이는 ‘진주의 도시’라 불렸고,
찬란한 진주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겉모습의 뒤편에는—
할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키치는 문득, 핏발 선 눈으로 무언가를 내려다보던 그날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섬뜩할 만큼 또렷한 기억이었다.
그의 발 밑에 있던, 피투성이의 하얀 천으로 덮인 무언가.
사람만한 크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무언가였다. 아직도 움찔거리며 움직이던 그것.
그것이 인어였음을, 그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키치의 할아버지는 징벌을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어로 다시 태어났다.
아들에게 착취당하고, 유린당하며, 수탈당했으며, 스스로를 아비라고 외쳤다.
아들에게 그것은 헛소리로 치부되었다.
그것이 바다가 내린 징벌이었다.
오백 년 전의 기억을 몸으로 겪어 낸 탓인지, 키치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안에게 물었다.
“…저, 저도 그렇게 되는 겁니까.”
“당연히.”
짧고,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키치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나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어요. 인어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뭐?”
이안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인어를 죽이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사라진 인어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 말에, 키치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나, 나는!! 그들을 풀어줬어요!”
숨이 가쁘게 이어졌다.
“먼 바다로— 원양으로 보냈다고요!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어요!”
그는 절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키치에게 말했다.
“인어는 살아있으면 여왕에게 모두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런데, 지금 여왕의 궁에는, 단 한명의 백성만이 살아 있을 뿐이야.”
“아, 아니에요! 나는 분명 구조를 했어요. 루라는 인어였다구요! 그 애를 난 분명 구해서..”
‘루’의 이름이 나오자, 이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디선가 꼬인 건가, 아니면- 선입견 때문일까.
“확실히 말하는 게 좋아.”
이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니면—네 할아버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해 주겠어.”
그 말이 끝나자, 키치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루, 루는— 내 손으로 바다에 풀어줬어요!”
그는 거의 울먹이며 외쳤다.
“다, 다른 인어들도… 분명히 그 녀석이 풀어준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이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녀석? 다른 일행이 있었나?”
그 질문에 답하듯—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건장한 사내 셋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지 한 명이 비더라니.”
“배신을 했군, 키치?”
“데… 데본!”
“한 명이 비어서 이상하다 싶었지.”
데본이 비웃듯 말했다.
“족쳐 보니까 네 이름이 나오더군. 그래서 직접 온 거야.”
키치는 바닥에 주저앉다시피 하며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저, 저 녀석이— 저들의 일행입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데본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는 그 벌에서 빼 주세요! 제발!”
어디까지 일이 커진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안은 말없이 시젠에게 눈짓했다.
그 순간— 시젠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사내 셋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바닥에 제압되었다.
바닥에 처박힌 셋을 보며, 이안은 그들에게도 기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키치에게도 했던, 똑같은 심문을 시작했다. 그들이 분 정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인어들은 어딘가에 갇혀서 계속 진주를 만들거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노래를 부르지 않거나 진주를 만들지 않는 인어들은, 어딘가로 보내졌다는 것.
그리고- 첫 번째 해부가 오늘 저녁에 시작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