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도시, 드메이 (2)

죄로 엮은 관을 쓴 도시

by Rachel

시젠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어민들의 채취 도구들이 검의 사정권 안으로 날아들었다.

[챙!]


쳐내고— 또 쳐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어민들은 너무 많았다.

한둘일 거라 여겼지만, 어느새 사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곳에 불러내서 미안해, 레이니.”

[이안. 너무 화려하게 등장한 거 아냐? 특히 저 녀석— 지금 꽤 위험해 보이는데.]

“걱정하지 마. 저래 보여도, 꽤 솜씨가 좋으니까.”

이안은 시선을 전장 쪽으로 두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나는 그보다— 네가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그렇다면 내 저택으로 초대할게. 이거 받아.]



툭—

소라고동 하나가 던져졌다.

이안은 가볍게 받아내고 말했다.

“이거, 사용법 모르는데.”

[그냥 귀에 대. 그리고 시젠이랑 올 거면— 손 잡고 와.]

“그래. 알았어.”

이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 봐. 볼일은 끝났어.”

[안녕. 나중에 봐.]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누군가가 소라고동을 쥔 이안의 손을 우악스럽게 붙잡아챘다.

그러나—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소라고동이 아니었다.

붙잡힌 순간, 그것은 형태를 잃고 바닷물로 흩어졌다.


찰박—

물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 기이한 광경을 보자, 어민들의 눈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요, 용이다!”

“아냐— 용신이야.”

“어,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지? 정말 인간이 맞아…?”

바다 사람 특유의 미신이 그들의 불안을 부채질하듯 번져 가는 가운데,

이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비아냥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래.”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되묻듯 말했다.

“어디의 누구를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나?”

그 순간, 이안의 손끝에서 금빛이 가볍게 흩뿌려졌다.

그 빛을 피하듯 어민들은 뒤엉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요, 용신님! 용서하세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바닷가를 가르며 흩어졌고—

그 도망치는 등 뒤로, 이미 한 차례 전장을 치러낸 시젠이 서 있었다.




“아직 서 있을 수는 있지? 따라와, 시젠.”

“네…?”

얼떨떨한 얼굴로 미처 반응하지 못한 사이, 이안은 시젠의 손을 붙잡고 소라고동을 귀에 가져갔다.



휙—

짧은 소리와 함께, 바닷가의 풍경이 단숨에 찢어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레이니의 저택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동안 숨겼어?”

“나도 몰랐어.”

레이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이어 말했다.

“너와 대화한 뒤로 인간들의 수탈은 오히려 더 심해졌어.

그리고 어느 날, 내 휘하의 인어들이 모두 붙잡혀 갔지.”

숨을 고르듯, 그녀는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어.

세월이… 너무 많은 걸 앗아가 버렸으니까.”

“그럼— 그 인간의 후예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루의 기억을 읽어보니… 상당히 심각하던데.”

“루의 기억을 읽었다면, 아마 이해할 거야.”

레이니는 잠시 말을 고르듯 멈췄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받아들였던 그 인간— 미키는… 좋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의 아들 역시 좋은 사람일 거라 믿었지.”

그 믿음을 말하는 목소리는 이미 후회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경고를 무시한 건 우리였어.”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낮게 덧붙였다.

“아이들이 먼저 상처 입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그게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진주는 늘 우리 삶에 있었으니까. 매일 빠지지 않고, 장식처럼 곁에 놓여 있었거든.”

레이니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는 ‘블러드 진주’라는 말도 들었겠지.”

그녀는 담담하게, 그러나 잔인할 만큼 또렷하게 말했다.

“우리의 피눈물에서도 진주가 만들어져.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고문하거나, 죽이려 들어.”

잠시의 침묵.

“혹은— 노래를 요구하지.”

그 말이 가장 아프게 울렸다.

“노래를 부르다 흘린 눈물에서는 푸른 진주가 만들어지니까.”



“하아.”

이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래서 나는 오백 년 전에 잠들었던 거야, 레이니.”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비난은 없었다.

“네 이름처럼, 네가 울지 않기를 바랐어.”

비처럼 흐르는 눈물이 레이니의 얼굴을 적셨다.

그토록 아름다운 얼굴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너무나도 슬퍼, 시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손수건 조각을 내밀었다.


레이니는 잠시 망설이다 그 수건을 받아,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눈물이 아니라,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최상급의 진주들이었다.

시젠은 그 광경에 놀라 잠시 말없이 바닥에 흩어진 진주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침묵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요.”

잠시의 공백 끝에, 그는 깨달은 듯 덧붙였다.

“그래서 이 비극이 시작되었군요.”

그러자 레이니가 말없이 손수건 조각을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시젠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손수건을 내팽개쳤다.


딱—

손수건에서 떨어진 것은 진주였다.

피처럼 붉고,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아기 주먹만 한 붉은 진주.

데굴데굴—

블러드 진주가 바닥을 굴러갔지만,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도 줍지 않는 침묵 속에서 그 소리만이 오래도록 울렸다.

이안은 조용히 다가가 그 블러드 진주를 집어 들어 레이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받아.”

짧고 단정한 말이었다.

“이건 네 마음의 슬픔이잖아.”

그리고 시선을 돌려 시젠을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시젠. 그렇게 반응하면 레이니가 다쳐.”

말없이 그 진주를 받아든 레이니는 자신이 쓰고 있던 왕관의 빈 자리에 조심스레 끼워 넣었다. 작은 티아라 위에 장식된 진주는 잠시 빛을 머금더니, 이내 레이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광경을 본 시젠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진주가… 몸속으로 흡수되는 거라면, 당신의 일부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면.. 다른 인어들은 어떤가요. 다시 진주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인가요."

“가능해.”

레이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하지만— 푸른 진주는 그렇지 않아. 오직 붉은 진주만 가능하지.

붉은 진주는— 체액에 가까워.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피에 해당하지.”

레이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푸른 진주는 달라. 그건 영혼이야. 그러니까… 혼에 해당되는 것.”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영혼을 뱉어낸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깎아내는 일이야.

그래서 인어는 점점 말라 죽어 가게 되지.”

낮게 숨을 내쉰 뒤, 레이니는 마지막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하나의 명령만을 내렸어.”

차갑도록 단정한 목소리였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눈물도, 노래도 흘리지 말고 부르지 말라고.”

그게 낫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영혼이 조각나면… 다시는 어머니 바다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럼…”

시젠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은 인어들은… 모두 다, 죽은 건가요?”

두려움이 묻어 있는 질문이었다.

레이니는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루만 남았어.”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진주의 도시, 드메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