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도시, 드메이 (1)

죄로 엮인 관을 쓴 도시

by Rachel

드메이로 향하는 바닷길은,

바다를 아는 권속 아르마에 의지해 나아가는 항로였다.

상인들은 드메이에 대해 즐겁게 떠들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드메이는 향락의 도시라 불리는 항구도시로,

주변에 아름다운 머메이드들이 자주 출몰하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해룡은 보이지 않지만 야생 아르마가 많아,

사람들은 이곳을 ‘제2의 연’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시젠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미묘하게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얼굴이었다.

이안은 말없이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진주 생산에 대해 물었다.

“도시가 진주를 생산한다고?”

“네. 품질 좋은 진주를 생산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래— 인간이 어떻게 품질 좋은 진주를 생산하는지, 궁금해지는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이안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머문 곳에는 잔잔한 물결뿐이었지만,

그녀는 한참 동안 그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연 것은, 진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시젠.”

“네, 이안 님.”

“예전에는 진주를 어떻게 생산했을까?”

“…?”

뜬금없는 질문에 시젠이 잠시 말을 잃자,

이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방법은 간단해.

인어가 눈물을 흘리면 되지.”

“…울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시젠은 이미 무엇인가를 짐작한 듯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오백 년 전에는 ‘진주조개’라는 품종을 키워낸 인간이 있었어. 레이니의 친구였지. 그 인간 일족의 숙원을 이루어 주었으니, 사람들이 진주조개를 통해 품질 좋은 진주를 얻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이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다시 바다로 향했다.

“나는 지금, 울음소리가 들리는구나.”



한숨 섞인 말을 남긴 채, 이안은 아늑한 선실 안에 몸을 눕혔다.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귀에 걸린 진주 귀걸이가 가볍게 달랑거렸다.

“레이니—”

짧은 이름 하나에, 머메이드 퀸을 향한 이안의 염려가 숨결처럼 스며 있었다.

시젠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머메이드 퀸을 걱정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이안 님뿐일지도 모르겠군.’

카르노스에서 드메이로 향하는 길은 대략 일주일가량의 항해였다.



험한 파도를 지나면 잔잔한 바다가 이어졌고,

이윽고 진주조개처럼 커다란 조개와 매끈한 조약돌들이 머무는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그 바다를 보자 상인들은 “거의 다 왔다”며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드메이에 가까워질수록

이안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만 갔다.

일행인 시젠 역시 그 미묘한 변화를 느낀 듯

이안의 얼굴을 살피다,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드메이라는 이름을 알리듯 인어 하나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상인들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인어의 모습은 그 환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몸짓, 그리고 불안이 짙게 깔린 눈빛.

인어는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은 조용히 손짓해 인어를 불렀다.

낯선 인간 앞에서도, 그 인어는 물러서지 않고 일행에게 바짝 다가왔다.

여전히 주변의 ‘인간들’을 경계하는 기색은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이안에게만큼은 그 경계가 향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안은 귀에 걸린 진주 귀걸이를 가볍게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인어의 이마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네 기억을 보여주렴.”

말이 끝나자,

황금빛이 아주 희미하게 스쳤다.



그 빛과 함께 인어의 기억이 이안의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인간들은 인어의 친구였다.

진주조개를 처음 키워낸 인간,

그는 인어 일족의 오랜 숙원을 이루어 준 존재였기에

모두가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간은 점차 친구였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신에게서 필멸을 선물받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필멸과 함께, 영원하지 못한 기억을 부여받은 인간들은

시간이 흐르자 인어를 진주조개와 다르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어? 네가 우니까, 진주가 되네?”

그 발견은 처음엔 아주 우연에 가까웠다.

인어들의 집을 찾았던 최초의 인간은 그 비밀을 반드시 숨기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린 인어 하나가 인간의 아들과 바닷가에서 놀다,

그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그러자 인간들은 어린 인어들을 맛있는 것으로 꾀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몸에 손을 올렸다.

아이들의 몸에 멍이 드는 것을 본 어른 인어들은 아이들을 단속했다.

인간들과 거리를 두게 했고, 바닷가에 혼자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 일은, 겉으로 보기에 지나가는 일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진주조개는 작황이 좋았고, 해마다 씨알이 굵은 진주가 아무 문제 없이 생산되었으니까.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듯, 그 일이 새어나가는 데에는 아주 작은 틈이면 충분했다.

해류처럼 흘러나간 ‘눈물의 진주’.

그 소문은 곧 무시무시한 것이 되었다.

원양 어선을 타고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이제 인어를 잡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인어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주조개는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진주조개를 생산하던 인간의 후예, 드메이의 도시대표는 머메이드 퀸을 직접 불러 물었다.

인어들이 사라지는 일과 진주조개 사이에 혹시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머메이드 퀸은 고개를 저었다.

그 둘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그러나 곧이어, 차갑게 말을 이었다.

인어의 눈물이 흐를수록 인간의 탐욕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너 또한

이 땅을 떠나라고.



드메이의 도시 대표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도리어, 인어들을 잡아가는 데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급기야 아이들이 잡혀가기 시작했고, 인어 마을에 하나 둘 빈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붙잡힌 인어들은, 어느 날부터 눈물을 흘리기를 거부했다.

머릿속에 울리던 퀸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러자 인간들은 그 인어들을 때렸다.

몸에 상처들이 생겨나자, 인어들은 피울음을 울게 되었고,

그 때 만들어진 진주들은 최상급 ‘블러드 진주’가 되었다.

붉은 피울음을 품은,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빛에 인어들은 가혹하게 수탈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온 참이었다.




“내 이름은, 루예요.”

잠시 망설이던 인어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도와줄 수 있나요? 당신은.. 다른 인간과 다른 냄새가 나요.”

“루. 집으로 돌아가.”

잠시의 침묵 뒤,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기다려.”



저 도시를 바꿔 보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이안은 속으로만 삼켰다.

그리고 시젠에게 그 기억을 보여주었다.

시젠이 마주한 기억은 너무도 명확했다.


인어의 눈물로 세워진 도시— 드메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어를 잡아먹는 도시가 되어 버린 곳.

그 모든 장면의 끝에서, 문득 떠오른 이름 하나.

머메이드 퀸, 레이니.

거품 속으로 스러져 가던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슬프게 아름다웠다.

그토록 깊은 비밀을 품고 있었던 걸까.

가슴이 저릴 만큼 아름다웠던 레이니의 얼굴을 떠올리자,

시젠의 눈가에 조용히 눈물이 고였다.



시젠의 눈물을 본 이안이 멈칫, 하더니 말했다.

“네가 울 줄은 몰랐어.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저- 그분이 그 슬픈 비밀을 가지고 있었음이, 슬퍼서.”

상인들과 함께 도시로 향하던 마차에서 내린 이안은 시젠이 뒤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뒤,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향한 곳은 드메이의 바닷가였다.

쌀쌀한 바람이 불던 바닷가였다.



그들 말고도, 조개나 미역을 채취하는 어민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매섭게 불어오던 바닷바람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누그러졌다.

귓가를 할퀴던 바람의 비명 같은 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평온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변화는 오직 이안의 주변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

그제야 시젠은 이안이 왕이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경이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시젠의 시선 끝에서 바다거품이 일었다.

보글거리던 거품은 곧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



그 순간, 미역을 채취하던 어민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머, 머— 머메이드 퀸이다! 당장 시장에게 알려!”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머메이드 퀸? 당장 잡아! 우리도 진주맛 좀 봐야지!”

험악하게 변한 어민들의 기세를 보며, 이안이 시젠에게 말했다.

짧고, 단호하게.

“시젠. 지금부터— 나를 지켜.”



금요일 연재
이전 10화카르노스에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