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노스에서 (5)

카르노스(Carnos)

by Rachel


이안은 알았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조율이라는 것을.

왕이 해야 할 일은 베는 것이 아니라,

이 분노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걸.


“나의 분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저들의 희락(喜樂)을 위해 희생된 나의 아들과 나의 반려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대, 답하라. 그대는 왕이지 않느냐.”


이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금빛 막 너머에서, 변이된 자의 눈동자가 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름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엉겨 있었다.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나는 인간의 왕이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어떤 자랑도 없었다.

“하지만, 네 아들과 네 반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분노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쿵—

변이된 자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그들의 죽음은 누군가의 희락을 위해 쓰였다. 그 분노가 태어난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 분노를 품을 자격도, 너에게 있다.”

이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황금빛 막이 함께 이동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노가 또 다른 희생을 낳는 길로 흘러가도록 두지는 않겠다.”

변이된 자의 입에서 갈라진 숨이 새어 나왔다.

“왕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이안은 손바닥을 펴 심연과 도시, 그리고 변이된 자들 사이에 내밀었다.


“네 분노가 복수가 될지, 기억이 될지, 혹은 바다로 돌아갈지는— 네가 선택하라.”

잠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변이된 자 하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짐승의 울음 사이로 인간의 목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기억으로.”

그 한마디에 분노의 심장이 처음으로 방향을 잃었다.

쿵쿵 울리던 심장소리가 미약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으로 남겠다.

그리하여, 이 도시에 희락을 위한 죽음 따위는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겠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물었다.

“다른 자들의 의견도 너와 같으냐?”

변이된 자의 형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안에서 여러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바다로 돌아가고픈 권속들도,

―너무 괴로워 복수하고 싶은 열망도,

―아직 말조차 하지 못한 분노도 있다.”

이안은 그 말을 끊지 않았다.

끝까지 들었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오, 왕이여.”



그제야, 이안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하지 않겠다.”

황금빛 막이 잔잔히 파동쳤다. 변이된 자들의 울음이 낮아졌다.


“기억으로 남고 싶은 자는, 이 도시에 남아 이곳이 어떤 피 위에 세워졌는지 증언하라.”

바닥의 룬어들이 핏빛에서 금빛으로 미약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자는, 아르드의 품으로 돌아가 분노를 흘려보내라.”

파도 소리가 멀리서 응답했다.



“그리고— 복수를 원한 자들은.”

이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가장 무거웠다.

“나는 그 분노를 막지 않겠다. 그러나 희락으로의 복수는 허락하지 않는다.”

변이된 자 하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너희의 분노는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안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왕으로서, 내가 세우는 질서는 이것이다.”

그 순간, 분노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쿵—


도시는 숨을 들이마셨고, 카르노스의 돌바닥 위로 새로운 문양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기억의 표식,

귀환의 흔적,

그리고—

아직 닫히지 않은, 분노의 길.


왼쪽의 손짓으로 표식들을 새기며, 이안은 오른손으로 칼스의 몸에 박힌 룬들을 정돈했다.

분노를 품은 그 검붉은 빛을 황금빛으로 바꾸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이안은 알아챘다.


앞으로 카르노스는 구원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분노 속에 방치되지도 않을 것이다.



바다로 돌아간 권속들의 선택은, 잠드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원한에 매여,

강제로 깨어 있어야 했던 권속들을 받아들인 아르드는 이안에게 그렇게 전했다.



[미리암과 함께, 이들을 오랜 잠으로 이끌었으니 그대에게 빚을 졌다.

내 권속들의 대부분이 돌아왔다.]

이안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여 바다를 향해 인사했을 뿐이었다.




기억으로 남은 자들은, 도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르노스를 검투의 도시에서, 경쟁의 도시로 바꾸었다.

도시와 도시가 경쟁하고, 힘과 기술이 겨루되,

누구도 희락을 위해 죽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들은 왕을 다시 세웠다.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판결하고, 듣는 왕.

‘인간의 왕’ 이안이 그랬던 것처럼,

분노 앞에 서되 답을 대신하지 않는 자의 자리를.




카르노스는 구원되지는 않았으나 방치된 도시도 아니었고,

왕은 떠났지만 조건은 남아,

바다는 잠든 이름들을 끝내 잊지 않았다.


카르노스에 있었던 이안의 오래된 약속은, 구원이 되어 아르드에게로 돌아갔다.

왕은 다음 도시로 떠나갔으나, 왕의 조건은 도시에 남았고,

아르드의 바다는 잠든 이름들을 조용히 품고 있었다.


칼스의 온몸에 새겨진 룬어들은 아직 남아, 그를 대적자이자 왕의 조건을 품은 자로 만들었다.

그의 환송을 받으며,

시젠 일행은 다음 도시인 드메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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