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노스에서 (4)

카르노스(Carnos)

by Rachel

시젠의 몸에 남은 룬이 분노에 반응하듯 붉게 빛나더니—

시민들 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여기, 괴물이 있다!”

룬어에 반응한 쪽은 시젠이 아니었다.

시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게 검투장에 발을 들였던 자들,

가장 오래, 가장 자주 피를 구경해 온 자들부터였다.


[캬아아아아악!]

그 소리는 더 이상 인간이 낼 수 있는 비명이 아니었다.

목이 찢어지는 소리와, 무언가가 안쪽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르던 시민 하나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입이 다물어진 것이 아니라, 입이라는 구조 자체가 사라졌다.

턱이 녹아내리듯 뒤틀리며, 피와 침이 구분 없이 흘러내렸다.

눈동자는 흰자부터 검게 번져가고, 동공은 마치 룬처럼 붉은 원을 그리며 갈라졌다.

그 다음은, 소리조차 없었다.


변이는 비명보다 빨랐다.

사람들은 하나둘, 비명을 지르다 멈추었고

멈춘 채로, 서서히 바뀌었다.

누군가는 팔이 뒤집히듯 꺾였고, 누군가는 가슴이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올랐다.

핏줄이 혈관이 아니라 문자처럼 피부 위로 떠올라, 검붉은 룬의 형상을 이루었다.


“도, 도망쳐—!”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도망치던 시민의 발목이 이미 변이를 시작한 누군가의 손에 붙잡혔다.

그 손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은 갈고리처럼 굽어 있었고,

피부 아래에서는 낮은 울림이 뛰고 있었다.


쿵—

쿵—

심장 소리였다.

하지만 그 심장소리는 ,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시젠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자신의 팔을 타고 남아 있던 룬이 고통스럽게 맥박치고 있었다.

“……이건.”

칼스가 이를 악물었다.

“분노의 심장이— 사람을 고르고 있어.”


도시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해진 척하고 있었다.

피를 구경하던 자들,

웃음을 던지던 자들,

아무 말 없이 금화를 내밀던 자들.

그 기억을 가장 오래 품고 있던 몸들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카르노스는 자신이 삼켜 온 분노를

이제, 사람의 형상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변이한 자들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검투장 근처를 떠돌던 이들이 아니라,

그저 갈 길을 오가던 일반 시민들이었다.


난데없는 공격에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비명은 서로를 밀치며 뒤엉켜 터져 나왔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칼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전원, 잘 들어라. 지금부터 도시를 봉쇄한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명령했다.

“문을 닫아라. 항구 쪽으로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

부하들이 흩어지며 종을 울렸고, 도시의 입구와 골목마다

쇠문이 내려앉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때였다.



시젠의 몸을 타고 남아 있던 룬이 한 박자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맥박쳤다.

—아.

그 순간, 시젠은 깨달았다.

이 룬은 보호도, 저주도 아니었다.

표식이었다.




시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변이를 시작한 자들 모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어금니가 드러났다. 입 안쪽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며,

낮고 쉰 숨소리가 동시에 새어 나왔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젠에게 꽂혔다.



“시젠!”

칼스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변이한 자들이 한꺼번에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순간, 시젠은 확신했다.

—이 룬은 분노의 심장이 길을 찾기 위해 남긴 표식이다.


왕이 없는 동안,

도시는 새로운 ‘중심’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선은 분명히 시젠을 향해 있었다.

변이된 자가 갈고리처럼 변형된 손을 뻗어

시젠의 목덜미를 향해 휘두르는 순간—



시젠의 얼굴에 새겨진 룬이 붉게 빛났다.

그 빛은 경고도, 방어도 아니었다.

부름이었다.



공기가 한 번 접혔다가, 천천히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틈에서, 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잠시, 변이된 자들과 시민들, 피와 공포가 뒤엉킨 도시의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없었다. 분노도, 놀람도 없었다.

이안은 그저 보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손을 한 번 휘둘렀다.

왕의 힘이 응축된 황금빛이 공기를 가르며 번졌다.

그 빛은 변이된 자들을 향하지 않았다.

도시를 향하지도 않았다.

곧장, 시젠을 향했다.



붉게 빛나던 룬들이 마치 물에 끌려가듯 떼어져, 하나 둘 공중으로 떠올랐다.

피부에 새겨졌던 문자들이 비명을 지르듯 떨리며, 이안의 손바닥 위로 빨려 들어갔다.

시젠의 몸에서 열이 빠져나갔다.

그는 무릎이 꺾이듯 주저앉았고, 칼스가 재빨리 몸을 받쳐 안았다.

“시젠—!”


그러나 이안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룬들이 하나의 원을 이루며 회전하고 있었다.

붉은 빛과 금빛이 뒤섞이며, 서로를 밀어내듯 부딪혔다.



그제야, 변이된 자들이 멈췄다.

그들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고,

여전히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시젠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천천히.

이안에게로 옮겨졌다.



“……왕을 찾고 있었나.”

이안이 낮게 말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룬들이 한 번, 크게 맥박쳤다.

“그렇다면 잘 찾아왔다.”



도시는 숨을 멈추었다.

카르노스의 분노는

지금 이 순간, 마침내 왕을 마주하고 있었다.



변이된 자들은 황금빛에 홀린 듯 이안에게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투명한 막에 몸을 부딪히며,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이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 위로, 겹겹의 잔상이 비쳤다.

찢겨 죽은 권속들의 형체,

검투장에서 쓰러진 짐승들의 눈동자,

마지막 숨을 내쉬던 순간의 공포와 분노가

한 몸 안에서 뒤엉켜 있었다.


분노의 심장은 이안을 중심으로 인식하며 변이를 더 뻗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안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손을 들지도, 힘을 더하지도 않았다.


그저—

본다.


“……그래.”

이안이 낮게 말했다.

“너희는 괴물이 아니다.”

변이된 자 하나가 투명한 막 너머에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 울음소리가 아주 잠깐, 끊겼다.


“너희는, 분노가 갈 곳을 잃었을 뿐이다.”

그 말이 끝나자, 막에 부딪히던 손들이 잠시 멈췄다.

짐승 같은 울음 사이로 인간의 숨소리가 섞였다.



분노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쿵—

마치, 무언가를 잘못 계산했다는 듯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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