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는 마음 - 가장 가까운 사랑의 언어
40대의 그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프리마돈나의 꿈을 피아노 앞에서 펼친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한동안 채운다. 밝은 목소리와 함께 환해진 얼굴의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그렇게 그녀는 이상에 비껴간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50대의 그녀는 평생교육원을 다녔다. 엄한 오라버니로 인해 마치지 못한 학구열을 모교인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달래고 있었다. 그녀의 빼곡하게 적힌 시사뉴스의 메모와 함께 교육원에서의 공부로 그녀는 기뻐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대학 교정을 밟으며 다시 20대의 꿈 많은 자신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60대의 그녀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달래기 위한 그녀의 시는 묻혀 두었던 그녀의 예술가의 감성을 활활 태웠다. 60대의 외로움은 밤이 깊도록 국어사전과 씨름하는 그녀에게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편 두 편의 시가 두 권의 시집으로 발간이 되며 그녀는 인생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누렸다.
70대의 그녀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건강한 삶의 조화를 위해 그녀는 열심히 노력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목소리보다 건반을 튕기는 손가락으로 쉬어가려는 그녀의 뇌세포를 깨었다.
80대의 그녀는 자꾸 잊히는 기억력을 두려워했다. 사라지는 자신감 속에 함께 있어도 더 외로워지는 그녀는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스스로 뭔가를 하는 능력보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그녀는 주간 보호센터를 나가기 시작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속에 어느덧 적응하며 익숙해지는 그녀는 하나씩 그녀가 잡고 있던 세상의 끈들을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얗게 센 그녀의 머리카락은 더 이상 염색으로도 가려지지 않고 새하얗게 돼버렸다. 그녀의 초롱한 눈빛은 흐릿한 눈으로 멍해졌다. 자신이 시를 썼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그녀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가 떠난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그녀의 외로움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듯싶다. 쓸씀 함이고 허전함이고 공허함이었다. 단절감이었고 절망감이었다. 외로움의 총체에서 그녀는 그렇게 빨리 치매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 것 같다.
엄마와 함께 한 8년여의 시간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책임감과 답답함을 엄마는 처절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함께 해서 좋은 기억들이 있었지만 엄마가 없는 지금 남는 것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나 또한 엄마가 느꼈을 그 시간들의 조각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한 여자로서 바라보는 마음이 이제야 생겨남은 나의 마음의 부정적 찌꺼기가 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혼자 사는 20대부터 노년층까지 외로움으로 표현되는 무수한 단어들 속에서 산다. 그것이 유희가 되고 즐거움이 되다가 처절한 고립으로도 이어진다. 배고픔이 음식으로 달래지듯 외로움이 관계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이 무너지는 시점이 온다.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생긴 균열이 쓸쓸함을 낳는다. 공허함이 단순히 친구를 만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온다. 함께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가족으로 인해 외로움에 상처가 생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보다 더 아프게 외면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은 상처를 가면으로 위장하고 밝게 살아간다. 순간순간 나오는 말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을 관계에서는 그조차 흘려보낸다. 상대가 어떤 마음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로 빼앗아 버린다. 그러다 보니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남은 것은 다시 헛헛한 마음뿐이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관계 속에서 허무함으로 남아 사람을 다시 고립되게 만든다.
하루는 온전히 나의 이야기만 들어주는 날이고 또 다른 하루는 온전히 그의 이야기만 들어주는 날이면 어떨까. 귀로만 듣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들어주는 가슴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냥 들어주는 것, 그냥 그 존재로 인정하는 것,
이미 떠나가신 어머니에게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음에 마음이 저려온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그렇게 마음으로 듣는다면 어떨까.
덜 외롭기보다 덜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