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외롭지 않다는 전제가 있는가
사랑하면 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것일까
왜라는 단어를 사랑과 외로움 사이에 두고 보니 사랑의 전제가 궁금해졌다.
사랑해도 외로울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외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시대보다 우리는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늘 달고 있다.
어쩌면 먹고사는 것에만 바삐 사는 시대에는 감히 꺼내지도 못했던 부분이 이제야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또는 무수한 소통의 채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점차 개인주의적 생활로 이어지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만 물어볼 수 있는 김치 비법을 이제는 유튜브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결한다. 엄마의 따뜻한 밥상을 버튼 몇 개로 주문한 배달음식으로 채운다. 누군가의 사랑이 그 대상의 표현물로 대체할 수 있는 무수한 선택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무수한 선택의 상품은 늘 꼬리를 달고 이어진다.
주문한 배달 음식은 과식을 부른다. 늘어난 체중으로 다이어트 상품을 섭취하고 헬스를 하느라 가벼워진 지갑은 또 다른 일거리를 찾게 한다. 바쁜 시간으로 또 배달음식을 시킨다. 집에서 시켜 먹으니 집 밖에 나가기보다는 혼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보내는 시간이 더 편하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진다.
그럼에도 불쑥 올라오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외로움일까. 그냥 떠오른 마음을 덮어버린다.
엄마의 음식이 그리운 것인지 엄마가 그리운 것인지 헛갈릴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리로 이어지는 김치 레시피는 핑계이고 엄마의 따뜻한 말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 그 자체로 사랑받고 있는 마음이 좋아 엄마에게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때론 엄마의 훈계가 지겨워져 전화를 빨리 끊어 버릴 수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와 이야기할 수 없음에 깊어지는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야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원해서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표현을 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받고 싶은 사랑의 표현과 하고 있는 사랑의 표현이 어긋 날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선상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표현은 자신이 받은 사랑에서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면 '선물'은 그의 사랑의 언어이다.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너무 어색한 누군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한다. 집을 청소하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면서 사랑의 표현을 한다. '봉사'는 그의 사랑의 언어이다.
그의 봉사와 나의 선물인 사랑의 언어로만 사랑을 이해한다면 균열이 생긴다. 그에게서는 원하는 선물을 얻을 수 없고 그 또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는 봉사를 상대로부터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받는 것에만 초첨을 맞춘다면 우리는 늘 우리의 허기로 채워지지 않는 밥투정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만 그의 헌신과 선물에 '고마워, 감사해'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에 대한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당신이 ~마음으로 했구나. 고마워'라는 말은 서로의 섭섭함을 달래주는 최고의 언어이다.
사랑에는 외로움이라는 조각이 얹어져 있다.
그 외로움이 가끔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한다. 그 외침이 무시되고 반복되면 외로움은 깊어진다. 사랑에 얹어진 외로움이 커져 버린다. 초승달 같은 외로움이 보름달처럼 커져 버린다.
때론 구름에 가져진 달이 보이지 않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차지한다. 외로움은 메아리처럼 혼자만의 반복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외로움은 사랑의 한 부분이다. 사랑하기에 외롭고 사랑할 수 있기에 외롭다.
그 외로움은 작을 때도 있고 클 때도 있다.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
혼자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나눠 준다면
그 외로움의 마음을 작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