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아도 외로운 사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해독제

by 김혜신

누군가를 만나면 말을 안 해도 될 때가 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끊임없는 말은 쉴 새 없이 입에서 나온다. 마치 머릿속 생각이 쏟아져 나오듯 말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말이라 하며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잘 들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와의 시간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녀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말의 힘이 있기에 사람들을 휘어잡는 그녀의 주도권은 나이가 들면서 외로움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거칠고 거침없는 그녀의 말에 수긍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라고 시작하는 그녀의 대화패턴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의 말 다음에 이어지는 상대에게 "아니"라는 부정의 단어로 이어갔다. 정확한 의미를 더하길 원하는 것 같지만 상대는 거부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일방적인 대화 뒤에는 늘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런 그녀가 나이가 들면서 "그렇지, "라는 단어를 자주 쓰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외로움이 그녀에게 힘을 빼게 한 것 같다. 함께 있어 준 남편이 없는 자리에 외로움과 더불어 힘 빠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저절로 빠져가는 근육처럼 자신의 힘도 빠지게 한다.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 같지만 자신은 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있는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힘센 척, 모든 척을 하지만 돌아서면 그 힘으로 인해 동반되는 근육통이 이 있다는 것을.

그 '척'이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외로움으로 점차 빠지기 시작한다. 많던 말도 조금씩 줄어든다. 힘을 주며 물속에서 휘젓는 팔다리가 점차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 듯 말이다.

세상은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 낸 방어막으로 자신을 보호할 때는 그 어떤 것이 와도 끄떡없다. 자신의 틀에서 움직일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두려움의 방어막이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막혀 있는 귀가 열리고 닫힌 눈이 떠지며 조금씩 힘주던 자신의 모습이 풀리기 시작한다. 더해지는 외로움은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삶은 믿음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자신의 힘은 늘 최대치로 갈 수 없다. 그 힘은 믿음이라는 절대적 존재와 마음속에서 힘을 빼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중심인 그녀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 자신은 늘 누군가를 돕고 보살피는 역할을 자청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밀고 가는 힘이 센 그녀가 헤쳐 온 그 길들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 왔던 길이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해야 했던 그녀는 받아 본 기억 보다 준 기억이 더 많다. 그렇게 살아온 그녀의 결핍은 사랑이었다. 주고 싶은 만큼 받고 싶었다. 누군가를 보살피듯 보살핌을 받고 싶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말속에는 끊임없는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무의식이 있었다. 보살핌에 대한 상대의 통제가 있었다. 마치 목동이 양을 몰 때 부는 휘파람 소리처럼 말이다.


말이 많은 그녀는 고팠다. 원하는 만큼 채우기 위해 과도하게 살았다. 삶의 주도권을 침범하기도 했다.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마음의 허함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외로움은 그녀를 느슨하게 한다. 힘으로 조여진 그녀의 방어막이 외로움으로 인해 조금씩 상대와 자신을 보게 한다. "그렇지"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쉼표가 붙는다.


어찌 그녀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다만 그녀는 말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드는 외로움은 독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자연스럽게 절제하게 하는 약이기도 하다. 그 약이 너무 강해 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벗어나는 믿음이다. 상대도 세상의 중심이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다는 것을 벗어나는 믿음이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외로움에 빠지지 않는 해독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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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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