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마음의 신호들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

by 김혜신

"야, 자꾸 오줌 쌀래?"

벌써 며칠째 마루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보니 불만을 표시하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군데군데 오줌 자국이 보인다. 아마도 산책을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 같다. 10살이 넘은 노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애완견 아롱이는 잘 걷는다. 5km는 거뜬하게 걷는 것을 보면 집에서 조용히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지나가는 강아지는 물론 날아다니는 새만 보면 정신없이 짖는 강아지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렇게 우린 일주일에 3~4번은 긴 산책을 하는 편이다.

말을 할 수 없는 동물이지만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꼭 안아주면 두 발로 내 손을 감싼다. 쓰다듬어 주면 예쁜 눈을 깜박인다. 하루 종일 떨어졌다 다시 만나면 깡충깡충 뛰면서 반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큰 힐링이 된다.


사람은 의사 표현에 행동 외에 말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글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유익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때론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어긋날 때가 있다. 원하는 것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는 말이 아닌 작은 행동으로 표현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상대의 숨겨진 마음이 말이 아닌 작은 신호로 발견될 때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일 경우도 있다.


나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함을 알아차린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착하기 때문에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잘 따랐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욕구를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는 것이 익숙했고 잘 표현하지 않아 대체로 듣는 편이었다. 소리 높여 말하는 편이 아니었고 원하는 것을 잘 말하지 않았다. "괜찮아" "아무거나"라는 말 외에 "yes"라는 말이 아니라는 말보다 훨씬 익숙했다. 하지만 마음보다 순응적인 말이 먼저 나가는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혼자 하는 것을 즐겨했다. 상대를 맞춰줄 필요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런 20대를 지나 엄마가 되어 자녀를 기르다 보니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큰 아이는 늘 한마디를 더하곤 했었다. 순응적인 내 모습과는 정 반대의 아이가 밝고 예쁘기도 했지만 다루기가 버거웠다. 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못 마땅한 엄마였다. 반대로 둘째는 순응적이었다. 얌전했고 잘 따라오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보면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올라 말하지 않는 아이의 욕구를 대신 많이 충족시켜 준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아무거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엄마는 직감적으로 알았고'괜찮아'의 다양한 의미도 나는 알았다. 그렇게 아이의 욕구와 상관없는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나는 지혜롭지 못한 엄마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지지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그것을 대신해 준다면 그만큼 자신의 잠재력 발휘가 안된다. 코칭에서는 고객의 표현지원이라는 것이 있다.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말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코치는 질문하며 듣는다. 답을 말하거나 판단을 하지 않는다. 고객이 스스로 말하며 깨닫게 한다. 무심코 반복되는 단어와 표현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욕구나 감정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 과정은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스스로 찾기 때문이다. 자신이 찾아가는 힘이 생기고 변화에 대한 의지도 높아진다. 그렇게 스스로 표현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강요로 표현하기보다는 "나는 ~하기에 -해"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상황은 명료해진다. 서로에 대한 판단이 감정 상하게 하기 전에 상대에 대한 이해와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표현이 어려서부터 잘 연습이 되어 있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아도 좋으련만 우리는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마음과 말은 의도와 다르게 표현이 되고 때론 말하지 않고 감정을 누른다.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느낌으로 상대의 심중을 가늠할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무수한 신호들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와 상황에 따라 다른 해석이 얹어진다. 좋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말과 마음이 섞여서 사용된다. 그러기에 잘 알아듣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관계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경우가 많다. 관계가 어려워 말 대신 신호로 표현한다. 보이지 않는 신호는 동물의 의사표현보다 발견하기가 어렵다. 맥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흐름 속에 상대의 무언의 표현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많은 말로 피곤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당한 자기표현으로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시작점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는 표현을 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갈 것이다. "나는 ~하게 느껴져. 나는 ~부분은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야"라는 표현은 상대에 대한 다른 견해와 관점을 동등한 선상에서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라 생각이 든다.

마음의 신호를 말로 잘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이 든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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