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신 Nov 21. 2024

밥 줘에 짜증 나는 이유는

소통은 내용뿐만 아니라 관계의 무게가 크다

 가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발끈하는 모습을 느낄 때가 있다.

말의 내용은 단순한데 그 말에 화가 나고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이유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도 문제가 있는지를 말이다.


 자기 조절력만큼 대인관계 능력은 회복탄력성에서 중요하다. 자신의 확장이 타인이고 자신에 대한 시선은 같은 시선으로 타인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는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대인 관계능력에는 공감력, 자아확장력 그리고 소통능력이 있다.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는 대화기술인 소통 능력은 관계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이 있다. 소통의 communication은 공동체 community, 공산주의 communism, 상식 common sense, 성찬식 communion과 같은 맥락으로 사용된다. 공통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communication은 내용뿐만 아니라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늘 누군가와 연관되어 살아간다. 직장과 집,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싫든 좋든 서로의 이어진 관계로 소통을 하며 생활한다. 이 소통은 메시지의 상호작용도 있지만 서로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차지하고 있다. 말로 하는 직접적 소통 외에 이메일, 문자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우리는 먼저 상대에 대한 존중, 배려, 이해라는 부분을 느낀다. 또 내용 전달에 비치는 관계의 의미가 이해타산이나, 무시, 거래, 상하관계 종속의 의미가 비칠 때면 같은 말이라도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언어라는 직접적인 표현에 담긴 감정과 느낌 속에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한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온 남편이 부인에게 '밥 줘'라고 던진 말에 발끈하는 부인이 있다. 늘 무관심한 남편의 태도에서 나온 한 마디에 자신의 존재를 밥 해주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그에게 화가 난 것이다. 반면에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보호받고 대접받고 싶은 마음에 꺼낸 그 한마디에 화를 내는 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온 자신에게 화를 내를 부인의 맘을 할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에서 온 경험과 관점이 각 자신의 입장만을 부각할 때가 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이해된다. 한두 마디로만 표현되는 말속에서는 전체 맥락의 감정과 생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전제가 있다.


 결국 내 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물어봐야 한다. 생각의 결과인 행동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놓치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그의 가치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맞다 틀리다로 이어지는 줄다리기는 결국의 한쪽에게만 힘을 실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은 기록 경기도 격투기 경기도 아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팀플레이이다.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고 지치고 힘들 때면 격려와 믿음으로 손 잡아줘야 한다. 무엇보다 사랑으로 감싸줘야 한다. 한 손이 다른 손을 먼저 잡아주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진리는 나와 상대를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한다.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나마스테,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학문과 친구관계에 대해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이라 전하는 논어의 가르침은 긍정성을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긍정, 상대에 대한 긍정이 가져오는 확장력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가게 한다. 그 여유와 사랑이 말 뒤에 숨어 있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나의 감정만을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도 수용하게 된다. 그 인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내용만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결국 관계를 알라 달라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것에 한치 양보도 없어지고 있는 삶 속에서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해 보면 어떨까


자신과 이뤄지는 내면소통과 상대와 이뤄지는 소통이 긍정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가끔 삐그덕할지라도 다시 인식하고 수용하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 성장을 지지한다.

작가의 이전글 경청이 잘 되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