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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Nov 16. 2024

경청이 잘 되시나요

진정한 경청의 시작은 나 자신으로 부터 시작된다.

이번주 나의 핵심어는 경청이다.

경청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그러지 못한 것 같았다.

삶으로 온전히 경청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함을 보기 때문이다.


경청이란 무엇일까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상대의 의도나 욕구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말에 대한 반응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상대의 감정, 느낌을 느끼고 그의 욕구가 무엇일까 듣는 것이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반영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 감정, 구, 의도를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경청이다.


경청이 잘 안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말을 들을 때 상대의 감정 느낌보다 그의 의도와 욕구에 더 집중하는 것이 깨달아진다. 그것에 나의 생각과 판단이 더해져 결정이 내려짐을 본다.  상대에 대해 이렇구나 저렇구나라는 판단의 틀을 씌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사람은 말이라는 도구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생각, 감정, 느낌 그리고 욕구를 표현하지만 때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자신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표현이 옳다고 강요하는 이들도 있다. 말의 표현보다는 행동으로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참 많은 유형의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오늘 점심 뭘 먹고 싶어?'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자신은 어떤 대답을 하는가?

'너는 뭘 먹고 싶은데?'

'네가 사주는 거야?'

'아무거나 먹어'

'나는 ~가 먹고 싶어, 너는?'

'~ 먹자!'


짧은 대화이지만 그 말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자신의 욕구는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게 맞춰주려는 이가 있다. 이러함이 익숙해지니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누르기 시작하니 정말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원하는 유형도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상대에 의지하려는 모습 깊은 곳에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하다. 자신의 잠재력을 긍정하지 않는다.

또한 매 순간 주어진 삶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유형도 있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도 이제는 지치고 자신의 존재는 더 알 수 없기에 매 순간을 힘들어한다. 먹는 것의 기쁨, 만남의 기쁨, 살아가는 것의 잔잔한 기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욕구를 요구할 수도 있고 상대의 욕구도 확인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모습에는 자신의 위치와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내비게이션이 작동한다. 그 중간의 적절함을 찾으려는 의지가 보인다.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이도 있다. 상대를 이끄는 강한 추진력은 때론 상대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의 이성적인 말은 때론 상대의 감성을 잘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듣는다는 경청은 그 중심이 나 자신이 아닌 상대에 있다.

듣는 이는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판단, 결정, 그리고 충고나 조언 대신에 상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하려는 모습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는 자신의 걸러지지 않는 감정의 잔여물이 말로 표현되어 가는 과정을 누군가가 진실되게 들어주는 데서 치유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앎 뒤에는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다. 알지만 그렇게 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왜 경청이 힘들까?


내 안에는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자신이 있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지만 충분한 경청을 받고 싶어한다.

스스로 칭찬과 감사의 기도를 하는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이해와 공감을 충분히 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

진정한 공감말이다.

상대의 충고나, 조언, 판단, 결정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때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함을 느낀다.

아마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안다고 하는 어설픔이 주는 상처가 상대에게는 독이 되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상대의 진심 어린 눈 마주침의 모습에서 진심이 나온다.

나에 대한 이해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질문이 마음의 잠겨진 빚장을 열게 한다.

허물어진 담장을 스스로 고치게도 한다.


경청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서로의 마음으로 들어줄 때 높게 세워진 벽도 장애가 되지 않게 된다.


경청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내 삶에서 풍성하게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니

진정한 경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지도 깨달아진다.

이렇게 스스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이 한 단계 올라옴이 느껴진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그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인지 깨달아진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경청하기를 먼저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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