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도, 베트남 학교도, 국제학교도 아닌 프랑스 학교라니?
“아이가 어느 학교에 다니나요?” 라는 질문과 대답에서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꽤나 방대합니다.
베트남의 외국인 자녀를 대상으로 한 자녀교육의 선택지는 연간 학비 기준 저에서 고로 다음과 같습니다.
로컬 공립학교 < 로컬 사립학교(로컬 바이링구얼 학교) < 각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제학교 (한국 국제학교, 일본국제학교, 프랑스학교, 독일학교 등등 < 로컬 국제학교 < 해외 국제학교
드물지만 어떤 분들은 장기 이주를 계획하며 자녀를 처음부터 베트남 로컬 공립학교에 진학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베트남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배워 사회에 잘 흡수되게 하기에는 가장 좋은 선택지이지만, 베트남의 공립학교는 저렴한 대신 분위기가 우리나라의 7-80년대와 흡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베트남 부모들의 교육열은 엄청나서, 대도시의 가정에서는 월 수입의 50% 이상을 사교육에 쓰는 집들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학교에서는 체벌이 자행되고, 교과서를 외우거나 하는 시험을 자주 보며, 시험 결과나 성적은 교실 게시판에 공지 됩니다. 어떻게 보면 철저히 성적순으로 아이들이 일찍부터 경쟁 사회에 내몰리게 되지요.
공립학교는 아직까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기 때문에 이를 원하지 않는 현지인 부모들도 형편만 따라준다면 로컬 사립학교, 로컬 바이링구얼 학교 (대표적으로 빈스쿨이나 듀이 스쿨, BVIS 등) 을 보냅니다. 거의 영어 50% 베트남어 50%를 공부하는 커리큘럼에, 원한다면 IB 입시 트랙을 학교에서 준비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해외 대학 진학 준비에 있어서도 일반 공립학교 보다는 다소 유리합니다.
국제학교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학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노이 기준으로 오랜 기간 부모들의 신뢰를 얻은 국제학교들은 최소 연간 학비가 2만 5천불에서 4만불 사이입니다. 한화로 연간 3천만원에서 4천4백만원 가까이 드는 비용을 자비로 감당할 학부모는 흔치 않겠지요. 부모의 직장에서 학비를 보조해주는 경우, 자비 부담이 가능할 정도로 집안이 부유할 경우, 혹은 국제학교 교직원 자녀일 경우 국제학교에 갑니다.
연간 학비가 2만불 미만인 학교들은 보통 바이링구얼 (이중언어) 학교인데요, 이 학교들은 국제학교트랙과 이중언어 트랙 두 코스를 만들어 놓고 두 개의 학비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평균적으로 2021-2022년 학사년도 기준으로 이중언어 국제학교의 학비는 연간 1만5천불-2만5천불 사이입니다.
사실상 자녀 교육과 학교 진학에 돈을 빼놓고는 딱히 고민하거나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모두들 가성비 좋되,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합니다. 특히 베트남 현지 학부모의 경우, 그런 점에서 학비가 비교적 저렴하면서 베트남 공립학교나 로컬 사립학교 보다 국제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프랑스학교라고 믿습니다.
프랑스 학교는 해외에 거주하는 프랑스 자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 국제학교와 동일한 입장이지요. 따라서 입학생 선발 순위는 자국민 > 자국민 자녀 > 자국 교육 시스템에서 공부했던 학생 > 부모나 조부모 형제가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서 수학했던 학생 > 현지인 (베트남 기준으로는 베트남인) > 그리고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국인 입니다.
때문에 베트남의 프랑스 학교는, 특히 하노이와 호치민 두 곳 중 하노이의 프랑스 학교는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제 자녀의 유치원 친구들 중에는 36개월이 되는 해 부터 매년 지원해서 3-4년 연속 고배를 마시고, 3-4년차에 합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3년 내내 지원했고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아도 떨어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선발 기준은 외부적으로는 위와 같이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지만, 스피킹이 자유롭게 되는 아이도 탈락하는 것을 목격한터라 실제 합격 기준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노이 프랑스 학교에는 2021-2022년 학사년도 기준 전교생이 약 1,100여명 있습니다. 이 중 한국인은 약 10명이 재학중입니다. 이 중 형제 자매가 재학중인 경우도 있으므로, 가구수로 따지면 하노이 프랑스학교에 재학중인 가구 수는 약 3-5가구가 되겠죠.
저희 부부는 프랑스어를 잘 하지 못합니다. 남편은 고등학교때 프랑스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회화만 할 줄 알고 다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스위스에 인턴을 다녀온 후 프랑스에 혼자 수개월간 여행을 한 경험은 있으나 프랑스어 수준은 만년 유아 수준입니다. 부모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한국 아이를 프랑스 학교에 진학시키겠다고 마음 먹었을까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저는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 커리큘럼이 일정부분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학교에는 월반과 유급이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경쟁이 없지만 학년이 끝나면 월반 혹은 유급하는 학생들이 생깁니다. 학교에서는 “유급하는 이유는 네 스스로가 해야 할 만큼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정의합니다. 경쟁자는 남이 아닌 내가 되는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매 학년 수학해야 하는 최소 이수 과정의 평가기준에서 모든 면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평상시에 시험은 없지만 총 3학기 과정에서 매 학기 성적표가 나오며, 평가는 사실상 매 주 이루어집니다. 수행평가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학생이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과 행동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것이죠. 일상 생활의 학습 태도와 수학능력, 발전 정도, 그리고 과제 수행 능력과 부지불식간에 보는 퀴즈나 받아쓰기, 에세이 등의 쪽지시험 내용이 전부 매일같이 반영이 되는거나 마찬가지인겁니다.
아이가 공부해야 하는 양은 생각보다 방대합니다. 숙제의 양도 일반 국제학교 대비 2배 이상 많습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 현지인 학생들의 경우 만약 부모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면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가 완벽하게 수학과정을 챙겨줄 수 없으므로 발을 들여놓기 전 부터 11년 과정 졸업할 때 까지 프랑스인 혹은 프랑스어를 하는 선생에게 아이를 매일 보내겠다고 다짐을 하고 보냈습니다.
또한 프랑스학교에서는 미술, 예술, 시, 철학 등의 분야에 할애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자국 문화 (문학, 예술, 철학 등)에 자부심이 어마무시한 프랑스는 유치원 때 부터 유명 작가 및 예술가등의 화풍을 따라그리는 숙제를 냅니다. 유치원때는 선그리기 부터 기초 미술 교육을 공립학교에서 시킵니다. 점 찍기, 선 그리기, 선형 그리기, 모자이크 만들기 등 회화 및 기하학 등의 기본이 되는 기초공사를 수년간 하면서 유명 예술가의 화풍을 자기 마음대로 따라 그리다 보면 어느샌가 아이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리고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동시 낭송을 녹화 및 녹음하는 과제는 매 주 있으며, 동화책 및 그림책도 매 주 최소 2-5권씩 읽게 하고, 챌린지를 주어 친구들과 경쟁하며 독해문제를 풀게 합니다. 매 년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아이는 수상을 하지요. 동화책이나 그림책 주인공을 토대로 그림/조형물 만들기나 스토리 만들기 과제가 이어집니다.
어릴때 부터 자연스럽게 미술, 음악, 철학, 문학 등에 노출되게 해서 비평적인 시각을 갖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시험 (바깔로레아) 에서 당대 시사이슈 혹은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철학가의 사상을 합쳐 자신만의 에세이를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비록 아이는 이제 8살이 되었지만 어릴 때 부터 음악과 미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중에 어떤 전공을 선택하게 되든 평상시에 수학하는 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예술, 문학, 철학에 많이 노출되다 보면 아이가 혹시라도 나중에 건축, 미술, 디자인 등을 전공하고 싶게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하노이로 이사온 직후, 아이를 프랑스-영어 바이링구얼 유치원에 보내는 모험을 했습니다. 제 직업상 한국어보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아이는 저와 함께 태어나면서 부터 자연스럽게 엉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습니다. 영어는 이미 유창한 상태에서 당연히 프랑스어에 노출된다면 거부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은 2-3달이라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유치원에 보냈을 때는 만5세였습니다. 한국나이로는 7세였죠. 원장과의 상담을 통해 아이는 만4세반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어를 하는 날은 울고 불고 영어를 하는 날은 벌떡일어나서 가는 날이 수 개월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3개월쯤 지나니까 아이가 조금씩 프랑스어에 맘을 열더라구요. 저도 카드를 만들고 매 주 익힐 단어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제가 예습 복습 하며 아이에게 반복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매 주 토요일에는 프랑스어로 초등 1학년 입시시험 준비 및 특활 활동을 하는 6시간 종일반 개인과외에 보냈습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베트남 학부모가 소개해준 곳이었습니다. 겁이 많은 아이는 그 곳에 가는것도 극도로 거부해서 처음 두 달은 제가 6시간 내내 보조교사처럼 함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적응을 했지요.
저희 부부는 아이를 딱 1년만 시켜보고 너무 거부반응이 크거나 고통스러워 한다면 영어권 국제학교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영어권 국제학교에 입학 시험을 봐서 합격하고, 입학금 800달러도 미리 지불을 했습니다. (입학금은 환불이 불가합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 하고 싫어한다면 굳이 우리 생각에 아이를 가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계속 적응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