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체험기
얼마 전에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비가 내리면 춥고 다시 해가 비추면 땀이 나는 간절기가 이상하게 길다 싶었다. 이내 그칠 줄 알았던 둘째 아이 기침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다. 가던 곳이 아닌 다른 소아과에 갔다. 조금은 더 걸어야 했지만 꼼꼼하게 진료를 본다는 평이 잦은 곳이었다.
“여기 이름이랑 적으세요.”
“선생님, 저희 초진인데요.”
“네? 여기가 처음이라고요?” (동네 소아과라서 단골(?)이 많음)
“네, 오늘 처음 와요.”
“그럼 여기에 적어주세요.” 하며 초진 환자가 적는 서류를 건넨다.
대기 환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꽤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 이름이 불렸다.
“민서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짧고 단정한 머리의 여자 선생님 한 분이 깐깐한 눈매로 아이를 맞이했다.
선생님은 증상을 물었다.
“어떤 증상이죠?”
“기침이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잘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차도가 없는 것 같아서요.”
“기침이 어때요?”
“네?”
“마른기침인지, 아니면 가래가 낀 기침인가요?
“가래가 끓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언제 기침을 많이 하나요?”
“네?”
“자고 일어났을 때나 낮시간 동안 혹은 자기 전에, 언제 많이 해요?”
언제 하더라…
“콧물은 누런색인가요?”
“많이 흘리지는 않는데 누렇지는 않았어요”
“열이 나던가요?”
“아니요, 열이 나서 힘들어하지는 않았어요.”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더니 선생님은 아이의 목, 코, 귀를 천천히 살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한 당연한 문진이지만 자세히 물어보니 순간 당황되었다. 아이의 기침소리가 들리면 기침인가 보다 했지 이게 마른기침인지 가래가 섞인 기침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여타 소아과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어쩐지 낯설면서 새로운 기분이었다. 뭐지, 이 느낌?
3일 치 약을 받고 병원을 나섰다. 며칠 후면 낫겠지 싶었다.
시간은 금세 흘렀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기침을 하고 있다. 괜찮았던 첫째마저 콜록콜록 기침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지난번에 다녀가고 아직 기침이 안 떨어져서요.”
“지난번이라면 3주 전을 얘기하는 겁니까?”
“아… 네.”
“3일 뒤에 오라고 했더니 3주 뒤에 오면 어쩌죠? 아이가 병이 진행되는 단계인지 이제 나아지는 단계인지 보려면 기간을 두고 살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와서 잠깐 본다고 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럴 거면 왜 또 온 거예요?”
(구구절절 맞는 얘기 ㅠ.ㅠ)
“네 선생님… 보통 일주일 지나면 좋아졌는데 여전히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혹여 제가 뭘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해서요.”
선생님은 인상을 살짝 풀고는 아이에게 다가가더니 청진기로 아이가 호흡하는 소리, 귀, 눈, 코 입을 재차 꼼꼼히 살핀다.
이번엔 첫째 차례.
“학교나 집에서 에어컨을 아직 틀고 있니?”
“교실에서 에어컨 바람이 바로 오는 자리에 앉아요. 선풍기 바람도 바로 쬐요.”
“그렇게 말하지만 말고 방법을 찾아야지.”
그 말을 듣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맞아,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어.’
선생님은 아이들을 내보낸 후 나에게 말씀하셨다.
“따뜻한 물, 40도 정도 되는 물을 받아서 그 김을 아이가 충분히 들여 마실 수 있게 하세요. 엄마가 의지가 있다면 아침저녁으로 하면 좋아요.”
“네,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3일 뒤에 오세요. 경과를 봐야 하니까요.”
“네, 선생님.”
“해열제 있나요?”
“네, 있어요.”
“뭐 있어요?”
“맥시OO, 타이OO 다 있어요.” (엄마들이라면 다 아는 해열제)
“그럼 해열제는 따로 처방 안 할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다음 날, 아침.
막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지 싶었더니 어제 다녀간 소아과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고개가 갸우뚱했다.
“네 여보세요.”
“은서, 민서 엄마죠?”
“네 맞습니다.”
“아이들 간밤에 잘 잤나요? 기침은요? 열났어요?”
“아, 네네. 괜찮아요. 열은 없고 잘 잤어요.”
“김 쏘이는 거 해보셨어요.”
“네, 아이들이 그래도 곧잘 하더라고요.”
“그거 아침저녁으로 하면 좋아요. 우리 환자 중에 중학생 아이가 있는데 걔는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고 다니면서 해요.”
“아, 그런 방법도 있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엄마가 고생이지.”
출근길 내내 잠깐의 전화가 계속 떠올랐다. 뭐지, 이 기분?
3일 뒤 다시 소아과를 찾았다.
아이의 기침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아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얼마 약을 더 처방하곤 따뜻한 김 쐬기를 꾸준히 하라고 당부했다.
마찬가지로 다음날 아침에도 소아과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밤새 열은 없었는지 기침 상태는 어떠한지 물었다.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분명 그렇게 혼났는데, 아이가 아프면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