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이런 글을 썼네..
드물게 예전에 쓴 일기를 꺼내보면 빼놓지 않고 다시금 읽게 되는 대목이 있다.
그 남자와 헤어졌을 때 내가 맛보았던 깊은 좌절감, 내가 믿고 의지하고 옮다고 여기는 내 삶의 큰 지축이 무너져 내린 상실감. 누가 볼세라 굴다리 밑에 차를 세워두고 펑펑 울었던 기억. 한동안 공허함을 가득 안은 채로 생활했던 그 시절들. 조용하고 쓸쓸했던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나는 연극 한 편에 참여했고 글쓰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연극 공연날, 마지막 무대에서 내가 꺼냈던 이야기를 여전히 기억한다. 나는 다시금 관객 앞에서 펑펑 울었지만 굴다리 아래에서와는 달랐다. 사람들 앞에서 젊고 어리석은 나였다며 가슴을 치며 반성했고 오랜 침묵 후 스스로를 보듬었다. 그리고 그렇게 20대를 떠나보냈다. 무대에서의 눈물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고 가만히 되짚어 본다.
내가 스물아홉 해의 삶을 반추하던 그즈음 이 남자를 만났다. 이제 막 서울에 상경해 서툴렀던 이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했고 시골 뙤약볕 아래에서 자라 튼튼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혹시라도 다치치 않을지 언제나 염려되는 이 여린 아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쪼르르 내게 달려와 내 품에 얼굴을 묻는 아이. 떼를 쓰며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내디가도 돌아서서는 어느새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 이 아이는 나를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고 있다.
예수 탄생 전후로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나눈다면 엄마에게는 아이의 출산 전후가 그런 셈일 것이다. 그전까지의 삶에서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새로운 잣대가 되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휴일에 어디를 놀러 갈 때도 혹은 사소한 것을 선택할 때도 언제나 제일 먼저 아이를 염두하게 된다.
출산휴가 3개월이 지나고 다시 직장에 나오면서부터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에 젖을 물리기가 무섭게 출근하고 미팅과 미팅사이에 수유실에서 유축을 했다. 식사 때는 밥 한 공기씩 거뜬히 비워냈지만 어쩐지 살은 점점 빠져갔다.
신데렐라처럼 퇴근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녹초가 된 엄마와 교대했다. 어쩌다 회식이 생겨 늦게 집에 가면 지칠 대로 지친 엄마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쓰려졌다. 모두의 정성 덕분에 아이는 크게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돌이 되었다. 그때쯤 되니 조금은 편해졌다. 아이는 날로 성장해서 걷는가 싶더니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맘마'에서 '엄마'로 '함니'에서 '할머니'로 어느새 한 마디씩, 한 문장씩 입을 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엔가 아이는 출근하는 나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은서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저녁때 만나서 또 엄마랑 신나게 놀자!" 하고 아이를 달래고는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어쩐지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해가 지고 나서야 다시 얼굴을 보는 이 아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주말에는 "엄마 일어나아. 엄마 일어나아" 소리를 몇 차례 들어야 마지못해 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들이 종종 생각이 난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이럴 때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어린 나는 이런 마음이었지 하고 이제는 양측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와 아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나의 엄마는 전업주부였다는 점이고 내 딸의 엄마는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아침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충분히 신경 써주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사주지 않자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엘 갔다. 그리고 집에 오니 엄마가 내가 원하는 걸 사다 놓으실 정도였다. ㅠ.ㅠ
지금 나는 일주일 중 드물게 한번 아침을 차린다. 빵이나 부침개처럼 되도록 간편한 것으로. 그리고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는 것은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남편의 몫이다. 식탁에 음식을 놓기가 무섭게 나는 집을 나선다. 이것이 엄마가 된 내가 매일 아침 맞이하는 일상이다.
내가 과연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단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매체와 책, 그리고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틀린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고 그래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방식도 달라진 것이다.라고 안심시킨다.
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인데 왜 나의 아이를 보면, 늦은 밤 곤히 자고 있는 어린것을 보면 마음 한켠이 시릴까.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 2015년 8월의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