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 의존?
우울증 사실을 커밍아웃했을 때 감사하게도 편견이 담긴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딱 하나, 조금 거슬렸던 말이 있다.
"약에 너무 의존하지는 마."
스트레스에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걸로 모자라 인지왜곡에 잠식당한 뇌가 예민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걸 안다. 남들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말이지만 그게 유독 아프게 가슴을 찌르는 경우가 있다. 친구는 날 걱정하는 마음에 건넨 말이었겠지만, 당시 내가 약에 의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기에 괜히 찔리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게 물이 필수적이듯, 나에겐 1, 2주에 한 번 받아오는 약이 그랬다. 생명수를 마시듯 하루 두 번씩 간절한 마음으로 알약들을 삼켰다.
그래, 사실 의존을 넘어 약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약 몇 알은 내게 목숨줄이었다. 약을 몇 번 빼먹을 시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도록 강한 자살 사고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죽고 싶어서 심장이 아리고, 죽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어도 괴로워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기밖에 못했다.
그러나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훨씬 많은 증상들이 있기 때문에 약을 복용한다고 평온해지지는 않았다. 고통이 100이라면 75로 줄어드는 정도였다.
현재는 약을 며칠 빼먹어도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증상이 호전됐기 때문이다. 다만 금단증상은 있다. 심리적으로 약에 의존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약을 복용함으로써 바뀐 뇌의 상태가 낮아진 약물 농도와 맞지 않아서 생긴다. 나의 경우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고, 이명이 들리는 등의 증상이 있다.
그러나 정신과 약물은 특히나 오랜 기간 일정하게 복용해야 한다. 정신질환은 재발이 잦고 치료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강박증은 보통 2년 이상이 걸리고, 우울증은 관해(증상이 거의 또는 완전히 나아지는 것) 이후 추가로 6개월 이상 약을 복용해야 한다. 또한, 우울증, 조울증이 수차례 재발한 경우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금단증상을 방지하려면 용량을 천천히 줄이거나, 의존성이 낮지만 비슷한 성분의 약으로 바꿔서 다시 용량을 낮춰가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상냥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가령, “너는 이렇게 밝은데 진짜 우울증이 있는 거야?”) 그러나 ‘옳지 못한’ 조언을 듣고 있노라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조언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