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식> - 임서호 감독
신앙에 고민이 많던 소이는 단식원에서 닷새를 보낸 후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심을 인정받는 독실한 신자가 된다. 소이는 하루를 굶은 후 잠에서 일어나는 것도,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힘에 부쳐 골골대더니 금세 힘을 얻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단식원 앞을 쓸고 힘차게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교회 집사는 드디어 성령이 깃들었다며 소이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탄식한다. 단숨에 바뀐 소이의 종교 생활을 보면 소이는 정말 주님을 영접한 것만 같다. 소이에게 들어온 건 성령이 아니라 떡볶이였으며 소이의 행동을 바꾼 건 신앙이 아니라 탄수화물이었을 뿐.
소이는 수강생 중 한 명이 밤에 몰래 나가 크림빵을 사먹는 것을 목격한 뒤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단식 헌금을 넣다가 몰래 초콜릿 한 알을 입에 넣는다. 몰래 먹는다는 스릴과 긴 공복 후에 퍼지는 단 맛에 소이는 두 손을 꼭 모은다. 꼭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소이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는 진짜 기도를 드릴 때보다도 진실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소이에게 진정 기쁨과 활력을 준 건 고행을 통한 초월적 체험이 아니라 정상 수치를 찾은 혈당이었다.
주님은 떡볶이에, 크림빵에, 그리고 초콜릿에 계셨다. 목사의 말대로 신앙심을 깊게 하는 것이 주님의 영접이라면, 소이는 몰래 먹는 음식들에서 주님을 영접한 게 맞다. 의심이 많은 신자를 기도하게 하고, 다른 성도들을 이끌게 하고, 성전을 쓸고 닦게 하는 것이 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소이를 바꿔놓은 것은 몰래 먹은 음식들에 더해 사람들의 기대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켰을 때의 만족감과 닷새를 굶는 고행을 대견해하는 사람의 인정이었다.
분명 소이의 신앙심은 가식이다. 하지만 이 가식은 소이 한 사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몰래 음식을 먹는 ‘요령’은 분명 대를 이어 온 관례다. 그 단식원에는 단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지 모름에도, 목사는 이 거짓된 단식의 효과를 들어 수강생들을 단식원으로 이끈다. 소이가 거절하지 못해 단식원에 갔다면 재범은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단식원에 오게 된 걸까? 소이를 포함한 이전 수강생들과는 달리 재범은 정말로 단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소이와 미라가 거짓된 단식으로 신앙심을 꾸며냈다면 나래나 집사, 전도사의 신앙은 얼마나 진실된 걸까? 소이 한 사람의 경험에서 시작한 의심은 들불처럼 퍼진다.
물도 기도하고 먹으면 달아요. 소이는 금방 초콜릿을 먹고선 단식을 통해 신앙을 얻게 된 듯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 몰래 음식을 먹는 것을 들킨 소이와 거짓된 신앙을 목격한 재범은 집사나 목사, 전도사의 말을 따르는 대신 드디어 질문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잘 포장된 신체적 만족감이나 공동체 내의 인정과 별개인 신앙의 실체가 있을지, 그리고 떡볶이나 초콜릿 밖에도 주님이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