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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서영 May 06. 2022

멀티버스, 은퇴한 히어로들을 내버려 둬

멀티버스가 과거의 히어로들에게 한 짓




간보기는 끝났다. <스파이더맨:  웨이 >에서의 멀티버스가 역대 스파이더맨들을 추억하는 기념품이자 맛보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본격적으로 멀티버스의 서막을 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개봉과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무대는 ‘드넓은 우주에서 ‘상상할  있는 모든 버전의 우주들 확장되었다. 이러한 가능성의 확장은 MCU 미래 뿐만 아니라,  세계관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에게도 분명 영향이 있다.


멀티버스가 MCU에게 가져다줄 모든 변화들을 맞닥뜨리기 전에, 과거로 눈을 돌려 우리가 사랑했던 히어로들을 떠올려보자.


멀티버스는 이들에게 무슨 짓을  걸까?


마블에게 멀티버스가 필요했던 이유


아쉽게도 스크린에서의 히어로에겐 수명이 있다. 기한을 다하면 새로운 히어로를 도입해야 한다. 이 바톤 터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명의 히어로에게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외계에서 온 힘으로 에너지 블라스트를 쏘는 히어로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개중에도 최강으로 꼽히는 그가 인피니티 워에 참여했다면 그 모든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캡틴 마블은 그냥 우주를 지키느라 바빴다는 변명 밖에 할 수 없었다. 솔로 영화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문제이지만, 똑같이 강력한 설정들을 가진 다른 히어로들과 같은 세계관에서, 그것도 타임라인을 정교히 계산하여 공존하려면 이런 설정 구멍은 불가피하다. ‘이터널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캐릭터들은 모두 설정 충돌의 문제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대단했던’ 히어로의 빈 자리를 ‘더 대단한’ 히어로들로 메꿀 때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멀티버스이다. 계속해서 확장을 시도하는 MCU에게 아주 유용한 장치이다.


멀티버스가 필요한 또다른 이유는 병합의 문제이다. 프로페서 X의 출연을 보니 이제 세계관에 폭스 캐릭터들을 흡수하려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들의 영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멀티버스의 역할이다. 엔드게임 이후 MCU는 점차 코믹스화 되어가고 있다. 세계관의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기보다는 캐릭터들을 한데 모으는 데 집중한다. 아마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나 친숙한 캐릭터의 편입으로 관객들을 놀래키는 데 만족을 얻는 모양이다. 멀티버스를 이용하여 판타스틱 4와 엑스맨을 편입한 것은 매우 편리한 선택이었으나, 장기적으로 써먹을 수는 없다. 다음에 등장할 캐릭터도 이런 식이라면 세 편째 똑같은 레퍼토리를 사용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솔직해지자면, 나는 적어도 이 부분에 한해서는 불평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인물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은 개연성을 위해 거부하기엔 너무 매력적이다. 마냥 태클을 걸기엔 사실 나도 베놈이랑 스파이더맨, 데드풀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보고 싶다..)


유일함의 상실


멀티버스 도입에서 예상되는 가장 명백한 문제점은 각 캐릭터가 ‘유일함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유일하지 않은 존재로 만듦으로써 멀티버스는 캐릭터의 상품 가치를 훼손한다. 우리가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들 각자의 개성 때문이지 그들이 어벤져스에 속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솔로무비를 통해 목격한 그들의 계기, 신념,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식, 그들 각자의 삶과 매력이었고, 팀업 무비는 그것의 연장선으로 출발했다. 이런 개인적 요소들은 멀티버스 앞에서 위태로워진다.


이번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완수해야 했던 일은 수많은 자신 중 우리가 그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꽁지머리 스트레인지와는 달리 우리의 스티븐은 차베즈를 희생시키지 않고, 흑마법을 쓰다가 타락하지도 않았다. 영화를 통해 그는 자신이 더 정의롭고 동료애가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패션센스도 훨씬 낫다는 것을 보여줬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렇게 새로운 세계관 안에서의 자신을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과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멀티버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함께할 다른 캐릭터들도 새로운 세계관을 활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세대의 히어로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멀티버스 안에서 아이언맨은 무수히 많은 우주의 무수한 다른 토니 스타크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며, 블랙 위도우,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우리가 사랑했던 다른 히어로들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해갈 캐릭터들과는 달리 이들은 멀티버스에 의해 캐릭터의 유일함을 뺏겼다. ‘일루미나티’는 이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부분이다. 정말 서운한 장면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의로운 스티브 로저스, 정의를 위해 히어로의 삶을 선택하고 자유를 위해 동료와의 전쟁도 불사한 그는, 알고 보니 캡틴 페기를 포함해 무수한 비슷한 캐릭터들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뮤턴트들의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치면서도 전쟁을 원하는 매그니토에 맞서 평화를 지킨 닥터 자비에는 어느 우주에서는, 한참 후배 마인드 컨트롤러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왓이프’는 재밌게 볼 수 있지만, 이런 설정을 영화 세계에 끌고 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몇 년에 걸쳐 수 편의 영화들을 통해 몰입하고 응원했던 우리의 영웅들은 새로운 설정의 등장으로 그 위용을 잃었다. 페이즈 1부터 함께한 히어로들이 대거 죽거나 은퇴한 이 시점에서 같은 히어로의 다른 버전들이 무수한 평행우주에 멀쩡히 살아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우상들이 유일하지 않은 존재였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주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희생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죽은 히어로를 처리하는 법


멀티버스 도입에 대해 한층 더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하는 것은, 어설프게 이전 히어로들을 기리려고 하는 시도였다. 한 가지 건의하자면, 죽거나 은퇴한 히어로들의 명대사는 절대 재사용하지 말길 바란다. 그들을 기리거나 팬들에게 어필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 말이 사용된 맥락에서 발생한 감동을 되살릴 수는 없다. 멀티버스가 과거 히어로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레거시를 훼손시키는 일인데다가, 너무나 노골적인 활용으로 대사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또 한 가지를 더 건의할 수 있다면, 그렇게 명대사를 사용해서 기존 히어로에 대한 향수를 잔뜩 불러일으키고 나서는, 그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무기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게 할 생각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길. 이번 영화에서 완다가 말한 위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스티븐이 세상을 구한답시고 비전을 죽인 것은 고귀하고, 자신이 아이 한 명을 희생시키려는 것은 그렇게 나쁘냐던 완다는 그대로 제작사에게 그 말을 돌려주면 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캐릭터를 하차시키고자 죽이는 것은 제작사의 사정이라면서, 흥행을 위해 그들의 일부를 야금야금 꺼내 쓰는 것은 무슨 심보냐고.


이번 영화가 아니라더라도, 히어로를 죽이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아무 영화 캐릭터의 죽음과는 무게가 다르다. 히어로 캐릭터는 관객들이 그들에게 의지하게 만듦으로써 인기를 얻는다. 각본이야 제작사 맘이라고 하지만, 이 상징적인 캐릭터들이 가진 사회적 의미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배우의 계약 문제와 같은 어른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수긍했지만, 스티브 로저스나 토니 스타크, 특히 나타샤 로마노프 같은 기존의 캐릭터들도 그런 죽음(은퇴)으로 퇴장당하는 푸대접을 받으면 안 됐다. 더 나은 결말을 가질 자격이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관객은 극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히어로가 악당과의 싸움에서 힘겹지만 값진 승리를 거두고 세상을 구할 것을 기대한다. 정치적, 시대적 맥락을 제외해도 이들은 여전히 희망과 정의의 상징이고, 관객이 심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들이다. 페이즈 3까지 함께했던 히어로들은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더 나은 결말을 택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 캐릭터들을 죽인 것은 마치 유통기한이 다 된 캐릭터가 새롭게 팔릴 히어로들에게 밀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완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고 해도 친숙한 코스튬을 입은 그들을 보란 듯이 잔인한 방식으로 죽인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멀티버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할 망정 부정적인 인상과 연결시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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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랜차이즈는 처음 인기를 얻게 된 계기를 잃어버릴 때 쇠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원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반지의 제왕’과 ‘호빗’은 절대 망할 일이 없지만, 적극적으로 MCU를 구축해가는 마블에겐 그런 보장이 없다. 마블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MCU를 오래오래 팔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관객을 질리게 하지 않으려면 끝없이 새로운 캐릭터들과 설정들을 주입해야 하고, 멀티버스는 귀찮은 설명 없이 그런 것들을 해낼 수 있는 훌륭한 장치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멀티버스의 등장을 기점으로 MCU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이들은 이전의 히어로들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러나 도전적인 변화가 항상 그렇듯, 변화의 이전과 이후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단순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처럼, <닥터 스트레인지 2: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던) 예전의 마블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다. 새 영화를 보기 위해 소화해야 하는 작품이 끝을 모르고 늘어나는 것은 제작사가 관객들의 충성도를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서운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직 우리가 사랑했던 히어로들을 생산해준 그들을 믿어야 할 것 같다. 다만 그들도 예전의 MCU를 사랑했던 우리들을 저버리지 말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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