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인도는 지금도 아름답다. 여행의 끝.
(맴맴맴~매앰~매앰~)
– 2005년 8월 포항 –
찌는듯한 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21살 훈련병 최인영은 그의 동기들과 함께였다. 점심 식사 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작업이다. 그는 동기들과 보도블럭 위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뽑고 있었다. 그들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세상의 모든 잡초를 원망하며 맨손으로 연신 잡초를 뽑아 재끼었다. 전라도에서 온 동기는 나라의 부름에 순진하게 응답한 죄로 그와 함께 잡초를 뽑으며 이렇게 말했다. “으미, 뜨거 디지겄네!”
– 2017년 5월 인도 –
매미마저 모두 뜨거워 뒈진듯한 조드푸르, 자이푸르에서 출발해 기차를 타고 밤10시가 넘어 도착하였다. 현재 온도 38도, 해가 뜨면 43도. 포항에서 만난 그 동기는 작은 천사가 되어 아시안 몽키의 어깨 위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으미, 뜨거 디지겄네!! 뜨거 디지겄어!!!”
밤이라 조금 무섭지만,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구글맵을 나침반 삼아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혼자가 된 아시안 몽키는 비폭력 간디의 쨉(jab)을 막기 위해 다시 가드(guard)를 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공부는 안하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는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시비를 건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재롱이지만, 낯선 도시의 밤거리에 혼자인지라 모든 것이 위협으로 다가온다. 안 쫀 척, 그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겨우 숙소에 도착한다. 조드푸르에서 묵게 될 이 호스텔은 500년 이상 된 유서 깊은 건물을 개조한 호스텔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싼 편이다. 하지만, 에어컨은 없다. 나는 오늘 뜨거워 죽을 것이다.
이곳 조드푸르는 영화 ‘김종욱 찾기’, ‘베트맨 다크나이트’, ‘더 폴’ 등에 나온 곳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난 이곳에 온 후에야 알았다. 조드푸르는 전에 얘기했듯 ‘블루 시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마치 시바신의 피부색과 같은 파란색으로 칠한 집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이 조드푸르에 많이 살고, 예전에는 그들만이 자신들의 집을 뜨거운 태양열을 반사 시킬 수 있는 파란색으로 칠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의 집도 파란색으로 칠 할 수 있다고 한다. 조드푸르 정상에 있는 메랑가 요새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푸른 하늘이 마을 전체에 내려앉은 듯 하다. 난 그 하늘 속 파란 호스텔에서 일어나 오늘의 여정을 챙긴다. 또 다시 구글맵을 켜 주변을 살핀다. 아주 가까운 곳에 관광 포인트가 있다.
인도에는 찬드 바오리라는 유명한 계단식 우물(Stepwell)이 있다. 이곳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교통이 불편해 접근하기 어려운 시골에 있다고 해서 포기했다. 그런데 이 ‘Stepwell’ 조드푸르에도 있다. 규모는 영화에서 나온 곳보다 작지만 그 기하학적인 모양은 충분히 담겨있다. 수학을 좋아하는 민족이어서 그런지 우물도 참 남다르다. 이른 아침이라 우물에는 사람이 없다. 우물은 아래로 향한 계단 끝과 맞닿아 있다. 물은 생각보다 맑고 깨끗하지만 역시나 주변에는 쓰레기가 떠다닌다. 물속을 보니 붕어들이 살고있다. 신기하다. 우물가를 서성이다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온다. 동네 사람들일까? 그들은 하나 둘씩 옷을 벗고 우물에 풍덩 뛰어든다. 그들을 지나쳐 올라가려하자, 나를 불러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난 혼자 연신 ‘셀피’(인도식 표현; self-picture)만 찍고 있는데…’ 나도 좀 찍어달라 부탁한다.
저들은 저렇게 수영을 하는데, 뭔가 아쉽다. 갠지스 최, 그들에게 물이 얼마나 깊은지 묻는다. 아주아주 깊다고 한다. 살짝 고민을 한다. 하지만, 우물의 S극이 나의 유전자의 N극을 호출한다. 나도 모르게 옷을 벗고 있다. ‘갠지스 최! 안돼! 안돼!’ 풍덩! ‘헤헤, 물이 참 시원하네.’ 몸 속의 연가시는 아시안 몽키의 숙주가 되어 결국 그를 물에 빠뜨린다. 우물을 점유하고 있던 인도인들과 함께 수영을 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델리에 있는 리모델링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근처 건물을 리모델링 중이며, 자신들의 숙소가 단수가 돼 ‘새벽의 토끼’처럼 우물에 씻으러 왔다고 한다. 비누칠을 벅벅 하며 나에게도 비누를 건넨다. ‘뭐 그래 좋다. 씻어주마. 하늘 호수는 여기에도 있구나!!’ 또 다시 인도에 흡수된다. 철모르는 인도 젊은이가 겁도 없이 ‘갠지스 최’에게 수영 시합을 제의한다. ‘그래! 덤벼라, 요놈’ 그의 청원을 너그러이 받아준다. 인도 젊은이는 경쟁자의 빤쓰를 끌어 당기는 반칙을 범하지만, 결국 ‘갠지스 최’는 겁 없는 인도 젊은이에게 패배를 선물한다. ‘비누는 잘 썼네 젊은이.’ 하늘 호수의 토끼들을 뒤로한 체 갈 길을 떠난다.
또 다시 여정을 시작해야 하지만, 뜨거운 태양아래, 날씨는 여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덥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 나왔다던 시계탑근처 시장에 가면 뭐라도 주워 먹을게 있지 않을까? 발길을 시계탑쪽으로 돌린다. 더운 날씨에도 시장은 활기를 띤다. 관광포인트답게 몇몇한국인이 눈에 들어오지만, 난 이미 그들과 동화될 수 없을 정도로 인도인이 되었다. 먹이는 현지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찾는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 힌두교 사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조용한 절이나 성당을 즐겨 찾았는데, 인도인이 된 지금도 선(善)을 찾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사원에 들어가니 힌두교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늘에 앉아 잠시 그 평온을 즐기며 한국에 있는 가족과 고향을 추억한다. ‘자, 힘을 내어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자!’ 시장에서 먹이를 챙겨 서둘러 숙소로 돌아온다. 넓은 방 침대 위 혼자 앉아 망고를 깎아 먹고 있으니, 쓸쓸함이 밀려올 틈도 없이 망고가 정말 달고 맛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망고, 너는 참…’
다음 목적지는 메랑가 요새이다. 동네도 구경할 겸 구글맵에 의지해 구불구불 미로와 같은 골목들은 걸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이내 아시안 몽키는 개들에게 둘러 쌓인다. 보통은 인간 따위야 가볍게 무시하던 녀석들인데 갑자기 왜 이러지. 전에 만난 ‘레이철’은 개한테 물려 한 달 간 바라나시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개한테 ‘앙’하고 물릴 것이다. 소심하게 가드(guard)를 올린다 한들 맹수의 이빨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때다!! 개소리를 듣고 동네 주민들이 나선다. 한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개들을 쫓아준다. 3층집 위 아저씨도 소리를 지르며 개를 쫓아주신다. ‘오 마이 엔젤스’ ㅠㅠ 호스텔을 찾아준 ‘마야’ 이후 두번째 엔젤들이 나를 살려주었다. ‘단야바드! 단야바드!’(감사합니다의 힌두어).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서둘러 메랑가 요새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요새에 도착하였다. 메랑가 요새!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 전체를 덮고 있는 요새, 그 위 하늘을 덮고있는 수많은 독수리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눈앞에 요새의 거대한 무게감! 만약 이 성이 유럽에 있었다면 수많은 관광객들 공격에 이미 함락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던가? 이정도 규모 요새를 짓기 위해서는 인도의 건축가들은 얼마나 미친자들이어야 하는가? 내가 아는 단어로 설명이 안될 정도로 아름답고, 성의 내부와 외부 장식은 치밀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곳이 프랑스 왕가의 궁전이라고 해도, 사진으로는 뜨거운 날씨를 전할 수 없기에, 인도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리 없는 어리석은 상대를 쉽게 속일 수 있으리라.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동해 도슨트 투어를 하기로 결정한다. 다행이 한국어도 있다. 오달진 성에 넋이 나간 채 한국어로 육두문자를 곁들여 감탄을 한다 해도 알아듣는 이 하나 없어 깊은 진심으로 경탄할 수 있다. 넋 나간 한국인 관광객이 신기한지 함께 사진을 찍자 하는 이도 있다. 도슨트는 이 성을 거처간 사람들과 영국식민지 시절 성의 변화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도슨트 기계마저 땀을 흘린다.
경이로움과 더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잠시 앉아 아이스커피로 사치를 부려본다. 성 구석 구석을 눈에 담고 싶은데 해는 지고, 이제는 마감시간이다. 들어온 문은 이미 잠겨있어 발길을 돌려 다른 출구로 향한다. 이대로 호스텔에 돌아가면 먹고 남은 망고 뼈다귀와 고독만이 날 반겨 줄 텐데, 요새에서는 마감 시간에 쫓기고 출구에서는 불량스러운 인도 청년들에게 쫓겨 겁을 주워 먹고 툭툭이에 몸을 던진다. 인도의 12억 인구 사이에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나와 역사를 나누었던 가족 하나, 친구 하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이 고생이 조심스럽게 서글퍼진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듯하다. 메랑가 요새에서 호스텔까지 태워준 툭툭이기사와 내일 공항까지의 여정도 거래를 한다. 호스텔 옥상에 올라가 메랑가 요새를 바라보며 멀리서 울려 펴지는 ‘아잔’소리(이슬람교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이렇게 ‘갠지스 최’의 천축국여행을 마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wfGDn1Gmo
이 곡은 '원모어찬스'가 인도여행 중 쓴 노래라고 한다. (웬지 인도의 추억을 공유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아진 노래입니다.)
혹자는 인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간다고 한다. 본인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갔다. 멋진 깨달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면 좋으련만, 인도의 삶을 보고 왔기에 ‘한국에 살고있는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라는 식의 비교는 지양한다. 하지만 혹시 지금 당장 불평 불만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버스가 럭셜리 버스가 맞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럭셜리버스를 타고 있니 오늘도 파이팅 하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인영천축국전’의 여정에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