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뚜두 May 24. 2020

무인도에 누구랑 가고 싶나요?


가끔 무인도에 떨어지는, 아니 그냥 나 혼자 무인도로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면 언제나 남태평양(영화 탓이겠지)의 외딴 섬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섬.

적당한 과실수와 시원한 옹달샘이 샘솟는 그곳은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된 적이 없다.

그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밤에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모래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그려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인도에 왔다고 두고 온 사람들이 미운 것은 아니기에...

이런 삶을 상상하는 건 아니고 :)

때로는 누군가 억지로 날 데려다 놓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땐 상상 속 인물이 꼭 이런 질문을 동반한다.

“원한다면 한 명은 데려갈 수 있게 해줄게.”

무인도에 가는데 굳이 동반은 왜...?  

이런 싱거운 상상만으로도 나는 밤을 새울 수 있다.  


언젠가 이 질문을 여자 후배에게 한 적이 있다.

우물쭈물하던 그 애, 현실 속 인물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자 곧바로 ‘앤 셜리’라는 대답이 나왔다.

빨강머리 앤이라면 결코 심심할 새가 없을 거라면서. 레몬 에이드 한 모금을 쭉 빨아 마시고는 앤처럼 싱그럽게 웃어 주던 녀석.


나는 상상 속 그 악당에게 십 년 넘게 한결같이 답하고 있다.

‘완콩’이와 함께 가고 싶다고.

완콩이는 아주 어렸을 때 집에서 길렀던 강아지다. 믹스견에 전체적으로 하얗고 이마 부분만 조금 누리끼리했던 녀석. 그 아이를 3년 넘게 키웠는데 집에 급작스런 사정이 생겨 엄마가 아는 분에게 녀석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완콩이와 헤어지기 전 나누었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고 깊은 눈. 완콩이의 동공에 가득 찬 내 얼굴

너 하나로 족해.

이 우주가, 온 세상이 너로 인해 꽉 찰만큼.

열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 별달리 어른들 일에 참견할 수 없었던 난 완콩이를 떠나 보내고 종종 녀석을 만나러 가곤 했다.

여전히 내 얼굴을 자신의 동공에 가득 채워 주었다.

 

왜 무인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걸까.

단 하나의 얼굴을 찾고 싶어서?

무인도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을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을 까봐?

아니면 여기가 이제는 지치는 것일까.


그렇게 가끔 무인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밤이 되면 불꺼진 천장 위로 

소금기 그득한 남국풍 바람이 불어오고  

일렁이는 파도는 날 덮칠 듯 몸을 일으킨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밤이 새도록 

그러곤 생각한다.  

날 찾아올 그 얼굴을 


작가의 이전글 누구나 한 번쯤, 일생에 단 한 번 무지개 같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