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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Oct 28. 2018

퇴사하려고 산 책은 아닌데요

퇴사준비생의 런던, 트래블코드

0. 퇴사계획이 없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주체는 대부분 기업이다. 친환경 이미지로 포장하는 기업이 아니라 애초에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등장하는 일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이 분야에서 구글은 미션을 중심에 놓고 움직이는 기업이 사회에 선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글로벌 No.1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거의 처음 증명했다. 쪼들리는 사회적 기업 아니고, 적당히 성공한 기업도 아니고, 세계 1등 말이다.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책무도 수행하는 밀레니얼 쿨이랄까.


이른바 Mission Driven Company는 진취적인 젊은 인재를 전부 빨아들였다. 그 결과는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다(물론 이들의 행보가 항상 착하지는 않지만). 그러다보니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비즈니스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콘셉트를 세상에 던지는 열정과 그것을 현실에 구현해내는 능력을 외면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니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퇴사계획이 없음에도 <퇴사준비생의 런던>을 집어든 이유다. 하지만 왜 직접 방문해야 하고 왜 하필 런던인가.



1. 훔치고 싶은 관점 

파리, 타이베이, 도쿄, 런던... 내가 취재했던 공간 대표들의 출장지다. 한국에도 개성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어떤 가게를 검색해도 생생한 리뷰가 넘쳐나는 세상에 굳이 출장을 가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회사일도 아니고 생계가 걸린 일을 하는 사람이 출장 핑계로 놀러가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2주 전, 한 사장님은 도쿄에 출장을 갔다. 목적을 짧게 요약하면 그 곳만의 바이브를 느끼고 재현하기 위해서. 이를테면 백화점 입점도 거부해가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가게에서 따듯한 조명을 받고 안락한 분위기를 즐기는 손님들이 만드는 공기같은 것 말이다. 이런 분위기는 리뷰로 전달하기 어렵다. 카페 운영자의 관점으로 쓰인 정보는 더욱 부족하다. 무엇보다 여느 카페가 아니라 A라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관점으로 쓰인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트래블코드의 관점은 유니크할 뿐만 아니라 깊이감이 있다. 2016년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본 순간부터 한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 카페지만,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는 카페사업의 기본 성패요인, 경쟁자와 이 곳이 다른점, 작은 디테일에 숨어있는 의미, 구조적 어려움을 이겨내는 비결까지. 마치 매거진 <B>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과 비슷했다. 정가의 2배, 3배를 줘도 아깝지 않은 관점이 그 글과 책에 녹아있었다.



2. 일단 술집부터 체크

이번 <퇴사준비생의 런던>도 역시는 역시였다. 다만 한 호흡으로 죽 읽어내려가기에는 너무 인풋이 많아 뇌가 감당을 못할테니, 1)프롤로그와 에필로그부터 읽어서 저자의 관점에 밑줄을 그었다. 어떤 목적으로 책을 만들었는지, 왜 런던인지, 책은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등 수많은 '왜'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실용서에 가까운 책들은 저자가 주목한 포인트를 먼저 인지하고 책장을 넘길 때 그 부분의 행간에 집중하면 영양분을 잘 빨아들일 수 있다.


2) 목차(차례)를 넘기며 재미있어 보이는 부분에 체크를 했다. 내용 자체가 흥미로운 책이지만 술술 넘기면서 보는 책은 아니니 소화를 잘 하려면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몰입하면 덜 어렵다. 책은 친절하게도 타이틀과 부제, 4줄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발췌독하기 편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타이틀. '주류 판매 허가가 필요 없는 술집: 업의 핵심도 아웃소싱하는 기술' 아웃소싱은 원래 핵심역량이 아닌 부분을 전문업체에 맡기는 게 기본 컨셉인데, 그 반대라니. 신기했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말다툼을 하다가 수세에 몰린 엄마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슥 보는 것처럼. 지원사격을 해달라는 의미다. 엄마는 종종 관계유지의 핵심인 '의견조율 과정'을 나에게 아웃소싱했다. 역시 엄마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쨌거나 이 가게의 이름은 B.Y.O.C = Bring Your Own Cocktail. 술을 팔지 않는 칵테일바라는 정체성이 드러난 네이밍이다. 그들은 시간당으로 돈을 받는다. 1인당 30파운드(2시간). 고객은 술을 많이 마실수록 이득이고, 가게는 주방과 재고관리 염려가 사라져서 고정비(!)를 아낄 수 있다. 임대료가 살인적인 런던에서 외식업이 공간임대업으로 변한 셈이다.


책에서는 '업사이드가 크진 않아도 하방 지지선이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로 정리한다. 여기까지 읽고 감상은 독특하지만 그다지 섹시하지 않다였는데, 그 후로 훅이 3개 정도 날아왔다. 칵테일을 무제한으로 주문하며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다는 점, 고급 기주, 그리고 디스커버리 클럽. 전부 적을 순 없지만 내용이 충실한 건 물론 글의 흐름도 흥미로웠다(딱히 술 이야기라서 그랬던 건 맞지만).


<퇴사준비생의 런던>에는 이렇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브랜드가 소개된다. 우리가 여행에서 가본 적 없는 공간과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을 경험하듯, 이 책은 운영해본 적 없는 비즈니스를 경험하게 한다. 2018년에는 나같은 사회초년생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직장이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비즈니스 분야에서 심도 깊은 한국어 리포트가 풍부해질수록 사회의 후생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3. 그 외 눈여겨 볼 지점

읽다보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글의 흐름과,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스펙트럼을 분류한 듯한 목차 구성, 통일성과 운율까지 맞춘 소제목, 정확히 구분되면서 시선을 빼앗지 않는 컬러감, 작은 판형임에도 경어를 사용하는 선택, 참고문헌을 구글 숏링크로 제공하는 것(!) 등 만듦새 부분도 참고할 점이 많다. 자체 출판을 진행하며 이렇게 세심한 친절을 담은 것도 트래블코드라는 팀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이렇게 꼭꼭 씹어가며 읽느라 완독하는데 4주 가량 걸렸다. 저자가 의도한 독자의 반응 역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는 종류의 몰입이 아니라 사례를 취사선택하고, 내가 적용할 방식을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으리라.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의 마무리에 살짝만 힌트를 던져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와 모바일로만 주문을 받는 맞춤형 샐러드 가게(비타 모조)는 음식의 철저한 개인화를 지향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기 보다 소프트웨어 판매에 집중한다. 비용절감이 아니라 개인화라는 관점에서 키오스크를 바라보면, 주문이력을 기억해서 추천해준다거나 건강상태에 맞는 식재료를 알려주는 등의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다.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말하는 부분에서 디테일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 사례의 의미분석으로 마무리가 되는 건 나처럼 자영업이나 사업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실용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었다. 기왕 각론을 말하는 김에 조금 더 과감해도 좋았을 걸. 고민의 과정까지 떠먹여달라는 독자의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bag to the future(좀 귀여운 네이밍이다)




p.s. 런던의 테마는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을 다룬 도시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개인이 동원하는 자원 중 감정이 가장 비싼 것 같다. 감정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비즈니스는 복제할 수도 없고(다크 슈가즈처럼), 가치도 거의 무한정으로 높아진다. 매거진 <B> 포르쉐 이슈를 구매한 것(발행인의 글)도 그런 맥락이었는데 자동차에 대한 관심부족으로 와닿는 게 적었다. 옆자리 선배가 자동차 잡지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있지만 역시 태부족. 그런 도시가 어딨을까. 요즘 보면 서울인 것 같기도 하고. 외려 추운 나라에서 찾으면 있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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