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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Sep 12. 2018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덜 복잡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고

0. 짜증낼 준비는 되어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괜히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날도 마찬가지. 정말 아무 일 아니었지만 나는 화를 내다 못해 가산디지털단지 근처 빌딩 옆 화단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삶의 복잡도가 너무 높아졌다. 중간에 꼬인 걸 해결하려고 전화를 걸어 요청하고, 재차 확인하고, 최선을 다해 곤란한 표정을 짓고, 할 수 없이 전화를 끊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서성이다가, 다리가 아파 털썩 앉아버렸다. 이게 다 캐리어 때문이다.


다 뿌셔버려!!!!!!!!!!!!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보자. 하루에 2개 이상 약속을 잡지 않는 집돌이가 그날따라 아침부터 바빴다. 오전 중에 이사 갈 집에 보증금을 입금하려면 은행에 들러야 했다. 오늘 못 끝내면 다음주 월요일까지 기다려달라고 첫날부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이렇게 큰 돈을 처리하는 건 아무래도 긴장되는 일이라, 일찍 끝내줘야 안심이다. 거기다 월세 선입금과 부동산에 줄 중개 수수료 지급을 완료하고, 아빠에게는 보증금 일부를 부탁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고작 11시 30분인데 통화기록 6건이 쌓였다.


이제 겨우 하나 끝냈다. 점심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자취용 생활필수템을 주문하고, 그동안 미뤘던 영화를 보고, 망가진 캐리어를 대신할 녀석을 실물로 확인하기 위해 매장에 방문한 다음, 의자 하나 사겠다고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 가는 여정이 남았다. 매일같이 야근하다가 1달만에 겨우 쉬는날을 맞이한 광고 에이전시 직원/게임 개발자/간호사가 된 것 마냥 처리해야 할 개인 스케줄이 쌓였다.


내가 써야 할 물건을 고르는 건 꽤 즐거운 일이지만, 갑자기 신경쓸 게 너무 많아지면 점점 지친다치약 살 땐 애경을 피하고, 생수 살 땐 롯데를 피하고, 가격이 높을 땐 내구도와 디자인, 내 체형과 집 구조까지 고려해서 선택하고 최종 흥정까지 하고 나면 이제 걷고 싶지도 않고, 폰 스크린을 보고 싶지도 않아진다. '물' 한글자만 검색해도 끝없이 나오는 상품 리스트에 눈이 뻑뻑해지길 여러 번. 결국 하나가 꼬였다. 


방금 주문한 캐리어가 다음주 화요일에나 도착한단다. 화요일은 출국날인데?? 매장 픽업도 안 되고(=플랜B 망함), 돈을 더 줘도 소용없다(=협상실패)는 말을 들었다. 젠장. 지금 쓰고있는 캐리어는 이미 못 쓸 지경인데다가 이미 주문한 녀석이 쏙 마음에 들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새로운 캐리어를 알아볼 시간은 없다. 오래 쓸 작정으로 가격은 물론 꼼꼼한 사람이 작성한 후기를 3번이나 다시 읽어보고, 직접 방문해서 바퀴가 얼마나 튼튼하고 부드럽게 굴러가는지 확인까지 했는데!!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배송지를 인천공항으로 바꾸고 제 시간에 도착하기를 기도하는 것...



망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내린 많은 선택 중 하나가 제대로 구멍났다. 검색하고, 비교하고, 리뷰보고, 내구성까지 확인하는 과정을 또 반복해야 한다. 뭐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상황도 아니니까. 하지만 허탈함이나 귀찮음 대신 분노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불친절한 본사 직원 때문에? 완연한 가을이라고 해놓고 땀빼게 만드는 기상청의 공수표 때문에? 아니면 그냥 피곤해서?


애초에 이 스케줄 자체가 문제였다. 이사와 이직, 여행을 동시에 끌고가면서 문제 하나 없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이미 표면장력으로 찰랑거리는 소주잔에 또 술을 들이부은 격이고, 고속도로에서 3번 연속 핸들을 꺾은 꼴이다.  이 뜬금없는 분노의 진원지는 높아진 복잡도로 인해 이미 스트레스 임계점이 넘어간 상황에 있었다.


3개를 동시에 저글링하다니, 이 오만한 닝겐!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고 배웠건만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사다. 그렇게 타이밍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래서 삶의 복잡도를 낮추겠다는 애초의 다짐은 딱히 가능할 것 같진 않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급격한 변화와 높은 복잡도를 더 많이 겪게될텐데, 이전 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속도를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변화를 주도하는 천재들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몇 가지로 나뉜다. 주도하거나, 적응하거나, 무시하거나.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천재는 아이큐 180도 아니고, 15살에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아니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는 단순히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능력평가의 기준 자체를 바꾼 인물이다. 모두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쓸 때, 천재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앤디 워홀이 미술계를 영원히 바꿔버린 것처럼. 요컨대 천재란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는 인물이다. 



천재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건 그래서다. 천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익숙한 것도 새롭고, 때로는 어떤 깨달음까지 준다. 산경 작가의 소설 <신의 노래>에 등장하는 음악천재 역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인물이다.


지금의 음악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감정이다. 대중가요든 재즈든, 썸의 설렘이든,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든.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게 음악이다. 이게 기본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소설 속 천재는 음악으로 감각을 전달한다.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구린 음악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전달하는 음악.


물론 판타지다. 하지만 판타지라서 가능한 상상과 소설이라서 가능한 묘사는 그 어떤 콘텐츠로도 대체 불가능한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다. 감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크지만, 감각은 거의 모두가 비슷하게 느낀다. 창작자의 경험과 의도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예술을 모두가 향유하게 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판타지 소설 표지가 왜 다 이런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의 노래>는 그런 판타지를 다룬다. 천재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지만 그저 타고난 재능으로 일반인을 압살하는 전개방식은 여기저기 넘쳐난다. 하지만 고리타분하고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 클래식 씬에서조차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설정은 여지껏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베를린 필 하모닉과 아이돌과 록 밴드를 왔다갔다 하며 흥미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힘까지 갖췄다.


여기까지가 겨우 전체 내용의 절반이다. 음악 천재인 주인공은 계속 성장한다.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 어떤 영역을 어디까지 바꿔놓을지 기대하며 읽었는데 아직도 많은 분량이 남았다는 생각에 심적 부자가 된 느낌이다.


물론 이런 먼치킨이 만들어내는 스케일의 변화를 내가 흉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레퍼런스는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것을 참고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만 참고하다 보면 계속 같은 레벨의 사고밖에 하지 못할테니까.



2. 노력한 사람

이런 초천재를 보고 나면 김범수라는 가수가 친근해 보인다. 물론 그도 자신의 이름 석자가 곧 브랜드인 사람이지만(무려 *김나박 3대장 중 한 명 아닌가). 하지만 정상급 뮤지션이 모인 <나는 가수다>에서조차 이 사람이 주목받았고,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서 무대를 찾아보게 만드는 이유는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1, 2주 전에 남긴 댓글도 보인다. 7년이 지나도록 이 무대를 기억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희나리 일렉트로닉 삼단고음..?


아마 수건을 개면서 TV채널을 돌리다가 무심결에 봤던 것 같다. 처음엔 저 망토 안에 뭔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곡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다.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뭔가 안타까운 듯한 목소리라고 느꼈지. 후반부에 EDM과 에스닉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거다. 당시에도 파격적이었지만 지금 봐도 신기할 노릇이다.


욕도 꽤나 먹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위해 만든 노래인데 DJ KOO가 왠말이냐! 하는.. 

평가도 극과 극으로 갈렸다. 1등 아니면 꼴등으로.


그는 왜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했을까. 무대 뒷 이야기를 보면 김범수와 돈스파이크는 곡 배정을 받기 전부터 EDM 편곡을 계획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필 받은 곡이 '희나리'라는 거다. 아마 오래된 곡에 트렌디함을 섞어 지지를 받기 위한 전략이었을 거다. 원래 계획대로 EDM 편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1위를 위한 욕심은 접고 들어갔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도박은 성공했다. 이미 정점에 오른 가수들 사이에서 그의 파격적인 시도는 단순히 기억되는 것을 넘어 두고두고 칭찬받고 있다. 자신을 갈고 닦는 것 이외에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함을 느꼈기에 가능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잘하는 사람은 많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기억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어떻게 다름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2040255



3. 결국 새로운 시도

이번 캐리어 사건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이 겹치긴 했어도 이직과 이사, 여행을 결정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일정인 걸 알았고, (거의 반드시) 중간에 하나쯤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감행하기로 했다. 하나 하나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결정적인 실수는 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도 했다. 만약 이런 변화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었다면 내 스트레스는 훨씬 더 컸으리라. 이 변화를 내가 선택했느냐 아니냐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히치콕은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한다. 영화가 평화롭게 진행되다가 뜬금없이 폭탄이 터지는 건 서프라이즈, 테이블 폭탄 타이머가 째깍거리는 관객이 알고 있는 와중에 캐릭터가 평화롭게 대화하고 있는 건 서스펜스. 그리고 폭탄이 터지지 않게 막는 긴박감은 스릴러, 누가(+왜) 폭탄을 설치했는지 밝히는 과정은 미스터리다.


변화를 무시하면 인생은 서프라이즈와 미스터리의 연속이 될테고, 새로운 것을 던지면서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인생은 스릴러에 가까워진다. 어차피 점점 예측불가능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내가 일하고 있는 씬에서만큼은 변화를 주도하고 싶다. 그 어떤 천재가 와도 이 분야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그래야 덜 힘들 것 같다. 그래야 재밌을 것 같다.








신의 노래_산경 

누구나 소설 1편을 쓸 수 있지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직업의 특수성을 쏟아부으면 1편은 그럴듯하게 완성할 수 있다. 반면 프로 글쟁이는 주인공이 판사든 재벌가 아들이든, 음악 천재든 상관없이 어떤 소재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게 이야기꾼이다. <신의 노래>는 전작 <비따비>로 성공을 거둔 다음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필명까지 바꿔가며 낸 작품이다. 어떤 분야를 다뤄도 본질을 꿰뚫어내는 그의 통찰력과 방대한 자료조사가 이 작품에서도 빛난다. 편당 100원짜리 웹소설로 월매출 1억을 기록한 그는 아직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나박: 김범수, 나얼, 박효신. 말이 필요없는 국내가요 정상급 보컬 3대장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순위 매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으니 대단한 보컬리스트다 정도로만 해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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