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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Feb 11. 2018

도시의 능란한 플레이어, <책방 연희> 구선아

사뿐사뿐, 치열하게, 다시 느슨하게

<지속가능한 덕업일치> 프로젝트는 궁금증과 두려움에서 시작됐다. "재미있는 일 하면서 정말 임대료도 낼 수 있을까? 내가 월급 없이 살 수 있나?(돈 쓰는 재미는 어쩌고), 망하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찾아다니며 묻기로 했다. '당신은 재미와 수익을 어떻게 연결시켰나요',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생활이 불안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생각을 덧붙인다. 나도 이 방법을 따라할 수 있을지. 내 방식은 무엇일지. 이 인터뷰들의 끝에 나의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바라면서. 나처럼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좋아하는 건 취미로만 해야 할까요

인터뷰이를 찾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조건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있는지,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는지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그 시작이 재미있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재미있는지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게 일이 되면 재미없어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나로서는, 어떻게든 반례를 찾고 싶었다. <책방 연희>의 책방지기이자, 저자이면서, 기획자인 구선아 님과의 인터뷰가 즐거웠던 이유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기분이 들어서.


흔히 미라고 하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동기로 이야기되기는 해도, 그래도 힘들지 않냐는 질문, 직업으로서의 의미, 경제적인 부분을 물어도 여전히 재미를 놓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구 선 아


약력

1년은 미술관, 9년은 LG광고대행사에서 열일.

지금은 도시인문학서점 책방 연희 운영,

도시사회학 박사과정,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과 글쓰기 중.


저서

<여행자의 동네서점> , <바다 냄새가 코끝에>,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만 지나간다(공저)>


기획/제작
단편영화시나리오집 <나의 오늘>, <공간의 말들>


편집

<동네서점이 사랑한 책들>



흥미로운 영역이지만, 남들이 흥미에서 그친 그 지점에서 더 깊게 건드린 흔적이 보인다. 흥미롭지만 귀찮고 힘들어, 나보고 하라면 절레절레 할 것 같은 일들을 일부러 고른 것만 같다.






1. 지속가능성_재미있어야 오래 한다

재밌어서 시작한 건가요. 무엇보다, 지금도 재미있나요.


<여행자의 동네서점>을 보고 이해한 바로는 '책방 연희'의 시작이 자아실현이나 소명의식 보다 "좋아하니까 한다"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책방을 운영할 계획은 없었어요. 회사를 다니던 중에, 직장을 다니며 글을 써보자 하는 정도 였고요. 이후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나를 위한 내 공간, 스튜디오 같은 작업실을 원했죠. 하지만 작업실만 꾸리기엔 부족했구요. 여러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그러면 책방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거예요.  



스튜디오라고 하면 촬영 스튜디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구요. 글 쓰고, 독립출판 기획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을 생각했어요. 내가 기획한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물론 책보는 것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즐겨하지만, 책방 주인을 꿈꾸지는 않았어요.


회사에서 부품처럼 일할 때와 개인으로 활동할 때 다른 게 통제력의 범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으로 시작하게 된 건가요?  

루틴한 업종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진 않아요. 저는 제가 부품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즐거웠고, 의미있었고요. 다만, 회사에서 하는 일은 온전히 ‘내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개인 작업과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회사를 다닐 때도 사보나 디자인 웹진 등에 연재를 계속 하기도 했구요.


야근 많기로 유명한 광고대행사에 다니면서 다른 일도 하셨던 거네요...(존경) 지금도 책방 외에 기획이나 기고도 하고 계신데, 이런 일들을 하게 만드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재미인가요, 아니면 다른 것들인가요?  

재미.. 재미라는 단어가 완전 적합하진 않는데, 재미에 가깝긴 해요. 누가 얼마전에 물어봤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저는 그럼 그 일과 관련없는 다른 일을 해요. 새로 영화제를 한다든가, 모임을 한다든가 하는 프로젝트요. 거기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니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는 내 품이 더 들어가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까지 생기는데 그러면 더 힘들지 않나요?

현재는 제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일은 되도록하지 않으려고 해요.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은 기꺼이 하는 편이고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어차피 두개 다 하게 되지 않나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다고 할 때 흔히 간과하는 지점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입장 차이다. 일을 한다는 건 지루한 반복과 자잘한 작업들을 모두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발점에 서는 일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발걸음을 떼는 일은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거나 직접 만들 때 시작된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도 안고 가야 한다. 제아무리 신의 직장이라도 숨막히는 지하철 출근길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재밌기를 바라는 건 그냥 판타지일 거다.



광고대행사에 다닐 땐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여수엑스포, DDP 콘텐츠 기획,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등을 담당했는데 그런 프로젝트는 는 1, 2년 이런 단위로 움직였어요. 몸집이 큰 아이들이 움직이니까, 전 새로운 것들을 빨리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영화제든, 작은 동네축제든 빠르게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공간 안에서 뭔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이요.


순수하게 “재밌어서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나요?

사실 지금 하는 일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지금 하는 일 중 가장 재밌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은 도시를 기록하는 일,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예요.



경험을 돌아보면, '계속하고 싶다'를 만들어내는 동력은 대개 의미 혹은 재미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이 강한 쪽은 대개 재미였다. 신념을 동력삼아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게 가치있는 일이니까 한다'는 식의 책임감은 오래가지 않거나 더 많은 이유를 붙여야 했거나, 스스로를 통제해야 했다. 재미있어야 오래 한다. 관심의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아주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재미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살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재미를 붙잡으려는 내게 늘 아쉬웠던 건 실행력이었다. 바쁘게 지내며 여러 일들을 해내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신기했다. 어떤 경험을 하면 이런 사람이 될까. 이불 안에서 꼼지락대는 사람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사람.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서,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어떤 선택들을 했고, 그 선택이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





2. 뭘 먹으면 그렇게 되나요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마주할 때 흔히 "뭐 먹고 자랐길래"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뭐먹었냐는 질문 대신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묻고, 어떻게 자럈냐는 질문 대신 어떤 점을 배웠는지 물었다. 선택과 배움이 이 사람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하면서.


첫 사회생활을 미술관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뭐였나요?

학부 때 건축과 미술교육을 전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건축 큐레이터를 하고싶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자리잡히기 전이었거든요. 전시기획, 공간기획에 관심을 가지다가 자연스럽게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에 광고대행사로 이직하신 계기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 일을 돕고, 도슨트도 하다 보니 제가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것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건축을 전공한 영향이 있겠죠. 미술도 설치미술을 가장 좋아하고. 공간이나 도시의 장소에 관심을 갖게되었어요. 그래서 공간, 환경디자인 쪽으로 대학원을 진학했고, 수료를 한 학기 남겨두고 입사하게 되었어요. 입사 후 첫 발령 팀이 공간디자인팀이었고요. 이후 도시마케팅팀, 프로모션팀을 거쳤어요.


직작생활을 통해얻은 것들 중 지금도 잘 써먹고 있는 게 있을까요? "이건 잘 배웠다" 싶은거요.

음.. 저는 뭔가 새로운 걸 할때 두려움이 없어요.


최근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고민이나 화두는 뭔가요?

지금 제가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요즘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으로 소논문을 쓰고 있어요. 제가 지금 심층관찰자니까 잘 쓰고 싶어요. 화두라고 하면. 다음책 준비를 해야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바쁘게 보내시네요. 저의 화두는 '시간관리'거든요. 정해진 시간에 끝내지를 못하겠어요.. 퀄리티를 높이려고 계속 하다보면 결국 다른 일들까지 밀리게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하시면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생각날 때 틈틈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해놓으려 노력해요. 시간을 분할해서 쪼개서 쓰는 편이고요.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메모를 한다든가, 일부분만 완성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요. 앉은 자리에서 집중하여 쭉 다 하면 좋겠지만, 여러 일을 하는 경우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거든요. 시간을 쪼개서 쓰면 여러 일을 할 때 도움이 되요.  



어떤 변곡점을 알아내려고 한 질문은 그다지 소용없었다. 사람에 대해 가장 잘 말해주는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선택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다.  어떤 사람인지보다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했던  나로서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들은 나에게  많이 행동할수록 정확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었다. 직업선택은, 구글링이나 타인의 조언을 종합해서 결정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나에게 맞는 옷인지 입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내가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머뭇거리는 순간에 행동하는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많은 분야에서 경험해봤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데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비결을 물으면, 맥빠지게도 '그냥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초에 생각이 많으면 하지 못하는 일들일까. 그럼 이건 성향 차이일까.




3. 도시인문학서점의 정체성

부담없이 오픈했다는 말처럼, 책방 연희는 각잡고 덤벼들기보다 "저 정도면 나도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행사들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인문학서점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가지고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졌다.


서점에 책을 들여놓을지를 결정할 때 기획자의 관점은 다를 것 같아요. 입고되는 모든 책을 읽어볼 수는 없을텐데, 나름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기성출판사와는 직거래를 통해서 입고를 받아요. 주로 책에서 지향하는 관심사와 컨셉을 검토하구요.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서 살펴보기도 해요.

독립출판은 책방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받으려고 해요. 저희 책방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전시를 하는데, 그게 작품을 만든 사람에겐 경험이자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플랫폼 역할을 하고싶은 마음이 있어요.



도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출퇴근시간이 너무 피곤하고 지하철에 시달리는 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는데,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책을 보면서 일터와 주거공간이 같이있는 게 정말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게 그냥 나만의 투정이 아니라 실제로 해결가능한, 손에 잡히는 일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도시가 분명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좋아하는 도시들이 많이 있지만, 어떤 도시에 사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파리에 살아도 불행할 수 있는 거잖아요. 효리네민박에서 제주도에 살면서 스스로 비참하다고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이효리가 말했을 때 무척 공감했어요. 전 서울이 가장 좋거든요. 어디에 살든지 결국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블로그 글에 책방소개를 이렇게 하셨어요. "도시인문학서점 책방 연희는 도시에서 풍요롭게 살기 위한 느슨한 책 읽기와 느슨한 글쓰기, 그리고 느슨한 연대를 꿈 꿉니다." 좀 아이러니했어요. 책방운영부터, 기획, 글쓰기까지 등등 촘촘하고 쉴틈없이 일을 하시면서 정작 지향하는 바는 '느슨함'이라는 사실이요.

맞아요. 소개글에 쓴 것처럼 책방 이름이 연희(a play)인 것도 그런 의미에요. 책을 포함해서 전시/공연/영화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구요. 결국 이런 원데이클래스나 전시같은 행사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 분야에 흠뻑 빠져들기보다는 자기주도적이 되기를 원해요. 무슨 일을 하든 자기주도적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도시와 인문학. 모두 단일서점이 담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우습게 넘나드는 도시기획과 인문학의 지혜를 포용하겠다는 건가? 하는 삐딱한 시선도 있었다. 이런 첫인상과 달리 <책방 연희>의 기획은 다분히 휴먼스케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낙서하듯 그리는 데일리 드로잉>이나, 여행매거진 Artavel과 함께한 <여행의 영감을 위하여> 북토크와 같은 행사를 보면 특유의 밀도가 있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없는 도시인의 상태에 알맞게 짜여진 느낌. 주목할 점은 이런 행사들이 실제로 나의 일기장을 풍성하게 하거나, 여행자의 시선을 가지게 만드는 식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느슨함은 치열함이나 촘촘함에서 후퇴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도시의 미덕을 재미의 다양성과 높은 접근성으로 본다면, 느슨함이야말로 그 재미에 다가가는 현실적 방법이지 않을까. 잘해야한다는 강박이 사라진다면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테니까. 그런 공간이 <책방 연희>라면, 거기서 재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겠다.


독특하게도 재미 위에 재미를 얹었다. 누군가 재미 위에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을 얹을 때, 그는 나의 재미가 모두의 재미로 확장되는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재미 위에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을 얹을 때,
그는 나의 재미가 모두의 재미로 확장되는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4. 지속가능성_불안함. 월급 없는 삶

그러면 이 재미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지탱되고 있을까.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도 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독립출판 이런저런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하는 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인가요?  

네트워킹은 저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 운영해보면 네트워킹을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다른 일을 도모하는 일들이 생기더라구요.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책방에서 전시를 할 때도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그러면 개인사업을 하는 불안함은 주변의 책방운영자나 자영업자와 교류를 통해서 해결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 교류가 있죠. 독립출판 제작자나,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눠요. 그리고 제가 출판이나 서점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조언과 염려를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시고요. 음, 해결이라는건 모르겠어요. 다만, 예를 들면 달에 4개의 장소에서 에밀리 디킨스 책과 영화로 시낭송회, 영화상영회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저희 책방도 그 중 하나로 참여할 계획이에요. 자신의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다양한 콘텐츠간의 교류가 저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여담인데, 식당에 가면 모르는 사람과도 아는 사람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성격은 아니에요. 물론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제가 기획한 책을 언급하면 정말 반갑게 대화를 나누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러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지않을까요. 책방 운영자마자 성향이 다른거죠. 저도 책방 연희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창작자들의 플랫폼이 되기를 원하지만, 책방을 다른 사람을 위해 운영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기도하고요.



대개 자신의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고충은 2가지인 것 같다. 불특정다수를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막함. 이 대목에서 선아님은 스타일이라는 패를 꺼냈다. 책방주인이라고 해서 책방에 온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는 말과 힘들 때면 또 다시 새로운 걸 기획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위안을 얻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 왠지 인구 200명짜리 마을에 이사간 사람마냥 모두와 잘 지내야 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벗어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이렇게 누군가 확인해주기 전까지 말이다. 결국 생존은 나의 무기로 해야 하는건데.



책방이 재정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면 운영을 그만둘 계획도 있으신가요?

저는 어떤 일을 하든 운영할만큼의 수익은 무조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점의 적자를 다른 일들로 버는 수익으로 메꾸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일시적으로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결국 어떻게든 서점의 수익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실례지만 수익에 관한 부분을 여쭤보고 싶어요.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하는 게 마치 분산투자처럼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요. 각각 하는 일들의 수익을 비율로 따지면 대략 얼마나 되나요? 기획 1 인세 0.3 책방운영 0.5 과 같은 식으로요

글쎄요. 계산해 본적은 없네요. 대기업에 다니던 월급이나 인센티브만큼은 아니지만, 고정비를 지출하고 제 생활을 할 정도는 벌어요. 고정적으로 글을 연재하고, 책을 내고, 요즘은 강연도 하고요.


사람마다 적정수익의 기준이 다른 것 같아요. 난 이 정도는 벌어야겠어 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제 경우는, 옷은 필요없지만 한 달에 한 번 소고기 먹고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이 가능한 정도거든요.  

퇴사할 때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어요. 10년차에 퇴사를 했기 때문에 월급도 꽤 되었고 꼬박꼬박 인센티브도 나왔으니까요. 그때 전 무얼하든 “회사 월급만큼은 벌 자신이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단, 얼마간은 저도 저에게 투자하는 기간은 보내야하겠지만요.



수익원을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는 건 나에겐 꽤나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예상치 못한 변수로 태클이 들어올텐데, 한번 무너지면 끝장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종은 약점이 공략되는 순간 몰살된다. 보통 책방을 주업으로 하는 경우는 책과의 시너지를 고려한 제품으로 구성하지만, 수익원의 중심이 '내'가 되는 경우는 다르다.


아예 카페와 서점의 경계를 없애거나,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하거나, 하나의 공간에 건축사무실과 책방을 분리하는 등의 방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스레 수익의 비중도 달라진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그게 시장에서 얼마의 가격으로 거래되는지 정확히 알고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거래를 해 본 경험이 쌓여야 하지 않을까.




5. 그리고, 남은 대화

인터뷰는 평소보다 짧았지만, 이렇게 즐거운 대화는 흔치 않다. 그래서 맥락없이 몇 가지를 더 물었다.


300억이 생긴다면 뭘하고 싶나요?

도서관이랑 미술관을 하나의 건물에서 같이 운영할 것 같아요. 사실 300억까지도 필요없죠.


신기하네요. 보통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답이 나오진 않거든요. 보통은 잠깐 고민하다가 "여행갈" 정도로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구요.

저도 여행을 좋아해요. 해외여행, 국내여행 모두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행은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건 아닌듯 해요. 사실 여행이 최우선이라면, 책방 보증금만 빼더라도 해외에서 몇 달은 여행할 수 있잖아요. 다 저의 선택인거죠.


4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말을 해줄까요?

40년 뒤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더 재밌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하고 살아라. 살아보니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게 제일이더라. 뭐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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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연희 블로그,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chaegbangyeonhui

https://www.instagram.com/chaegbangyeonhui/



어렵다. 지금의 나에게 대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투성이다. 실행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성향이나, 전문성을 무기로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방식이나, 오랜 직장생활을 토대로 초기자금과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모두. 그냥 해봐도 괜찮다고 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결국 생존은 내 방식으로 해야 할텐데 그걸 못 찾았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건 타인과의 연대일 수도 있고, 울면서 걸어가는 모습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스타일과 기획일 수도 있다. 우선 내가 가진 걸 들여다보자. 호기심, 분석 같은 것들이 잡힌다. 좀 더 만지작거려 보기로 한다. 이걸 가지고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연료가 남아있으니 걸어가 보기로.








계획이 없어도,
확신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재밌으니까 내 돈 쓰면서 해볼까.
는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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