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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ot(by 정연준)

날자, 날자~ 날자꾸나!

by radioholic
너를 뜨겁게 안고서
두 팔이 날개가 되어
언젠가 네게 약속했던
저 달로
(정연준, 'Pilot' 中)


한 때 '청춘 드라마'라는 장르가 공전의 히트를 치던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세기말이라 일컬어졌던 90년대 말은'청춘 드라마'란 닉네임만 붙어도 시청률이 20%는 너끈히 넘던 시대였다. 당시엔 채널이 공중파 3개만 존재했던 시절이었던 탓도 있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우리의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TV 속 드라마 밖에 없었으니까.


'우리들의 천국'과 '내일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캠퍼스 드라마, '질투'나 '느낌'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 등은 어른들은 물론 어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며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인기를 얻었더랬다. 그때 요동치던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른 건 바로 드라마 속 OST였다. 수없이 많은 OST들이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도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노래는 정연준이 불렀던'Pilot'이다.


지금 봐도 정말 잘 만든 드라마 이미지다


90년대 원톱 남주였던 희대의 사랑꾼 최수종을 주인공로 했던 드라마 '파일럿'은 채시라, 김혜수, 이재룡, 한석규 등 이젠 절대 한 자리에 모을 수 없는 당대의 스타들이 출연한 로맨스의 끝판왕이었으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활주로와 비행기의 시원한 이미지와 함께 흐르던 이 노래는 드라마를 살리는 OST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 준 명곡이었다.




요즘의 어린 친구들은 90년대의 우리처럼 드라마에 열광하지 않는다. 주로 남학교, 여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청춘 드라마를 보며 대학에 가면 장동건, 박소현 같은 미남미녀들과 CC가 되고, 어른이 되면 이정재, 김희선을 닮은 직장 동료와의 로맨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꿈을 꿨지만, 교실에서 남녀가 함께 부대끼고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그런 환상을 가질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에 푹 빠져 아름다운 미래를 꿈꿨던 그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어른이 되며 깨어질 꿈이라면, 어릴 때나마 그런 환상에 빠지는 재미를 느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이들이 90년대를 문화의 황금기라고 일컫는 이유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한껏 충족시켜 주었던 작품들이 재능 넘치는 스타들과 함께 쏟아지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른 정연준은 이후에도 '업타운'에서 음악적 중심으로 활동하기 했고, 여러 가수들에게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어 주었던 정말 좋은 뮤지션이었다. 아직도 그가 부르고 t가 리메이크한 '하루하루'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반사적으로 따라 부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가. 수없이 많은 드라마 OST들이 만들어졌지만, 나에게는 누가 뭐래도 정연준의 'Pilot'이 최애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상 시인이 쓴 <날개>의 마지막 구절인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노래가 주는 하늘로 시원하게 비상하는 느낌 때문에 그렇다. 드라마 역시 엔딩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노래 가사처럼 꼭 끌어안고 달나라로 날아가는 장면을, 지금으로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조악한 CG로 표현했지만 뭐 어떠랴. 청춘이란 원래 그렇게 황당한 꿈을 꾸며 조악한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되는 그런 시기가 아니던가. 그래서 어른이 된 우리는 그때의 어설픔과 풋풋함을 그리워하며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두 연인은 꼭 끌어안고 달나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출처 : 드라마 '파일럿')


https://youtu.be/IKykbtks3aE?si=_uRYDtKJOU3m7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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