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세상을 원하시나요?
겨우 몇십만 년 전 겨우 몇백만 년 전
한 번은 아주 추워서 혼들이 났다던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그럼 무엇이 생겼었을까
(꾸러기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살았다는데' 중)
<찬란한 멸종>(by 이정모)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관점에서 지구의 역사상 발생했던 멸종의 과정과, 근시일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인류의 멸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자못 심각한 주제를 작가의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으로 풀어나가니 재미있게 술술 읽히지만, 그렇게 웃으며 읽다가 책을 덮으면 등골이 살짝 서늘해진다. 결국엔 우리 인간의 절멸은 언젠가는 기정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듯한 무력함 때문이다.
"나는 인간 없는 지구를 꿈꿉니다." 자연과 지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지구 역사 46억 년 가운데 대부분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우리가 꿈꾸기도 전에 인간 없는 세상은 이미 존재했죠. 정말 길고 지루한 세상이었습니다. 노을이 지는 것도 아닌데 온종일 붉기만 한 하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바다, 암컷과 수컷이 서로 짝을 찾아 알콩달콩하는 대신 끊임없이 자기 복제만 하는 무성생식 박테리아가 살던 세상입니다. 과연 아름다웠을까요?...(중략) 그건 너무 인간 중심 생각이 아니냐고요? 아니 인간이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찬란한 멸종>, 6~7p)
책에 쓰인 것처럼 우린 인간이기에 결국 인간이란 종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류의 멸종을 걱정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이런저런 방편을 고민한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인류 종말의 징후가 조금씩 감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약 열흘 동안 엄청난 면적을 불태우고 최악의 피해를 낸 이번 산불도 그렇고, 얼마 전 미얀마에서 발생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강진도 그렇다. 엄청난 한파가 몰아쳤다가 또 갑자기 가혹한 더위가 덮쳐오는 기후 이변도 지구 전역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피해의 규모도, 재해의 강도도 상상할 수 없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에 의해 인간이란 종이 지구에서 사라지기 전의 전조 현상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난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물론 어떠한 모습으로 태어나 어떤 생활을 할지는 운명에 맡겨야겠지만, 적어도 동물로 태어나 본능에 충실한 야생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누리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보니 이미 인간이란 종은 멸종되었고, 빙하기와 같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버티는 생물체가 되어 있다면 참 많이 슬플 것 같다. 물론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니 슬플 일도 없겠지만.
흥겨운 기타 반주에 맞춰 해맑은 목소리들이 목청껏 부르는 이 노래는, 가사를 들여다보면 지구의 역사와 그 위를 살아갔던 생물들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매우 철학적인 곡이다. 인간이 없던 자리에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던 시절을 지나, 인간이 잠깐 들어앉아 지지고 볶으며 살다가 결국 사라지게 되면 또 어떤 종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우리의 뒤를 이어 살아갈 다음 세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결코 저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요즘 우리를 위협하는 자연재해는 그런 불안감을 자꾸 증폭시킨다.
김창완 아저씨가 젊디 젊던 80년대 만들었던 '꾸러기들'이란 포크 그룹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김창완은 물론이고 임지훈, 최성수 등 가요계에 굵직한 획을 그은 가수들이 젊은 시절 몸담았던 요람과도 같은 그룹이라고나 할까. '싱어게인 2'에 나왔던 윤설하 역시 꾸러기들 출신임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젠 원숙한 노년기에 접어든 그분들이 풋풋한 감성으로 남긴 이런 노래를 들으면 비록 사람은 나이가 들지만 노래는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산불과 지진의 소식 속에서 들은 이 노래는 뭔지 모를 저릿한 여운을 내 마음속에 남겼다.
https://youtu.be/7_fGd4U5RGU?si=7ITM4wqVQ1djQtt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