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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er(by N.EX.T)

꿈이란 말을 해본 게 언제였을까

by radioholic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넥스트, 'The Dreamer' 中)


어릴 적 꿈이라는 건 늘 무언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현재보다 더 좋은 모습이 된다는 희망을 꿈이라고 일컫지 않았던가. 어른들은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진부한 질문으로 어린아이들의 꿈의 크기와 품질을 가늠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에 '없음'이라고 써낸 나를 보며 걱정이 된 나머지 내 어머니에게 진심 어린 근심을 전달하기도 하셨다. 세상에... 꿈이 없는 놈이라니.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남들도 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명문대 학생이 되고 싶고, 번듯한 회사의 직장인이 되고 싶고, 어떤 대회나 오디션에 나가 1등이 되고 싶고, 돈과 명예가 따라오는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가 되고 싶어도, 그것은 나만의 꿈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었기에 치열한 경쟁 속에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을 것이고.


그 시절 꾸었던 꿈들은 손에서 놓친 풍선처럼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마도 일상 속에서 꿈이란 말을 좀처럼 쓰지 않게 되었다. 그 단어를 무심코 입에 담았다가도 이내 '다 커서 무슨 꿈'이냐며 멋쩍어했더랬다. 이미 무언가가 '되어 버린' 현실을 버티고 지켜내는 데 급급한 생활을 지루하게 이어나가면서, 저 '꿈'이라는 한 글자는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그저께 저녁 퇴근길에 참 우연히도 넥스트의 'The Dreamer'를 듣다가 마음속에 저 한 글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The Dreamer'가 수록된 넥스트의 <The Return of N.EX.T part 1> 앨범을 열광하며 듣던 시절이 있었다. 장래희망은 없었지만 그래도 꿈이란 단어에 설레던 중, 고등학교 때였다. 타이틀곡이었던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병아리를 소재로 이런 생각을 노래에 녹일 수 있는지 충격을 받게 했던 앨범이었다.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곡은 바로 'The Dreamer'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이라는 표현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울린 가사는 저 위에 써놓은, '일상의 피곤'이란 표현이 담긴 부분이었다. 일상의 고단함을 핑계로 꿈이란 단어를 어디론가 매장시켜 버린 내 모습이 아프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듣던 CD 속 노래가 지금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이제 나에게 꿈이란 것은 뭔가 '되는' 것이 아닌, 뭐라도 '하는' 것이 되었다. 내 인생의 스테이지마다 가능한 것들을 후회 없이 하는 것. 그동안 안 해봤던 것들을 서툴더라도 시작해 보는 것. 틈틈이 글을 쓰고 남들의 글을 읽으며 함께 공감하고, 그동안 듣지 않았던 장르의 음악들을 들으며 내적 감탄도 해보고, 현재의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 그 전의 꿈들이 'be'의 영역이었다면, 이젠 'do'의 세계로 건너온 셈이다. 다만 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점점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였던 나에게 노래로 꿈을 이야기해 주었던 신해철은 이제 세상에 없다. 뜻하지 않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면서, 이제 그는 우리가 '해철이형'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영원한 젊음의 상징이 되었지만 난 여전히 그가 너무나 그립다. 왠지 그는 우리가 인생의 해답을 알지 못해 헤맬 때 특유의 언변으로, 좋은 노래로 길을 알려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초고령사회라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나이 든 사람이 넘쳐나지만 정작 진짜 좋은 어른은 보이지 않는 시대에, 신해철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20141028_1414486502_09518000_1_99_20141028180310.jpg 신해철이 했던 이 말의 뜻을 그땐 잘 몰랐다...(출처 : JTBC 비정상회담)


형의 1집 속 '안녕'의 영어 가사를 한글로 삐뚤빼뚤 받아쓰기하던 국민학생이, 넥스트 앨범 속 가사들을 들으며 가슴 짜릿해하던 중학생이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어, 어느덧 변해버린 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형이 남긴 'The Dreamer'라는 노래 덕분에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꿈'이라는 한 글자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젠 일상의 피곤 속에서도 날 설레게 하고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면서 평생 꿈을 꾸겠다고.


고마워요 해철이형



https://youtu.be/XXVjj9NfCow?si=6A8OS0R4BDeniq9b

저 불새 문양만 봐도 설레던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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