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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tto(by NewJeans)

슬픈 얘기

by radioholic
훌쩍 커버렸어 함께한 기억처럼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기다렸지 all this time
(뉴진스, 'Ditto' 中)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고 처음 맡은 업무는 회사 내의 각 부서의 계약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신설 기관이었던지라 인수인계 해 줄 전임자 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계약이란 건 아예 생소한 분야인 데다 법대를 나온 것도 아니니 법적인 배경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각 부서에서 의뢰하는 계약서 검토에서부터 회사 직인을 찍는 모든 과정이 공포였다.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용어들로 빼곡히 채워진 계약서 속에 조용히 숨어있던 어느 문구 하나가 문제가 되어,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고 중요한 업무가 어그러지는 악몽 같은 상상이 가슴을 조여오곤 했다. 계약서 문구를 조정하면서 상대 업체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계약 불이행이 지난한 소송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계약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된 경험이었다.


계약은 장난이 아니다, 그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중략)... 아티스트를 애정한다고 하면서 아티스트를 위험에 노출시키면 안 돼요. 그건 진정으로 애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어른들이 도움이 돼야 합니다. 근데 그 옆에 있는 어른들이 그 친구들의 앞날을 본인의 이익 때문에 조금 이렇게 핸들링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유튜브 '프로듀썰 윤일상' 中


작곡가 윤일상이 일명 '뉴진스 사태'와 관련하여 자신의 유튜브에서 용기 내어 발언한 저 내용들 중에서 난 틀린 말을 단 한 구석도 찾지 못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허술하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계약 체계로 인해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소위 '노예 계약'을 맺으며 상처 입고 사라져 갔던 것을 감안하면, 법규에 근거하여 작성된 계약서에 따라 기획사와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저 화려하고 예뻐 보이는 무대 위 스타들의 모습들은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계약 조항에 따라 만들어지고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 않던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다시 예전의 야만적인 연예계로 돌아가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상황에 대하여 우린 뒤에 가려진 이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른들의 싸움에 결국 유망했던 어린 아이돌들의 가수 생활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공개된 자리에서 '개저씨'란 단어를 일갈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일말의 통쾌함을 안겨주었던 장면도, 멤버들의 부모들까지 그 갈등에 참전하며 일을 키운 것도 그 아이들의 미래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템퍼링이니 풋옵션이니 이해하지 못할 용어들이 난무하는 공방 끝에 결국 나이 어린 멤버들이 법원에서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들은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이 처참하게 희생되는 모양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리가 보고 싶은 뉴진스는 엄숙한 법원 앞이 아닌 화려한 무대에서 신나게 웃으며 뛰노는 모습이지 않았던가.


왜 이 예쁜 아이들이 무대가 아닌 법원 앞에 서야 하는 것일까


이 아이들을 아끼는 어른들이었다면 그 친구들이 다치지 않는 선을 고민해 가면서,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야 한다. 자신들이 그 아이들을 위해 했다는 모든 행위들이 계약서 안에서 용인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위반했을 때 실제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감행한 싸움은 잠깐의 쾌감은 주었을지언정, 결국 뉴진스라는 그룹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난 이 부분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중년의 아저씨가 된 이후 가장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뉴진스의 'Ditto'는 약 20여 년 전 내가 20대였을 때 들었던 원더걸스의 'Tell me' 이후 가장 많이 반복해서 플레이한 노래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정말 정신없이 들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 노래에 열광을 했다. 노래가 좋은 건 당연했고, 이 아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심지어 무대가 아닌 연습 동영상마저도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보컬도, 춤도, 무대를 즐기는 마인드도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독보적으로 뛰어났던 이 그룹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다른 활동을 모색하고 있지만, 예전의 그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주기엔 그들이 거친 과정이 너무나 어두웠기에 재기가 쉬워 보이지 않아 마음이 참 슬프다.


난 앞으로도 'Ditto'라는 이 노래를 셀 수 없이 들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누군가의 무대를 보면서 마음이 설렌다는 감정을 너무나 오랜만에 안겨준 고맙고 예쁜 곡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 모든 상황이 좋지 않게 마무리되어 더 이상 그들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라도, 난 'Ditto'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추던 뉴진스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 노래 속 가사처럼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그 이후가 될 때까지 기다려도 결국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난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그녀들을 계속 그리워할 것만 같다. 이게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팬심이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Km71Rr9K-Bw?si=n7IDl3mM7TcUewCp

수백번을 봐도 빛이 나는 노래와 그들의 모습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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