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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노래(by 20세기 소년)

흔하지 않은 사랑노래

by radioholic
들어봐요 이 노래는 흔한 사랑노래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그 누구도
귀기울여 듣지 않는 노래
듣고 있나요 나의 사랑 그댈 향한 노래
모두들 의미 없다 말해도
그대만은 듣길 바라는 노래
(20세기 소년, '사랑노래' 中)


한때 '삼포세대'란 말이 유행했더랬다. 청년들이 현실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참 암울하고 떠올리기 싫은 신조어였다. 시간이 흘러 저 단어는 머리 속에서 희미해져 갔지만, 최근에 저 삼포세대가 표현만 살짝 바꿔 '포청천'이란 단어로 다시 등장했다는 말을 듣고 이내 마음이 서글퍼졌다. 내가 어린 시절 즐겨봤던 중국 드라마 속 엄정한 판관의 이름이, 취업-연애-결혼을 포기한 청년들이란 의미로 다시 쓰이는 것을 볼 줄이야.


사실 드라마 속 포청천과는 시대적으로 하등 관련이 없는 청년들에게 저 세 글자를 갖다 붙이는게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저런 단어가 나오는 본질은 결국 현실의 청년들의 삶이 너무 힘겹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희망이 아닌, 앞으로의 삶이 좋아지기가 어렵다는 고통스러운 자괴감 속에 젊은 시절을 보낸다는 것만큼 비극적인 상황이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란 헛소리에 대해서는 몇번이나 쓴소리를 했더랬지만, 젊은 시절에 실컷 아팠는데 희망마저 없다면 결국 포기해야 할 것이 늘어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요즘 범람하는 연애 콘텐츠들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멋진 비주얼을 갖추고 그럴듯한 직장과 재력을 갖춘 선남선녀들이 나와 호화로운 리조트에서 꽁냥대는 장면들을 보다가 현실의 나를 돌아봤을 때의 그 초라함이나 박탈감은 어찌할까. SNS나 연애 콘텐츠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실제 현실의 1%도 안되는 것들이지만, 그런 장면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게 마치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어둠은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니까.


그냥 둘이 걷기만 해도 좋은게 연애인데...


난 이렇게 취업 하나 하기도 힘들고 설령 직장을 구해도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연애를, 사랑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하여 젊은 친구들이 고민하는 내용들을 보고 들을 때마다 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게 맞는지 회의감이 든다. 얼마나 현실에 치이면 이성간의 그 달콤한 감정과, 젊은 시절의 연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설렘마저 포기해야 할지 망설여야 하는 것인지. 원하든 원치않든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오히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가는 그런 세상이다.




이 노래를 부른 이들은 흔한 사랑노래인 이 곡을 들어달라고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이 노래는 결코 흔하지 않은 사랑노래다. 이 노래에는 연애 프로그램속 '메기남'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이도 없고, '10기 영식'처럼 능청맞은 화술로 능글맞고 뻔뻔하게 들이대는 이도 없다. 그저 비록 소박하고 흔한 사랑노래지만 그대만은 들어주길 바란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수줍은 남자가 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나 함께한 기억을 다 잊는다 할지라도 하나의 멜로디가 남아 당신을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보같기 짝이 없는 남자가 부르는 사랑노래다.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길 즐기고 인정받는 것을 중요시 하는 시대에, 이토록 순진하고 바보같은 사랑노래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감성이 우리의 연애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어리숙해도 진심 어린 감정을 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내가 옛날 사람이기 때문일까. 내 20대의 막바지에 20세기 소년이 발표한 이 노래는 아직 내 청춘의 노래로 마음에 남아 가끔씩 흥얼거리곤 한다. 요즘처럼 화려한 사운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노래가 조금은 촌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위안의 곡이 되길 바래본다. 그 누군가가 현재를 살아가는 게 버거운 젊은 세대라면 더 좋을 것만 같다.


https://youtu.be/5s9EoIUTXv0?si=lg2B567g7JXTo_8D

내 20대의 마지막을 채워준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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